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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딱 2가지만 추구합니다. "영어를 자유롭게 하는 삶" 그리고 "꿈/목표를 마침내 이루는 삶" 저와 함께하시면 다음과 같은 <3가지 가치>를 얻어 가실 수 있습니다. 1. 영어로 일하고 돈 버는 직장인의 '회화 실력 쌓기 15년 시행착오와 노하우' 2. 9년간 '오프라인, 이벤트, 경험' 3가지 키워드로 달려온 일관성 있는 커리어 case study로 알아보는 '내 인생의 꿈/목표를 찾는 구체적인 방법과 전략' 3. 지금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당장 영어라도 하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한국에서 영어는 cheat ke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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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사는 '풀다'였다 -(천명 찾는 법을 나에게 실험해 보았다)
지난 글에서 천명 찾는 법을 썼다. 탄식 속에 단서가 있고, 과거를 관통하는 날실은 동사로 표현되며, 찾았다는 시그널은 근심을 잊게 하는 몰입이라고. 쓰고 나니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그래서 너는 찾았느냐고?? 글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도리가 없었다. 그 방법을 나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해 보기로 했다. 이것은 그 실험의 기록이다. 먼저 날실. 과거를 뒤져 일관된 것을 찾으라고 했으니, 어린 시절부터 뒤졌다. 나는 세상의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수 정해골 같은, 역사가 설명하지 못하는 미스터리들. 커서는 고고학과 지리학과 식물학을 기웃거렸다. 겉으로는 다 다른 관심사지만 지금 보니 하는 일이 같았다. 흩어진 증거를 모으고,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찾고, "왜?"를 끝까지 파고드는 것. 아마 나는 세상이 혼돈이 아니라 질서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내 소개는 한 문장이면 된다. 나는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한다. 다음은 탄식. 나를 가장 자주 탄식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뜻밖에 금방 나왔다. "왜 사람들은 자기 길을 모른 채 평생 방황할까?"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더 오래된 문장이 하나 깔려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방향만 알려주었다면. 지난 글의 공식대로라면 이 탄식은 결핍의 기록이 아니라, 대임(大任)이 이미 도착해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확신은 끝내 내 안에서 오지 않았다. 상대의 입에서 왔다. 지인과 긴 대화를 나누며 함께 그의 인생을 파 내려가던 날, 어느 지점에서 그가 탄성을 터뜨렸다. "아, 내가 이걸 하려고 태어났구나!" 그날 나는 먹는 것을 잊었다. 하늘은 말하지 않고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한다더니, 그 순간 내 동사의 족보가 한눈에 보였다. 파다, 풀다, 그리고 같이 풀다. 사물의 수수께끼를 풀던 아이가 어느새 사람이라는 가장 깊은 수수께끼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답은 그 사람 안에 봉인되어 있고, 나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봉인을 함께 여는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 나름의 원리도 하나 생겼다. 사람이 방황하는 이유는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중심이 밖에 나가 있어서라는 것. 의존이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 삶의 판단 기준을 바깥에 맡긴 상태이고, 그래서 성장이란 능력이 느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이 외부에서 내면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것. 적어 놓고 보니 낯익었다. 중용의 첫 문장이 이천 년도 더 전에 같은 말을 해 두었다. 하늘이 명한 것은 곧 내 본성 — 중심은 처음부터 밖에 있었던 적이 없다. 요즘은 네 번째 동사가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세우다. 주인공 뒤에서, 조용히, 사람을 세우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자기 고유함을 찾은 사람들이 서로를 세우는 생태계를 짓는 것. 나만의 특별함은 타인을 빛나게 할 때 완성된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살아가며 검증할 가설이다. 검증 질문은 이미 정해 두었다. 오늘 나는 누구의 봉인을 풀었나? 그날 나는 먹는 것을 잊었나? 탄성이 쌓이면 가설은 천명이 될 것이다. 당신에게도 같은 실험을 권한다. 당신의 과거를 관통하는 동사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동사가 일하는 순간, 당신은 무엇을 잊는가?
