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기 정인호
1일 전•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

2026년 10월 16일

-멈춤이 길이 되려면

조용히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올라온다.

혼자 뒤처진다는 느낌.

다들 무언가를 만들고, 올리고, 팔고 있는데 나만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내가 지금 돈을 벌지 않고,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그런데 이 느낌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다.

'뒤처진다'는 말은 혼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속도를 기준으로 삼을 때에만 생기는 감각이다.

그 기준은 대개 내가 고른 것이 아니다.

화면 너머로 흘러드는 남들의 성과, 남들의 매출, 남들의 하루다.

남의 속도를 내 눈금으로 사용하는 순간,

멈춤은 곧 손실이 된다.

이 느낌 앞에서, 나는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번 돈으로 당신의 자유시간을 구매한 것이다.

이 시간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일하고, 견디고, 벌어서 구매 시간이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말은 시간을 빌려 쓰는 사람의 언어다.

'내가 돈으로 산 시간'이라는 말은 시간의 주인의 언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산 시간을 쓰는 여러 방식 가운데,

사유의 시간은 가장 값지고 소중한 소비의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조용히 읽고 사유하는 시간은,

누구의 기념비에도 새겨지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모를 것이다.

사진으로 남지도 않고, 매출표에 찍히지도 않는다.

오늘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에 내놓을 것이 없어 보이는 시간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당신의 생각을 바꾸고, 세상에 대한 당신의 해석을 바꾸고, 당신의 행동을 바꾸고, 당신의 습관을 바꾸고, 당신의 삶을 바꿀 것이다.

그런 당신이 주변에 영향을 주고, 주변을 바꾸고, 바뀐 주변이 세상을 바꾼다.

남의 속도를 내려놓는 동안 부하율은 줄고,

자기만의 해석이 자라는 동안 고유함이 채워진다.

그렇게 차오른 고유함은 한 자리에서 머물지 않는다.

밖으로 번진다.

고전에 이 순서를 먼저 본 사람들이 있었다.

동양의 고전 《대학》은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일이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고(격물), 앎을 끝까지 밀고 나가고(치지), 뜻을 참되게 하고(성의), 마음을 바로 세우는(정심)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네 걸음 모두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 조용히 읽고 생각하는 시간 안의 일이다.

백오십여 년 전 영국의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미들마치》를 이렇게 맺었다.

세상의 선(善)이 자라는 것은 얼마간 역사에 남지 않는 행위들 덕분이고, 우리 삶이 이만큼이라도 괜찮은 것은 절반쯤은, 숨은 삶을 충실히 살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 잠든 이들 덕분이라고.

세상을 바꾸는 길은, 처음부터 기념비 없는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다만 함께 살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몸은 멈췄는데 마음은 여전히 남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멈춤이 아니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일수도 있다.

그래서 이 시간이 정말 '내가 구매한 시간'인지 알아볼 작은 표시 하나를 건네고 싶다.

구매한 시간에는 영수증이 남는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노트에 남은 문장 하나,

어제와 달라진 해석 하나,

조금 깊어진 숨 하나면 충분하다.

영수증은 누구에게 보여 주려고 챙기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되나?'

가 다시 올라올 때,

조용히 꺼내 보는 것이다.

그 영수증 앞에서,

사람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게 된다.

"나는 뒤처져 있던 것이 아니라, 길을 다시 보고 있었구나."

"더 달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도 되는 거였구나."

지난 글 「성공은 고통스러워야 한다?」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고통은 더 참으라는 신호가 아니라, 잠시 멈춰 길을 다시 보라는 신호라고.

그리고 다시 길이 보일 때까지 곁에 있고 싶다고.

오늘 이야기한 "고요"가, 바로 그 멈춤이다.

길은 달리는 동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멈춰 선 고요 속에서 다시 보인다.

그래서 나는 먼저 멈춰 보는 사람이고 싶다.

조용히 읽고 생각하며, 내 해석이 바뀌는 시간을 기꺼이 사는 사람.

그렇게 다시 길을 본 사람이 누군가의 곁에서도 "멈춰도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한 사람의 고요가 곁에 앉은 한 사람을 덜 서두르게 하고, 덜 서두르게 된 그 사람이 또 다른 곁을 바꾼다.

이게 내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고 싶다.

함께 읽기

https://geekus.kr/consciousculturearchitect/post/16025

성공은 고통스러워야 한다? - 인호구조단성공은 고통스러워야 한다? - 인호구조단-고통이 길이 되려면돌아보면 아프지 않고 지나온 성장은 없었다. 낯선 일 앞에서 작아졌고, 거절당했고, 기다렸고, 익숙했던 나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고통이 성공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있다고 느낀다.그런데 아팠다고 해서 모두 길이 되지는 않았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문geekus.kr

이 글의 제목을 제의해주신 강소라 대표님 감사합니다 🙏

0
3
50기 강소라
50기 강소라1· 21시간 전

아멘😭🙏

1
45기 정인호
45기 정인호3작성자· 11시간 전
삭제된 댓글입니다.
45기 정인호
45기 정인호3작성자· 11시간 전

@50기 강소라 ㅋㅋㅋ. 감사합니다

0

여기에 파일을 드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