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기 정인호
2시간 전•

결핍이 만족을 낳는다고?

책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다.

“결핍이 만족을 낳아. 풍요가 만족을 낳는 것은 아니야.”

처음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이 맛있고,

목마를 때 마시는 물이 달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방에 들어오면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온기가 온몸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결핍이 만족을 만든다는 말은 꽤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정말 결핍이 만족을 만드는 걸까?

가난한 사람이 모두 만족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외로운 사람이 사랑을 더 잘 느끼는 것도 아니다.

결핍이 오래되면 사람은 오히려 불안해진다.

돈이 부족하면 돈에 집착하고,사랑이 부족하면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인정이 부족하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결핍 자체가 만족을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 만족을 만들까?

결핍이 만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핍과 충족 사이의 ‘대비’가 만족을 깨운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밥이 달았고,

추웠기 때문에 따뜻함을 알아차렸고,

멀리 떠나봤기 때문에 집의 편안함을 알게 된 것이다.

없음이 좋은 것이 아니다,없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결핍’과 ‘결핍감’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핍은 상태다.

“지금 배가 고프다.”

“지금 돈이 부족하다.”

“지금 휴식이 필요하다.”

결핍감은 해석이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조금만 더 가져야 행복할 것 같아.”

“나는 아직 멀었어.”

둘은 전혀 다르다,결핍은 충족되면 끝난다.

결핍감은 충족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100만 원을 벌면 1,000만 원이 부족하고, 1,000만 원을 벌면 1억이 부족하다.

팔로워가 만 명이면 십만 명을 바라보고,십만 명이 되면 백만 명을 바라본다.

그래서 풍요로운데도 부족할 수 있다.반대로 가진 것은 많지 않은데 충분할 수도 있다.

만족은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보다 지금 가진 것을 얼마나 느낄 수 있느냐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가끔 결핍이 필요하다. 강요된 결핍이 아니라 선택한 결핍이다.

굶주리는 것과 잠시 단식하는 것은 다르고,

돈이 없는 것과 소비를 멈춰보는 것은 다르고,

고립되는 것과 휴대폰을 내려놓는 것은 다르다.

잠시 불편함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 그러면 평소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나타난다.

따뜻한 물.

한 끼의 밥.

편안한 침대.

나를 기다리는 사람.

오늘도 움직이는 몸.

우리는 새로운 것을 얻어서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잠시 멀어져 봐야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의 가치를 다시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의 구조를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다.

결핍 → 대비 → 음미 → 충분함 → 만족

행복의 반대는 가난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행복의 가장 큰 적은

“아직 부족하다”는 감각에 너무 익숙해져 이미 충분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결핍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로는 결핍을 지나 풍요를 알아차리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만족은 더 많이 갖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다시 느끼는 순간 시작된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풍요가 아니라,풍요를 느끼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0
0

여기에 파일을 드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