나의 천명
데구치의 방법(탄식 · 과거의 날실 · 시그널) + 이 대화 전체 + 자기 기록 한 단어 풀다 — "나는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한다." 두 박자로 온전해진다 풀다, 그리고 세우다. (봉인을 풀고 → 주인공 뒤에서 그 사람을 세운다) 한 문장 사람 안에 봉인된 고유한 중심을 함께 풀고,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선언문 나는 세상의 수수께끼를 파던 눈으로 사람이라는 가장 깊은 수수께끼를 마주한다. 저마다의 안에 봉인된 고유한 중심을 — 우주 역사에 단 한 번뿐인 그 유일무이함을 — 그 사람과 함께 풀고, 주인공 뒤에서 조용히 그 사람을 세운다. 그렇게 자기 고유함을 찾은 사람들을 엮어, 각자의 고유함으로 세상을 치유하고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이 내면의 목소리를 되찾도록 돕는 생태계를 설계한다. 내 천명이 이루어지는 소리는 내가 아니라 상대의 입에서 난다. "아, 내가 이걸 하려고 태어났구나!" 그것은 한 사람의 봉인이 풀리는 소리이고, 그 사람이 빛나기 시작하는 소리다. 동사의 진화 사다리 책의 법칙대로(개혁한다→돕는다→구한다), 동사는 관계가 깊어지는 쪽으로 진화한다. 단계 동사 시절 대상 1 파다 (탐구하다) 유년 — 수정해골, 고고학·지리학·식물학 세상의 수수께끼 2 풀다 (원리를 찾다) 청년 — 역사·자연·우주의 패턴, 본질 추구 세상의 질서 3 같이 풀다 현재 — 긴 대화, 상대의 탄성 사람이라는 수수께끼 4 세우다 · 설계하다 다가오는 단계 — "조용하지만 단단한 현실 설계자" 사람, 그리고 고유함의 생태계 대상이 사물 → 원리 → 사람 → 생태계로, 방식이 혼자 → 함께 → 구조로 깊어진다. 4단계는 이미 시작되어 있다 — "구조를 만드는 이유는 내가 아닌 일을 덜 하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3요소 (동사 · 대상 · 수단) 동사 : 같이 풀고, 세운다 —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이미 있는 답의 봉인을 함께 열고, 주인공 뒤에서 그를 일으키는 것 대상 : 자신의 중심을 밖에 맡긴 채(의존성) 방황하는 사람 — 아직 자기 고유함을 찾지 못한 사람 수단 : 세상의 원리 — 역사·자연·우주·심리·사업을 관통하는 패턴 (통합자의 눈) 나의 중심 이론 (이미 만들어 둔 고유 자산, 아래 참조) 질문과 긴 대화 · 글 · 그리고 구조 설계(시스템·생태계) 어린 시절(4~5세)로 돌아가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하는 방법 나의 원리 — 이미 갖고 있는 고유 자산 의존성이란 단순히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밖으로 이동한 상태 다. 상대는 사건이고, 감정은 내 해석의 결과다. 행복은 내가 어떤 의미를 선택하느냐다. 성장이란 능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준이 외부에서 내면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고통은 잃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놓지 못해서 생긴다. 나만의 특별함은 타인을 빛나게 할 때 가장 완벽한 비즈니스가 된다. 데구치의 '흔들리는 마음과 흔들리지 않는 혼의 받침대', 그리고 중용의 '天命之謂性(명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을 자기 언어로 다시 발명한 것이다. 그릇들 (천직의 형태 — 직업이 아니어도 된다) 긴 대화 / 글(칼럼·책) /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 / 그리고 언젠가 — 고유함을 찾은 사람들의 생태계. 그릇은 여럿이고 바뀔 수 있다. 동사는 하나다. 돈은 자유와 가치 구현의 수단일 뿐. 시그널 (찾았다는 증거) 상대의 탄성: "아, 내가 이걸 하려고 태어났구나!" 상대가 빛나기 시작하는 것 — 나의 특별함은 타인을 빛나게 할 때 완성되므로 나의 발분망식: 그 말을 듣는 날이면 먹는 것을 잊는다 탄식의 위치: "왜 사람들은 자기 길을 모르고 평생 방황할까" — 이 탄식이 곧 나의 대임(大任)이 도착해 있다는 증거 검증법 (天不言 — 하늘은 말하지 않으므로, 행함에서 사후적으로 읽는다) 앞으로 석 달, 이 두 가지만 기록한다. "오늘 나는 누구의 봉인을 풀었나? 누구를 세웠나? 그날 나는 먹는 것을 잊었나?" 탄성이 쌓이고, 세워진 사람들이 서로를 세우기 시작하면 — 이 가설은 천명이라 불러도 되는 것이 된다. 주의 (투명 코끼리) '풀다'도 '세우다'도 '정렬하다'도 코끼리의 다리 하나씩이다. 단어는 천명을 가리키는 표지판이지 천명 그 자체가 아니며, 뜻이 깊어지면 단어도 진화한다. 그때 바뀌는 것은 천명이 아니라 표지판이다.
