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한달만에 천만원 매출을 올렸어요.



난 두피전문가야 그동안 마케팅에 벽이 너무 높아서 나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했어.

그런데 에이그라운드 졸업을 앞두고 26년 3월 초 미니샵을 오픈했어.


오픈한지 한달 만에 천만원 매출을 올렸어.

 2백은 현금으로 받았어.


진심어린 후기도 올라왔어.

난, 20여년의 모든것을 그만 두기로 결정을 하고 22년 11월 30일 패업을 했지, 그리고 뷰가 좋다고 하는 인천 송도로 이사를 왔어. 그런데 자꾸만 마케팅에 관한 정보가 내 눈에 들어오는거야 그러던 중에 23년 7월 압구정 성형외과에서 공간이 있으니 들어와서 샵을 운영을 해주면 마케팅은 병원에서 다 해줄테니 함께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어. 난 20여년 동안 강남에서 샵을 운영을 했었지 그런데 코로나19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지. 그래서 더 이상은 버티면 위험 할것 같아서 샵을 접기로 맘 먹었어 그때 두미래에 다니는 고객들의 원성을 들었어. 원장님 그만두면 안되는데 ... 하지만 몇몇 사람들 때문에 비싼 강남 땅에서 버티는건 아닌듯 하여 샵을 접었었어. 그러던 찰나에 압구정 병원에서의 제안은 나에게 기회가 온거였지.

 

출퇴근이 멀지만 해보자 하고 계약서를 쓴뒤 송도에서 압구정 까지 출퇴근을 3개월 정도했어 그런데 3개월동안 나름 준비하고 혼자서 월 천만원을 넘게해서 병원과 수익을 5: 5로 나누는 과정에서 병원에서 광고가 하나도 안되고 못하고 있더군, 병원 홈페이지에 두피와 탈모 카테고리가 없는 홈페이지가 나온걸 보고 난 만들어 줄 것을 요구를 했어. 요즘은 홈페이지에 나의 상품을 올리지 않으면 고객은 찾아 올 수가 없는데...

 

병원에서 안전한 홍보인 홈페이지에 올려 주고 거기에 더해 병원원장은 구전광고까지 해 주기로 하고 계약서를 쓰고 온건데 하나도 지켜지지 않는거야. 앞이 캄캄했어. 삶이 왜 이리 고된거지? 이제야 내가 생각하는 병원 마케팅이 시작이 되는구나 생각을 했는데...

 

모든것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당시 나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이 시간만 지나가고 있었지. 그때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탄핵을 하여 나라는 들썩이고 나의 맘은 더욱더 심란해지고 있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게되었지.

 

나의 인생 이렇게 꼬이는건가?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모든것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찾기로 했어.

 

알바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현실에 나에게 백만원을 버는건 하늘에 별따기란것을 알게되었어.

 

취업을 해보자 하고 이력서를 내려고 하니 난 두피전문으로 일한 이력 밖에 없네.

 

그래서 두피관리실에 이력서를 올리고 취업을 하려고 하니 전화가 왔어 적은 금액으로 원장님 대우는 아닌듯 하다고, 이 업종에서는 나를 알아보고 함께 일 하는게 부담인 것을 알게되어지 난 나쁜 소문이 돌겠다 싶어 일주일도 안되어 취업정보에서 이력서를 내렸어 유명세도 취업에는 도움이 안되더군, 그래서 잠시 나에게 맞는 알바를 해보고 싶어서 부동산에 알바를 일주일 하게되었어 전화만 받고 안내만 해주면 된다고 하더니 알고 보니 땅을 파는 부동산에 들어 간거야 취업을 미끼로 땅을 사게끔 하더군 그래서 나 돈이 묶여서 살 수 없다고 하니 일주일 만에 팀장이 보자고 하더니 그만두라고 하더군 , 나 이렇게 짤렸어. 어이가 없는 일을 겪으면서 내 삶을 어떻게 설계를 해야 하는지 막막했어 있는 돈은 까먹고 1억 정도 22년 사기 당해 복구가 필요한데 내 인생은 자꾸 마이너스로 가고 있네.

그러던 중에 구매대행을 해서 돈을 버는 유투버가 내 눈에 자꾸만 들어오네 그래서 구매대행에 대한 강의를 조금씩 듣게 되었어. 그래서 구매대행에 대한 본격적인 강의를 들어야 겠고 난 알아보기로 맘을 먹었어. 그 강의가 당시 2백 오십정도가 필요했어. 그런데 나와 함께 병원 마케팅을 하기로 한 재원대표가 현재는 메종드쿠로이 라는 돈까스음식점을 진행고 있지만 나와 함께 두피센터마케팅을 해서 병원에 두피전문시스템을 넣어주려고 계획을 했었지.

