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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일기 정다운
2026년 9월 2일 — 오다일기 오늘은 회원들이 센터에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데스크와 테이블의 위치를 바꿨다. 프린터와 사무용품도 별도의 공간으로 옮겼더니 센터가 훨씬 넓어 보였다. 힘은 들었지만 끝까지 혼자 해내서 뿌듯했다. A 선생님과는 페이롤과 세션 관리 방식에 관해 이야기했다. 갈등이 생길까 봐 무서웠지만, 예전에 프리랜서로 일하며 세션 내역을 직접 확인해 제출했던 경험을 설명했다. 대화 중 A 선생님이 회원 앞에서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려고 했다. 필요한 내용만 전달한 뒤 더 이상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자리를 나왔다. 저녁 회의에서는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나에게 집중되자 부담을 느껴 잘 말하지 못했다. 나는 작은 이야기를 꺼낼 때도 상대의 반응을 걱정하며 망설이는 것 같다. 앞으로는 완벽하게 말하려 하지 말고 “내 생각은…”이라는 짧은 한마디부터 연습해 봐야겠다. 오늘은 무서워도 필요한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늘의 식사 아침에는 커피와 떡, 점심에는 육개장과 밥, 저녁에는 찜닭을 먹었다. 야식으로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사진 찍는 것은 잊었지만 다행히 모두 기억해냈다. 오늘은 공간을 직접 바꾸고, 무서웠던 말을 꺼내고, 감정과 사실을 분리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조금씩 내 이야기를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7기 정다운 일일일기
1. 기본정보 (오늘의 기분, 컨디션, 특이사항) 괜찮음 컨디션 맑음 전날 엄마집에서 자면서 아침 육아함 2. 식사기록 (식사시간과 메뉴 선택의 이유) 9시반 커피 기억안남 빵 15시 커피 부대찌개 3. 식후의 만족도, 반응 (가스생성, 트름, 방귀, 피부 반응, 신체부위 통증의 여부) 부대찌개 먹고 가스생성 21시 물먹고 트름 4. 운동기록 (소요 시간, 운동후 컨디션, 운동전후 통증 부위 변화, 감정, 몸의 반응) 이동할때 뛰어감 총10분정도인것 같음 좀더 에너지가 생김 적당한 텐션
정다운 4주차 오다일기2
이번 주 코칭에서는 내가 반복하고 있는 패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목표가 생기면 기준을 높게 잡고 나를 몰아붙이는 편이다. 그리고 결과가 생각만큼 빨리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찾거나 무언가를 바꾸려고 한다. 요즘 센터를 운영하면서도 이 패턴이 그대로 나오고 있었다. 회원이 줄거나 누군가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면 ‘내가 잘못하고 있나?’ ‘이 방법이 아닌가?’ ‘빨리 다른 걸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를 결정하고도 상대의 반응에 따라 다시 흔들리고, 또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코칭을 하면서 사실과 내가 붙인 해석을 분리해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를 들어 회원이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다 센터가 망할 거야.’ ‘내가 잘못하고 있어.’ ‘지금 당장 뭔가를 바꿔야 해.’ 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 내가 그 사실에 붙인 해석일 수 있다. 이걸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신기한 변화가 생겼다. 나를 제3자처럼 바라보게 되었다. 불안한 생각이 올라와도 바로 그 생각을 따라가기보다 ‘아,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결과가 빨리 안 보이니까 또 뭔가 바꾸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바라보게 됐다. 예전에는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곧 ‘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문득 ‘이게 내가 원하는 걸까? 아니면 불안해서 나오는 생각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이게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던 에고를 조금씩 알아차리는 과정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번 주 대표님이 내 일주일 스케줄을 한번 적어보라고 하셨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내가 언제 일하고, 언제 아이를 보고, 언제 공부하고, 언제 쉬는지를 적어봤다. 그런데 스케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갑자기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 이 들었다. 누가 운동을 하라고 해서가 아니었다. ‘해야 하는데’라는 의무감도 아니었다. 그냥 내 삶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니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조금씩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운동하는 요일도 맞추게 됐다. 별것 아닌 변화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신기했다. 그동안은 센터에서 문제가 생기면 센터, 아이 일이 생기면 아이, 공부할 것이 생기면 공부처럼 눈앞에 있는 것에 계속 반응하면서 살았다면, 이제는 내 삶 전체를 한번 바라보고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 이 생긴 것 같다. 교육에서 하는 숙제도 전보다 열심히 하게 됐다. 예전의 열심히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전에는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잘해야 할 것 같아서, 빨리 결과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열심히 했다면 지금은 내가 나를 좀 더 알고 싶어서 해보는 느낌 에 가깝다. 아직도 나는 많이 흔들린다. 회원의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움직이고, 숫자가 떨어지면 불안하고, 빨리 답을 찾고 싶어진다. 그런데 가장 달라진 것은 그 순간의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무엇인지, 내가 붙인 해석은 무엇인지, 지금 올라오는 감정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모든 것과 별개로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하나씩 나눠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내 삶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싶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지키고 싶고, 배우는 것도 제대로 해보고 싶고, 일할 때는 집중해서 일하고 쉬어야 할 때는 쉬고 싶다. 예전에는 ‘진짜 나를 찾는다’는 말이 조금 막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진짜 나를 찾는다는 게 어디엔가 있는 특별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과 감정에 바로 끌려가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럼에도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계속 물어보는 과정이 아닐까. 에고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고,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행동을 다시 선택하는 것. 요즘 나는 아주 조금씩 그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를 몰아붙이는 힘이 조금 빠지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삶을 잘 정리해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번 주 내가 가장 만족하는 변화는 바로 그것이다. 아직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예전보다 조금 더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선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하나씩 만들어가 보고 싶다.