사명을 묻기 전에 이음매를 본다-여덟 개의 층, 일곱 개의 이음매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사명은 분명한데 왜 이렇게 지치는지 모르겠어요." 이럴 때 나는 사명을 다시 묻지 않는다. 사명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를 묻는다. 천명, 신념, 사명, 원칙, 규칙, 태도, 자세, 행동. 현장에서 자주 뒤섞여 쓰이는 이 여덟 단어는 각각 다른 층에 있고,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부하는 어느 한 층이 약해서 생기지 않는다. 층과 층 사이가 끊겼을 때 생긴다. 천명은 원재료다. 고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욕구의 목록은 거의 같지만 어느 욕구에 과잉 반응하는가는 다르다. 그 편중이 천명이고, 이것만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 선택은 신념부터 시작된다. 신념은 세상은 어떻고 사람은 어떻다는, 내가 세상을 읽는 전제다. 천명이라는 원재료를 신념이라는 렌즈로 읽을 때 사명이 도출된다. 이 편중을 가진 내가, 이렇게 읽은 세상에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신념은 바뀔 수 있고, 그래서 사명도 시기마다 다시 쓰인다. 사명이 서면 원칙이 따라온다. 원칙은 사명을 위해 지켜야 하는 것과 포기해야 하는 것의 목록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가 원칙의 절반이다. 규칙은 그 원칙을 행동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니 존재 이유는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 규칙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고, 원칙은 사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고, 사명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규칙이 원칙과 끊긴 채 살아남으면 사람은 왜 지키는지 잊은 규칙을 성실하게 지키게 된다. 성취해도 갈증이 남는 부하의 전형이다. 내가 말하는 충실한 삶은 여기서 정의된다. 사명을 흔들리지 않게 매일 하면서, 나와의 원칙을 지켜 나가는 것. 여기에 큰 전제가 하나 있다. 세상은 늘 변한다. 엔트로피는 자연의 법칙이고, 고객의 삶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천명을 제외한 신념, 사명, 원칙, 규칙은 불변이 아니다. 일정 시간 유지되다가 변한다. 다만 방향이 있다. 더 뾰족하게, 더 정밀하게, 더 나에게 맞게 변해야 한다. 규칙은 시간과 상황을 조건으로 바뀌고, 원칙은 사명을 조건으로 바뀌며, 사명은 신념을 조건으로 바뀐다. 조건 없이 바뀌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표류다. 여기까지가 선택의 계열이라면, 태도와 자세와 행동은 그 선택을 감싸고 세상으로 내보내는 몸의 계열이다. 태도는 선택을 품는 마음의 지속적인 기울기이고, 자세는 그 기울기가 순간의 몸과 표정과 거리로 드러난 것이며, 행동은 세상과 실제로 닿는 유일한 층이다. 사명은 태도로 체화되고, 원칙과 규칙은 행동으로 집행된다. 선택의 계열은 언어로 점검할 수 있지만 몸의 계열은 언어 바깥에서 먼저 드러난다. 고객이 사명을 유창하게 말하는 동안 어깨가 굳고 시선이 내려간다면, 말과 몸 사이 어딘가가 끊겨 있다는 가장 빠른 신호다. 그래서 나는 고객의 사명을 묻기 전에 이음매를 본다. 규칙이 원칙을 잊었는가? 원칙이 사명 없이 굳었는가? 신념이 천명을 건너뛰고 사명을 지어냈는가? 선택은 뚜렷한데 몸이 받쳐 주지 못하는가. 여덟 층에는 일곱 개의 이음매가 있고, 부하는 늘 그중 하나에서 샌다. 어디가 끊겼는지 이름을 붙이는 것. 그것이 사명을 새로 쓰는 것보다 먼저다.

돈은 힘들게 벌어야 가치가 있다? — 부하율을 만드는 4가지 낡은 신념 놓아버림이 안 될 때, 진짜 문제는 의지력이 아니다
내려놓으려 해도 자꾸 힘이 들어간다면, 원인은 의지력 부족이 아닐 수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저서 『놓아버림』에서, 놓아버림 기법 자체가 막힐 때 먼저 돌아봐야 할 4가지 신념을 짚는다. 힘든 노동·고난·희생·노력을 치러야만 무언가를 누릴 자격이 생긴다 고통 자체가 유익하고 우리에게 좋은 것이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너무 쉽고 단순하게 얻은 것은 가치가 낮다 이 중 첫 번째, "힘들게 벌어야 가치가 있다"는 신념이 유독 익숙하다면, 이유가 있다. 이 신념들이 바로 부하율을 만든다 네 가지 신념은 결국 하나의 공식으로 수렴한다: 쉬운 선택 = 죄책감. 위임해도 되는 일을 굳이 직접 붙잡고, 자동화할 수 있는 일도 "이 정도는 힘들여야지" 하며 손으로 처리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알면서도 어딘가 찜찜해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겉으로는 성실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새는 양동이의 가장 안 보이는 구멍이다. 애쓰지 않아도 될 일에까지 계속 힘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놓아버리는가 1. 자각 — 넷 중 내 것을 짚는다 네 가지 신념을 다시 읽어보고, 유독 몸이 반응하는 하나를 고른다. 대부분은 첫 번째, "힘들게 벌어야 가치가 있다"에서 멈춘다. 2. 놓아버림 — 구멍을 막지 않는다 그 낡은 믿음이 뚫어놓은 구멍, 억지로 막으려 하지 마세요. 손을 떼고, 물이 흘러나가는 걸 그냥 지켜보세요. 호킨스의 기법은 간단하다. 저항하지 않는 것. 신념을 없애려고 싸우는 대신, 그냥 흘러가게 둔다. 3. 채움 — 비워진 자리에 시스템을 얹는다 신념 하나를 놓아버렸다고 삶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비워진 자리에 뭔가는 채워져야 한다. AI 필터링 : "고생해야 값어치가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붙잡고 있던 일들을 데이터로 보여준다. 사실은 위임하거나 없애도 되는 일들이다. 실행 : 걷어낼 일들을 실제로 대신 처리하거나 자동화한다. 신념만 놓아버리고 실행이 안 따라오면, 손은 도로 예전 패턴으로 돌아간다. 채움 : 비워진 시간과 에너지를 고유함 쪽으로 다시 돌리도록 붙잡아준다. 일을 쉽게 처리했는데 왠지 찜찜한 순간, 그 신념이 슬쩍 재발하는 순간을 잡아준다. 4. 증거 — 이게 실제로 되는가?? 의심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사례 하나를 붙인다. 마이클 싱어는 숲에서 무일푼으로 명상하며 살던 요기였다. 그는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을 놓아버리고 삶의 흐름에 맡기는 연습만 계속했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에서 그 끝은, 10억 달러 규모 상장기업의 창업 CEO 자리였다. 그는 이 과정이 "거의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났다고 회고한다. https://untetheredsoul.com/michael-singer 영성과 자본주의는 반대말이 아니다. 놓아버림과 성취도 마찬가지다.