그런데 그게 물거품이 되었지, 난 재원대표도 구매대행을 해 보는것을 권유를 했어. 그 말을 하는데 재원대표가 에이그라운드라는 마케팅 전문업체 상담을 받고왔다고 말 하면서 원장님 상담 한번만 받아보라고 하네. 그런데 상담전에 리서치 처럼 에이그라운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써서 제출을 하고 면담을 하는거래. 그래서 한번 살펴보고는 상담 요청을 신청했어. 난 상담비 99,000을 내니 질문서가 왔네. 그런데 사업의 방향을 잘 잡아주기 위한 질문지가 왔어 난 2박 3일 정성스럽게 읽어보고 답변을 하는데 온 신경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 그런데 질문자체가 정말 체계적이고 전문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빈 칸을 채워서 보냈어.

 

그리고 상담 날짜에 김서한대표와 마주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내가 아직도 두피탈모 전문가로 다시 일하고 싶다는 것을 알게되었지. 40분 상담을 마친뒤 난 결심을 하고 25년 9월 4일 마케팅 천 오백만원의 비용을 남동생에게 빌려서 결재를 했어. 그리고 마케팅 42기 팀이 모이는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고 기다리는 동안에 에이그라운들에서 받은 책을 열심히 보고있었어. 강의 날짜를 기다리던 중인 9월 14일 일요일 아버지가 쓰러지셨네. 그런데 간병을 할 사람이 나 밖에 없는거야. 난 그 때 부터 간병을 하는라 정신이 없었어. 엄마는 치매가 온 상태이고 형제들은 제각기 지방에 살고있네. 나만 그나마 송도에서 부모님 댁과 가까운 곳이라고 내가 병원을 쫒아 다녔어. 그 와중에 현금이 없어서 부모님 집을 내 놓게되었고 그 부동산 처리도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네, 아버지는 9월 29일 퇴원을 앞 두고 있었지.

퇴원 당일 새벽에 침대에서 낙상을 하고 뼈에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믿고 퇴원을 했어 그리고 난 마케팅이 시작이 되었지 하루가 이렇게 전쟁터 처럼 하루 하루가 스트레스를 달고 살아가고 있더군, 빨리 평화가 오기를 기다리며 에이그라운드에 집중했어.


이 험난한 길을 그냥 포기하는건 나의 인생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고, 난 이미 두피탈모가 천직임을 알고 있어, 내가 두피케어를 하면 10년 20년 고민하던 두피의 문제가 바로 정상이 되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빠지던 모발이 한번의 케어로 빠지는 모발량이 엄청 줄어들어 고객들이 놀라는 일이 많아. 이건 천명이고 사명이잖아 그런데 난 마케팅 사명도 함께 받았으면 엄청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 그래서 난 고생을 하고있었지.

그러던 중에 에이그라운드에서 그 통로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 날 성장시키고 조금만 마케팅의 원리를 이해하고 접목을 한다면 내가 이 전문적인 일을 해 나갈 수 있을것 같았어. 그래서 해보자 하고 늦은 나이에 겁도 없이 시작을 했어.

 

1차 강의를 들었어. 그러던 중에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계속해서 아프기 시작하네. 스터디를 하는 동안 열심히 따라가는데 초반에는 아버지로 인해 집중도가 떨어졌다면 이번에는 거의 마무리 스터디 중인 26년 1월 1일 이번에는 엄마가 쓰러지셨어. 결국은 엄마는 치매도 있으신데 이번에 쓰러지시면서 왼쪽 뇌가 터졌어. 그래서 현재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계셔. 너무 드라마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네. 엄마가 쓰러지시고 집 매매와 부모님 이사까지 있었어 그래서 난 2개월간 맨붕이 왔어 머리 회전이 안되고 스터디의 맥락이 끈어 졌어.

하지만 난 절대 포기 해선 안돼 라고 외치며 일을 수습해 나가고 더디지만 조금씩 일을 해 나가고 있었어.