정다운 생활원칙칼럼-원칙은 나를 통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전의 나는 원칙이라고 하면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먹으면 안 되는 것,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참아야 하는 것. 그래서 원칙을 많이 만들수록 내가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좋은 원칙은 나를 통제하는 규칙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는 패턴을 알고 미리 나를 지켜주는 기준이다. 예를 들어 나는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먹지 않으려고 한다. 단순히 자극적인 음식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나를 관찰해보니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을 때 술이 당기거나 더 강한 자극을 찾으면서 폭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음식을 억지로 참기 위한 규칙이 아니다. 내가 어떤 흐름에서 무너지는지 알기 때문에 만든 기준이다. 주 2회 필라테스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살을 빼기 위해서도,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레슨을 받을 때 힐링된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뿐 아니라 마음도 조금 정돈된다. 그래서 나에게 운동은 해야 할 숙제가 아니라 나를 다시 좋은 상태로 돌려놓는 루틴 이다. 나는 몸무게도 재지 않는다. 숫자를 몰라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숫자를 확인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몸무게가 예상보다 높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낮으면 또 그 숫자를 유지하려고 신경을 쓴다. 그렇다면 굳이 매번 확인하면서 내 감정을 흔들 필요가 없다. 감정이 올라올 때는 가능한 한 사실만 확인하려고 한다. ‘살이 찐 것 같아.’ ‘나는 또 망한 것 같아.’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아.’ 이것들은 사실처럼 느껴지지만 때로는 그 순간의 감정이 만들어낸 해석이다. 나는 감정이 크게 요동칠수록 폭식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감정을 없애려고 하기보다 지금 실제로 일어난 일은 무엇인지, 내가 거기에 어떤 해석을 붙이고 있는지를 구분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도 비교가 무조건 나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속도를 보기 시작하면 내가 늦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빠진다. 그러면 조급해지고 잠을 푹 자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내 속도를 잃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돈도 마찬가지다. 나는 돈이 생기면 이상하게 그것을 빨리 써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무조건 아끼겠다는 뜻이 아니다.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을 때 바로 행동하지 않고, ‘나는 지금 왜 이걸 사고 싶지?’ 한 번 더 나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나씩 적어보니 내 생활 원칙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를 더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먹을 때 무너지는지, 무엇을 할 때 회복되는지, 어떤 숫자에 흔들리는지, 어떤 생각이 내 감정을 키우는지, 무엇과 비교할 때 조급해지는지, 어떤 순간에 충동적으로 행동하는지. 나를 관찰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생활의 기준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원칙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오래 관찰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만들어주는 환경에 가깝다. 나는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고 싶다. 그러려면 매 순간 의지와 싸우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무너지는 길을 알고, 내가 회복되는 길을 알고, 그 사이에서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갖는 것. 그래서 나에게 생활 원칙은 나를 옭아매는 규칙이 아니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 위해 만들어둔 기준이다.
정다운 사명칼럼-나를 몰아붙이지 않고도 앞으로 갈 수 있는 사람
나는 오랫동안 앞으로 가려면 나를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힘들어도 버텨야 하고, 한번 시작한 것은 끝까지 해내야 했다. 그래야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얻은 것도 많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멈추는 순간, 나는 불안해졌다. 운동을 쉬면 뒤처지는 것 같았고, 계획한 식사를 지키지 못하면 흐트러진 것 같았고, 내가 세운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다시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계속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정작 지금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는 잘 보지 못했다. 배가 고픈 건지, 지친 건지, 불안해서 먹고 싶은 건지, 정말 쉬어야 하는 건지 그냥 하기 싫은 건지조차 구분하지 않았다. 내 몸과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정해놓은 답에 나를 맞추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를 바꾼다’는 것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는 것 이었다. 지금 내 몸은 어떤지.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상태에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행동은 무엇인지. 때로는 운동하는 것이 선택일 수 있고, 때로는 쉬는 것이 선택일 수 있다. 먹지 않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제대로 한 끼를 먹는 것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상태를 보고,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다시 관찰하는 것. 그리고 맞지 않았다면 다시 선택하면 된다. 나는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사람에게 자기 신뢰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 흔들리지 않아’라는 믿음이 아니라, ‘흔들려도 나는 다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어.’ 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사람의 모습도 달라졌다. 항상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감정을 볼 수 있는 사람. 정답을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에게 필요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아도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의 사명이다. 내 몸과 감정을 관찰하고,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행동을 선택하며,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지속해서 나아가는 것. 변화는 나를 몰아붙이는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나를 이해하고, 흔들려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에서 나온다.