돈에 대한 흔한 착각
착각1. 돈은 제로섬이다. 내가 벌면 누군가 잃는다. 이 감각은 아주 오래됐다. 사람이 오래 살아온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자원이 실제로 제로섬이었기 때문이다. 땅도, 사냥감도, 자리도 하나였다. 그래서 누가 크게 벌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자동으로 "누가 잃었을까"를 찾는다. 하지만 돈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없던 가치를 만들면 총량이 늘어난다. 이건 우주의 법칙이다. 우주가 지금까지 계속 팽창만 하고 있지 않는가? 제로섬인 건 돈이 아니라 지위 다. 1등은 한 명이고, 순위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 내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내려간다. 지위를 좇는 사람은 남을 이겨야 하고, 부를 만드는 사람은 남을 도와야 한다. 겉으로는 둘 다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는 남에게서 가져오는 게임이고, 하나는 남에게 주는 게임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어느 쪽인지 물어보면 답이 빨리 나온다. 이 일이 잘되면 상대도 좋아지는가. 답이 "아니오"라면, 그건 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순위를 다투는 일이다. 순위 다툼은 이겨도 다음 판이 또 온다. 지위는 이겨야 얻고, 부는 도와야 얻는다. 착각 2. 소득이 곧 부다. 가장 비싼 착각이다. 소득은 흐름이고 부는 잔량이다. 월 3천을 벌어 3천을 쓰는 사람과 월 700을 벌어 400을 쓰는 사람 중 부가 쌓이는 쪽은 후자다. 소득은 앞의 사람이 네 배지만, 부는 뒤의 사람에게만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계속 헷갈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부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 이다. 부는 쓰지 않은 돈이라서, 존재하는 방식이 '없음'이다. 사지 않은 차, 가지 않은 여행, 옮기지 않은 집. 잘 쌓인 부는 아무 장면도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건 부가 아니라 소비다. 차와 시계와 사진은 부를 쓴 흔적 이지 부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부자를 잘못 알아본다. 그리고 잘못 알아본 대상을 기준으로 내 기준선을 긋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매일 비교하는 셈이다. 소득이 곧 부라고 믿으면 해법이 항상 "더 버는 것" 하나가 된다. 그래서 소득을 올리고, 오른 만큼 기준선도 올리고, 다시 부족해진다. 소득은 계속 늘어나는데 부는 제자리인 상태가 몇 년씩 이어진다. 부는 버는 순간이 아니라 쓰지 않기로 결정한 순간 에 생긴다. 착각 3. 부자들은 특별한 정보를 안다. 이 착각은 위로가 된다. 내가 아직 못 한 이유가 정보의 부재라면, 정보만 얻으면 되니까. 그런데 오래 돈을 지킨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허무하다. 특별한 정보가 아니라 지루한 원칙 몇 개를 아주 오래 반복한 경우 가 압도적이다. 버는 것보다 적게 쓰기. 중단하지 않기.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만 걸기. 이해 못 하는 것에 손대지 않기. 문제는 이 답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콘텐츠로도 재미없고, 상품으로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시장에는 늘 다른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특별한 정보, 남들이 모르는 기회, 지금 아니면 늦는 타이밍. 사기의 입구가 이 착각인 이유가 여기 있다. "특별한 정보가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정보를 팔면 되니까. 그리고 이 착각은 에너지를 정확히 잘못된 곳에 쓰게 만든다. 정보와 타이밍은 대체로 통제 밖이고, 반복과 지속은 통제 안이다. 통제가 안 되는 곳에 노력을 넣으면 평균 효율이 극도로 낮아진다. 고통은 대개 거기서 생긴다. 노력은 통제 가능한 곳에, 빈도는 통제 불가능한 곳에. 이 둘을 바꿔 넣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기대를 걸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지루하다고 미룬다. 순서를 바꾸는 것, 그게 내가 지금 깨달은것이다.