왜! 그건 나와 함께하는 팀, 그리고 큰 그림을 그려주는 최고 리더인 에이그라운드 김서한대표가 있기떼문이지. 42기 팀을 만들어준 김서한 대표는 정신치료와 마케팅을 통해 사업을 방향을 스스로 찾는 힘을 길러주는데 꼭 치료 받는 느낌이 드네. 한마디로 의사보다 치료를 잘 해. 우리 사업이 어디가 막히고 병이 들었는지 그리고 약 처방처럼 마케팅 처방전을 해주시네. 우리 팀 한명 한명 성장하도록 맥을 잘 짚어주네.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의 자리를 찾아가면서 사업가가 탄생하는 것을 현장에서 보게되었지.

 

위태 위태한 상황에서도 서로 잘 챙겨주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마케팅 김서한 대표의 순수한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사명을 몸소 느끼면서 버티고 있는 나다.

특히 42기 김선호팀장은 평정심을 잡고 계획대로 우리 팀을 리더를 잘 해주는 최고의 리더야 그리고 수시로 전화를 해서 나에게 하나 하나 할 수 있게 아니 포기 하지 못하게 챙겨주는 현재원대표가 내 옆에 있어 난 일을 안 할 수가 없었던것 같아.

마케팅이 거의 끝나갈 무렵 12월에 난 송도에 미니샵을 오픈하기로 선포하고 준비를 하고있었지. 보증금 준비를 하고 매장을 결정하고 26년 1월 17일 오픈을 하기로 했지 그러던 중 26년 1월 1일 새해에 엄마가 쓰러지셔서 병원을 오가며, 이사와 매장 인테리어리어 까지 진행을 하니 너무 너무 어려웠어.

이 일들이 왜 나에게 이렇게 일어나는지? 내가 뭘 어떻게 했기에 이 험난한 길을 걷게 하는 걸까? 날 왜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가는지 알 수 가 없는 일들이 일어나네.

그래도 내 마음은 두피전문가로 가야해 가야해 이런 상황에서도 갈 꺼야를 계속해서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

 

잘 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이 시간을 충실하고 보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정말 짠하고 슬펐어.

그러던 중에 이사도 무사히 마치고 아버지는 새로운 곳에 적응을 잘 하고계셔, 샵의 오픈은 3월이 되어서 겨우 열었어 주변에서 우리 매장에 뭔 일이 있어서 운영을 안 하는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오픈이 너무 늦어졌어.

드디어 3월 초 두미래Ai 두피탈모전문센터 송도점을 오픈했어. 42기 팀은 오픈과 동시에 오셔서 관리를 받고 후기를 정성껏 써주고 팀장 선호대표는 그 어려운 두미래블러그를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달 동안에 매일 같이 글을 써서 틀을 잡아 주었고 현재원,우상희대표는 바쁜 가운데 네이버플레이스를 가동시켜서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 CRM 전문가인 이형민대표는 세일즈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서 방향을 잡아주었지. 현재원대표는 메종드쿠로이돈까스 음식점을 오리역 부근에서 운영을 하면서 시간이 날때마다 송도로 달려와 수제 간판도 만들어 달아주고 이곳 저곳 미진한 공사를 채워주었어. 그러던중 예전 고객에게 송도 미니샵 운영을 했다고 3명에게 알렸어 그랬더니 시흥에서도 한걸음에 달려오시네

 

그리고 42기 팀의 구전 광고와 스레드에서 몇명 체험을 하러 왔고, 건물아래 부동산에서 한분이 두피문제로 회원등록을 했어 그렇게 3월 매출을 천만원 했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이렇게 매출을 올렸지. 오픈 하자마자

 

좋은 성과에 얼마나 기쁜지 몰라. 조금만 마케팅만 준비를 한다면 매출을 올리는 것은 당연할 것 같아.

 

매장 경비는 최대한으로 줄이려고 미니샵을 오픈했어 좁지만 좁은 곳에서 월 매출 3천을 올리는게 목표야.
4월에는 청라에 있는 병원에 입점을 할 예정이야, 재원대표가 영업을 했어. 하나의 매장을 운영하게 되는 거야 . 잘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중이야 .

입점할 병원.


아직은 부족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잘 될듯하네.

난 탈모인구를 줄여 보겠다고 일 한지 24년 되었네. 이제 내가 대한민국 탈모인구를 반으로 줄여 볼게. 나에게 온 탈모인들 머리카락 덜 빠지고 건강한 상태를 만들어 줄 거야.

오늘도 나에게 두피탈모 전문가로 책임감 있는 삶을 살게해준 에이그라운드 김서한대표에게 감사의 맘을 전합니다.
서한 대표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전 좀 느리지만 꾸준하게 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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