정다운 신념 칼럼-변화는 나를 몰아붙이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변하려면 나를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을 빼려면 더 참아야 하고, 운동은 빠지면 안 되고, 한번 정한 계획은 끝까지 지켜야 했다. 그래서 잘하고 있을 때는 꽤 잘했다. 문제는 한 번 흐트러졌을 때였다. 계획했던 운동을 하지 못하거나, 참으려고 했던 음식을 먹거나, 체중이 생각만큼 줄지 않는 날이면 그날의 행동 하나를 보는 대신 나 자신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또 실패했네.’ 그러면 한 번의 식사가 하루를 망치고, 하루의 실패가 일주일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가장 많이 무너뜨린 것은 음식도, 운동 부족도 아니었다. 한 번의 선택으로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 그게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요즘은 변화에 대해 다르게 생각한다. 사람을 오래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힘보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 에 가깝다고. 오늘 많이 먹었다면 ‘왜 또 그랬을까’라고 몰아붙이는 대신 오늘의 내 몸과 감정이 어땠는지 살펴보는 것. 운동을 하지 못했다면 ‘이제 틀렸다’고 결론 내리는 대신 내일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선택하는 것. 체중이 생각만큼 줄지 않아도 내가 해온 과정 전체를 부정하지 않는 것. 이런 경험이 하나씩 쌓이면 조금씩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나는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생각해보면 자기 신뢰는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무너질 때마다 다시 나를 선택해본 경험이 쌓이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제 내가 생각하는 변화는 이렇다. 변화는 나를 몰아붙이는 힘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에서 나온다. 몸을 바꾸는 것도, 습관을 바꾸는 것도,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변화에 필요한 건 한 번도 무너지지 않는 힘이 아니다. 무너진 다음에도 다시 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7기 정다운 일일일기
1. 기본정보 (오늘의 기분, 컨디션, 특이사항) 마음이 복잡함 할일이 머릿속의 산발되어 있어서 그런듯, 그래도 나쁘지 않음, 아침부터 육아중 2. 식사기록 (식사시간과 메뉴 선택의 이유) 9시 커피, 13시 콩나물국 집에 있어서 또 커피는 끊었다가 최근 다시 마시게 되었는데 아침에 긴장으로 밥이 안넘어감 3. 식후의 만족도, 반응 (가스생성, 트름, 방귀, 피부 반응, 신체부위 통증의 여부) 아침에 커피 후 화장실, 없음 4. 운동기록 (소요 시간, 운동후 컨디션, 운동전후 통증 부위 변화, 감정, 몸의 반응) 어제 50분 필라들음 힘들었지만 끝나고 전보다 덜 졸리고 재밌었음
7기 정다운 4주차 일기
이번 주 코칭을 하면서 센터의 시스템을 정리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정리해야 했던 것은 사람과 나 사이의 경계 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사람의 반응을 빨리 알아차리는 편이다. 필라테스 수업을 할 때는 이게 장점이었다. 회원님의 표정이나 작은 움직임을 보고 불편한지, 힘든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성향이 센터를 운영할 때는 다르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내가 너무한 건 아닐까?” “이걸 물어봐도 되나?” “내가 설명을 더 해줘야 하나?” 나는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사실보다 상대의 반응을 먼저 보고 있었다. 강사가 질문하면 바로 답을 줬고,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하려 했다. 상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려고 했고, 불편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움직였다. 나는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코칭을 하면서 어쩌면 나는 배려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기준으로 내 행동을 결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센터에서도 경계가 조금씩 흐려졌다. 강사에게 어디까지 권한을 줘야 하는지, 결제와 세션 등록은 누가 해야 하는지, 운영 계정에는 누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지처럼 사실 명확했어야 할 것들까지 애매해졌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을 설득하고 상황을 해결했지만, 정작 시스템은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계속 모든 상황을 관리해야 했다. 이번 주에는 이것들을 하나씩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사의 스케줄 변경 권한을 정리하고, 결제와 세션 등록은 내가 관리하기로 했다. 결제와 변경 사항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센터 운영 계정에 대한 접근도 구분하기로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결정을 하면서도 “선생님들이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왜 갑자기 바꾸냐고 생각하지 않을까?” 를 먼저 걱정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가 불편하다고 해서 상대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상대가 불편해한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먼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고, 그다음 내가 해야 할 판단을 하면 된다. 이건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과 내가 해야 할 판단을 분리하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와 대화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누군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나는 빨리 해결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답을 주기보다 왜 힘든지, 정말 힘든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들어보려고 한다. 질문을 받았을 때도 바로 답하지 않아도 된다. 모르면 물어볼 수 있고, 당장 결정하기 어렵다면 생각해보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좋은 원장이 되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의 감정에 따라 내 기준을 바꾸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번 주에 센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대의 반응부터 살피고 바로 해결하려 했던 나에게서 조금 벗어나, 사실을 보고 내가 지켜야 할 기준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센터의 시스템을 정리한다고 시작했는데, 결국 이번 주 내가 가장 많이 정리한 것은 원장으로서의 권한과 사람과 나 사이의 경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