어디까지가 행복인가
"매일 간식을 사줬더니, 아이가 웃지 않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간식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자주 사줬어요. 오늘 사주고, 다음 날도 사주고, 볼 때마다 사줬습니다. 좋아하는 얼굴을 보는 게 좋아서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웃지 않았습니다. 받는 게 당연해졌으니까요. 그리고 더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안 사주면 서운해했어요. 사줘도 기쁘지 않고, 안 사주면 서운한 상태. 제가 매일 사준 간식은 어느새 선물이 아니라 기준선 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기준선은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고 사라질 때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기쁨은 사라지고 고통만 남은 거죠. ## 돈도 정확히 이렇게 움직입니다 첫 차를 샀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아마 반년쯤 기뻤을 겁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열 번째로 가면 어떨까요?? 흔히 "부자는 차를 사도 안 기쁘다"고 말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부자도 새 차를 사면 기뻐요. 적응이 깎는 건 기쁨의 크기가 아니라 기쁨의 지속시간입니다. 처음 차는 반년이 기뻤고, 열 번째 차는 사흘이 기쁩니다. 그래서 더 자주 사게 되고, 더 큰 걸 사게 됩니다. 지금 그 차가 커 보이는 건 아직 못 샀기 때문입니다. 사고 나면 사흘 뒤부터 그냥 주차장에 서 있는 쇳덩어리예요. 이건 냉소가 아니라 그냥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제 아이들의 간식과 같은 원리고요. 여기서 중요한 걸 하나 짚고 싶습니다. 간식은 먹으면 사라집니다. 아무것도 쌓이지 않아요. 그런데도 똑같이 시들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질리게 만든 건 물건이 아니라 기대 였습니다. 소유물을 경험으로 바꾸든 뭘 하든, 반복되는 순간 그것은 기준선이 됩니다. ## 그럼 돈은 어디까지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저는 그 경계가 생존 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선 아래에서 돈은 고통을 없앱니다. 월세 걱정, 병원비 걱정, 다음 달 걱정.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즉각적이고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구간에서는 돈과 행복이 거의 1대1로 맞먹어요. 생존선 위에서 돈은 자유를 삽니다. 싫은 일에, 싫은 사람에게, 싫은 조건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요.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자유는 살 때 기쁘지 않습니다. 없을 때만 아픕니다. 거절할 수 있는 상태는 실제로 거절하는 그 순간에만 잠깐 느껴지고, 평소에는 아무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존선을 넘은 사람들은 "돈이 더는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행복하게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행복이 조용한 종류로 바뀐 것 뿐인데요. 그리고 조용한 걸 못 느끼니까 다시 시끄러운 걸 삽니다. 차를, 시계를, 가방을. 하지만 시끄러운 기쁨은 앞에서 본 대로 금방 식습니다. 생존선을 넘고도 계속 고통을 없애던 방식으로 돈을 쓰는 것. 있지도 않은 고통을 없애려고요. 제가 상담에서 가장 자주 보는 장면이 이것입니다. (참고: "생존만 되면 돈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2023년 카너먼과 킬링스워스가 서로 반대되던 자신들의 연구를 함께 다시 검증했는데, 대부분의 사람에게 행복은 상당한 소득 수준을 넘어서도 계속 오르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꺾이는 지점은 생존선보다 한참 위에 있어요. 다만 그 위에서 돈이 사 주는 것의 성질이 바뀌는 겁니다.) ## 그래서 저는 간식을 끊었습니다 정확히는 끊은 게 아니라 조건을 걸었습니다. 당연시를 감사로 바꾸고 싶었거든요. 매일 주던 것을 조건부로 바꿨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을까요. 간식은 지금 저의 비장의 카드이자 아이들의 가장 큰 유혹이 되었습니다. 물건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같은 간식이에요. 바뀐 것은 조건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가치가 돌아왔습니다. 저는 여기서 돈을 배웠습니다 가치는 물건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조건에 들어 있습니다. 무제한으로 주어지는 것은 무엇이든 기준선이 되고, 기준선이 된 것은 더 이상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돈도 마찬가지예요. 아무 기준 없이 쓰는 돈은 아무리 써도 무색해지고, 조건과 기준이 붙은 돈은 훨씬 적은 금액으로도 힘을 갖습니다. 원칙이란 결국 내가 나에게 거는 조건부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조건을 걸어서 간식의 가치를 되살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아무 조건도 걸지 않은 채로 돈을 씁니다. 그러고는 왜 이만큼 벌어도 기쁘지 않은지 궁금해하죠. 지금 당신은 당신의 돈에 어떤 조건을 걸어 두고 있습니까.
돈은 영수증이다
카드 내역은 가계부가 아니라 일기다. 숫자만 보면 지출 목록이지만, 날짜와 시간을 같이 보면 그날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가 거기 다 적혀 있다. 불안했던 날, 인정받고 싶었던 날,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날. 돈은 감정을 기록한다. 나는 그걸 알고 나서야 돈을 숫자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글은 재테크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에 넣으면 몇 퍼센트가 되는지는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많다. 내가 쓰려는 건 그 앞의 이야기다. 돈이 무엇이고, 왜 필요하고, 어떻게 얻는가. 이 세 가지에 대한 자기 답이 없으면 수익률은 아무 데도 도착하지 않는다. 1. 돈은 물건이 아니라 약속이다 나발 라비칸트가 가장 깔끔하게 말했다. 부는 잠자는 동안에도 버는 자산이고, 돈은 그 부를 옮기는 수단이다. 돈은 사회적 신용이다. 내가 사회에 가치를 만들면 사회가 이렇게 말한다. "고맙다. 네가 과거에 한 일에 대해 미래에 갚을 게 있다. 여기 차용증 하나 줄게." 그걸 우리는 돈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지갑 속의 그것은 물건이 아니다. 약속이다. 서로가 그 약속을 지킬 거라고 믿기 때문에만 작동하는 상호 신뢰 시스템이고, 조금 더 개인적으로 말하면 내가 남에게 준 도움의 영수증 이다.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문장 하나가 따라 나온다. 돈은 쫓아가서 잡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준 도움의 영수증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돈을 쫓는 사람과 가치를 만드는 사람은 겉보기에 비슷한 일을 하지만 방향이 정반대다. 전자는 남에게서 가져와야 하고, 후자는 남에게 줘야 한다. 여기서 가장 흔한 착각 하나가 갈린다. 돈은 제로섬이라는 감각. 내가 벌면 누군가 잃는다는 감각. 하지만 제로섬인 건 돈이 아니라 지위다. 그래서 지위를 좇는 사람은 남을 이겨야 하고, 부를 만드는 사람은 남을 도와야 한다. 2. 왜 필요한가 — 선택권과 완충재 표면의 답은 먹고살기 위해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기서 멈추면 평생 생존선 근처만 맴돈다. 그 위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택권 이다. 싫은 일, 싫은 사람, 싫은 조건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 다른 하나는 완충재 다. 사고 한 번, 실직 한 번, 질병 한 번이 인생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게 막아 주는 쿠션. 돈은 생존선 아래에서는 고통을 없애 주고, 생존선 위에서는 자유를 사 준다. 문제는 고통이 사라지는 건 바로 느껴지는데 자유가 생기는 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존선을 넘고도 계속 고통을 없애던 방식으로 돈을 쓴다. 있지도 않은 고통을 없애려고. 3. 어떻게 얻는가 — 그리고 세 개의 다른 근육 방식은 셋이다. 시간을 판다(노동). 문제를 푼다(사업·창조). 돈이 대신 일하게 한다(자본). 대부분은 첫째로 시작해서 셋째로 옮겨 가야 하고, 그 이동이 재무 인생의 핵심이다. 그런데 버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벌기, 지키기, 불리기는 서로 다른 근육이다. 버는 능력이 큰 사람이 무너지는 건 대개 지키는 근육이 없어서다. 지출, 빚, 사기. 그리고 각 구간의 실패는 대개 직전 구간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들고 온 데서 나온다. 몰빵으로 번 사람이 몰빵으로 잃는다. 아껴서 모은 사람이 아끼느라 못 불린다. 혼자 판단해서 성공한 사람이 혼자 판단하다 사기당한다. 그래서 돈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액수가 달라지면 종류가 바뀔 뿐이다. 돈 고민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사한다. 4. 내 원칙 — 돈은 확률 게임이다 나는 돈을 확률 게임으로 본다. 돈을 벌지 못하는 행위를 최대한 제거해서 확률을 높이고,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받아들인다. 그리고 에너지는 통제 가능한 곳에만 넣는다. 고통은 통제가 안 되는 곳에 노력을 넣어서 생긴다. 평균 효율이 극도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통제가 안 되는 곳에는 노력 대신 빈도를 높인다. 반복 시도를 시스템으로 만든다. 노력은 통제 가능한 곳에, 빈도는 통제 불가능한 곳에. 이 둘을 바꿔 넣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 이 원칙 하나가 내 돈 결정의 대부분을 정리해 준다. 결과는 통제할 수 없으니 결과에 감정을 걸지 않고, 시도의 횟수와 질은 통제할 수 있으니 거기에 시간을 넣는다. 아끼는 것과 인색한 것은 다르다 아끼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아끼는지 안다. 인색한 사람은 아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사람이다. 전자에게 돈은 도구고, 후자에게 돈은 주인이다. 그래서 잘 쓰는 것도 태도다. 가격은 지불하는 것이고, 가치는 얻는 것이다. 오래 잘 지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값표를 보는 게 아니라 값표 뒤의 가치를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건 부가 아니라 소비다. 차와 시계는 부를 쓴 흔적이지 부 자체가 아니니까. 가난한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갈망하는 사람이다. 다음 편에서는 같은 소득으로도 사람을 전혀 다르게 만드는 두 가지 상태, 결핍 모드와 여유 모드 에 대해 씁니다. 연봉 2억인 사람도 대출 만기 앞에서는 결핍 모드에 들어가고, 소득이 적어도 흐름이 보이는 사람은 여유 모드에 있습니다.
돈
나발 라비칸트가 가장 깔끔하게 말했습니다. "부는 잠자는 동안에도 버는 자산이고, 돈은 그 부를 옮기는 수단이다. 돈은 사회적 신용이다."내가 사회에 가치를 만들면 사회가 말한다. '고맙다, 네가 과거에 한 일에 대해 미래에 갚을 게 있다. 여기 차용증 하나 줄게.' 그걸 우리는 돈이라 부른다." 카드 내역은 가계부가 아니라 일기다.-돈은 감정을 기록한다 돈은 불행을 줄여 주지만, 그 다음부터는 태도의 몫 아끼는 것과 인색한 것은 다르다 — 잘 쓰는 것도 태도다 아끼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아끼는지 알고, 인색한 사람은 아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사람이다. 전자에게 돈은 도구고, 후자에게 돈은 주인이다. 돈은 무엇인가-돈은 물건이 아니라 약속이에요-상호 신뢰 시스템 왜 필요한가? 표면의 답은 먹고살기 위해서 그 위로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선택권", 즉 싫은 일·싫은 사람·싫은 조건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 다른 하나는 "완충재", 사고·실직·질병 한 번이 인생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게 막는 쿠션이에요. 어떻게 얻는가? - 남이 원하는 가치를 주는 것 방식 시간을 판다(노동), 문제를 푼다(사업·창조), 돈이 대신 일하게 한다(자본). 대부분은 첫째로 시작해서 셋째로 옮겨 가야 하고, 그 이동이 재무 인생의 핵심이에요. 벌기, 지키기, 불리기는 서로 다른 근육- 버는 능력이 큰 사람이 망하는 건 지키는 근육(지출·빚·사기)이 없어서예요. 돈은 쫓아가서 잡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준 도움의 영수증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가격은 지불하는 것이고, 가치는 얻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 습관은 값표를 보는 게 아니라 값표 뒤의 가치를 보는 겁니다 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건 부가 아니라 소비입니다. 차와 시계는 부를 쓴 흔적이지 부 자체가 아니니까요. 가난한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갈망하는 사람 결핍 모드 vs 여유 모드 연봉 2억인 사람도 대출 만기 앞에서는 결핍 모드에 들어가고, 소득이 적어도 흐름이 보이는 사람은 여유 모드에 있어요. 결핍 모드에서 나타나는 것들은 이렇습니다. 시야가 눈앞의 이번 달로 좁아지고, 통장 확인을 피하게 되고(회피는 결핍의 가장 흔한 증상입니다), 작은 지출에 과하게 죄책감을 느끼면서 정작 큰 결정은 충동적으로 하고, "한 방"에 끌립니다. 3. 「돈에 대한 흔한 착각 아홉 가지」 돈은 제로섬이다. 내가 벌면 누군가 잃는다는 감각. 제로섬인 건 돈이 아니라 지위 예요. 그래서 지위를 좇는 사람은 남을 이겨야 하고, 부를 만드는 사람은 남을 도와야 합니다. 소득이 곧 부다. 가장 비싼 착각입니다. 부는 쓰지 않은 돈이라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늘 부자를 잘못 알아봅니다. 돈이 많아지면 돈 문제가 사라진다. 문제의 종류가 바뀔 뿐입니다. 액수가 커지면 실수의 액수도 같이 커져요. 절약이 재테크의 핵심이다. 커피값을 아끼는 논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게 통제하기 가장 쉬운 변수라서지 가장 중요한 변수라서가 아닙니다. 총론의 '적응' 법칙과 이어지는 대목이에요. 현금은 안전하다. 물가에 대해서는 확정 손실입니다. 위험을 피한 게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위험으로 갈아탄 거예요. 빚은 무조건 나쁘다. 빚은 복리의 방향만 뒤집은 것입니다. 방향이 문제지 존재가 문제가 아니에요. 한 방이 인생을 바꾼다. 원칙이 없는 사람에게 큰돈이 들어오면 액수만 커진 채로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로또 당첨자 이야기가 늘 비슷하게 끝나는 이유죠. 돈은 숫자니까 감정과 무관하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돈 결정이 감정으로 이루어지고, 숫자는 그 결정을 사후에 정당화하는 데 쓰입니다. 부자들은 특별한 정보를 안다. 실제로는 지루한 원칙 몇 개를 오래 반복했을 뿐인 경우가 압도적입니다. 이 착각이 사기의 입구고요. 돈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사할 뿐이다 각 구간의 실패는 대개 직전 구간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들고 온 데서 나온다. 몰빵으로 번 사람이 몰빵으로 잃습니다. 아껴서 모은 사람이 아끼느라 못 불립니다. 혼자 판단해서 성공한 사람이 혼자 판단하다 사기당하고요. 노력은 통제 가능한 곳에, 빈도는 통제 불가능한 곳에. 이 둘을 바꿔 넣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 돈은 생존선 아래에서는 고통을 없애 주고, 생존선 위에서는 자유를 사 준다. 문제는 고통이 사라지는 건 바로 느껴지는데 자유가 생기는 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존선을 넘고도 계속 고통을 없애던 방식으로 돈을 쓴다. 없지도 않은 고통을 없애려고.

오늘의 단어: 태도
태도란 무엇인가 態度란 마음속에 가진 기준이 행동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방식입니다. 태도는 기분과 다릅니다. 기분은 순간적으로 흔들리지만, 태도는 흔들리는 순간에도 내가 어떤 사람으로 행동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기준 에 가깝습니다. 상황이 좋을 때 친절한 것은 성격일 수 있습니다. 상황이 나쁠 때도 존중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태도입니다. 통찰 태도는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상황과 나 사이에 세우는 기준이다. 같은 실패를 누군가는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자료로 받아들입니다. 사건보다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이후의 삶을 갈라놓습니다. 태도는 말보다 훨씬 정직하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간, 돈, 사람을 실제로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사람의 진짜 태도를 보여줍니다. 좋은 태도란 늘 긍정적인 상태가 아니다. 화날 때 화를 느끼고, 두려울 때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내 행동을 결정하게 두지 않는 것.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보다 높은 기준을 갖는 것 입니다. 태도는 반복될수록 정체성이 된다. 한 번의 선택은 행동이지만, 같은 기준으로 계속 선택하면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존재의 형태가 됩니다. 태도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 앞에서 끝까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의 모습’ 나의 정체성을 만드는 원재료이자 나의 자유입니다. 내가 돈을 어느정도까지 중요하게 보고, 나에게 돈이라?? 무엇이며 돈이 나에게 행사한 영향력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나의 기준이 중요합니다
"아, 내가 이걸 하려고 태어났구나 " - 탄식 속에서 천명을 읽는 법
천명(天命)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사는가? 천명은 동사다. 행동과학자 데구치 히카루가 3.000 명 넘는 인생 상담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천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것. 2,500년 전 중용의 첫 문장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天命之謂性)." 명은 밖에서 오는 지시가 아니라 태어날 때 내 본성에 새겨진 것 — 그러니 천명이란 세상에서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면서, 동시에 가장 나다운 일이다. Why?? 천명이 왜 필요한가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흔들린다. 감정은 신호이지, 명령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기분에게 삶의 결정권을 넘긴다. 잘 될 것 같으면 가고, 안 될 것 같으면 멈춘다. 확신하면 움직이고, 불안하면 다시 저울질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그날의 감정과 외부 상황이 된다. 계속 그 저울 위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저울에서 내려와, 내가 뜻했기에 가는 삶을 살 것인가 ? (될 것 같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흔들려도 삶의 "결정권" 만큼은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감정에 따라 선택한다 → 반응 결과를 예상하며 선택한다 → 계산 타인의 시선에 따라 선택한다 → 의존 내가 세운 뜻과 원칙에 따라 선택한다 → 자율 논어가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를 굳이 마지막 문장으로 박아 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HOW 어떻게 찾는가 첫 힌트는 뜻밖에도 탄식이다. "당신이 지긋지긋하다고 탄식하면서도 계속해 온 일은 무엇인가?" 공자야말로 탄식의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힌다(天將降大任 必先苦其心志)." -맹자 탄식은 천명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대임(大任)이 도착해 있다는 증거다. 이 문장 앞에서 탄식은 억누를 감정이 아니라 판독할 신호가 된다. 둘째 힌트는 맹자의 세 글자(天不言). "하늘은 말하지 않는다" 소명은 계시처럼 오지 않고, 실행과 일 속에서 사후적으로 읽힐 뿐이다. 그래서 처방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부정하고 싶은 시절까지 긍정하면 인생을 관통한 한 줄의 날실이 보이고, 그것은 동사로 표현된다. 돕는다, 키운다, 만든다, 지킨다. 탄식에서 골라낸 조각들이 이 동사들로 모인다. 공자의 쉰도 꿈이 꺾인 자리에서 제 인생의 동사 — 기른다 — 를 수락한 순간이었다. WHAT 내가 천명을 찾았다는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을까?? 찾았다는 시그널 분발하면 먹는 것을 잊고,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어, 늙음이 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 (發憤忘食 樂以忘憂)." 낙천(樂天)이란 : 속 편한 성격이 아니라 천명을 즐기는 힘이다. 근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근심을 잊게 하는 일이 있어서다. 나의 천명은 사람들의 고유함 — 저마다의 천명 — 을 찾아주는 일이다. 확신의 순간은 내 안이 아니라, 긴 대화 끝 상대의 입에서 왔다. "아, 내가 이걸 하려고 태어났구나!" 그 탄성을 듣는 날이면 나도 먹는 것을 잊는다. 하늘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한다. 데구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가?" 오늘의 탄식을 너무 미워하지 말자. 당신이 지긋지긋하다면서도 끝내 그만두지 못한 그 일 — 어쩌면 그것이, 세상에서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