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쓴 개발일지 #001

늦은 밤, 핸드폰이 울렸다.

[네이버 카페에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이 달릴 글은 하나였다. 대표님들과 이야기 중에 나온 [릴스 분석기] 를 1차 구현했다며, 사용하실 분들은 사용해보시라고 남겼던 그 글. 들어가보니 S대표님의 댓글이 있었다. 최근에 읽은 책과 네이버 카페 글들로 내적 친밀감이 가득한 나는, 냉큼 댓글을 하나 더 달았다.

인터뷰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해주셨다. 나는 그날 새벽부터 다음날까지 나름의 머리를 굴려가며 인터뷰를 준비했다. 지금 버전에서 ver2 가 나온다면, 그에게도 놀라움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자신감이 꽤나 높아진 상태였다. 상상속의 릴스 분석기를 만들고, 그걸 외부에 공개하고, 긍정적 호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릴스 분석기를 다른 분들께 공개했을 때, 그들은 엄청난 반응을 보여주셨다. ‘우와 - 대박 - ‘ 이란 반응들이 얼떨떨 했다. 그 이후에도 나를 치켜 세워주는 반응들을 볼 때 마다 그저 행복했다. 직장인이었던 내가 에이그라운드에선 이런 반응을 몇 번 얻자 점점 내 자신에게 취했던 것 같다. 게다가 1:1 코칭에서 ‘헤매지 않고 나만의 서비스 컨셉을 결정한’ 내 자신이 그저 좋았다.

내가 인터뷰어에게 준비해간 질문들은 죄다 내 위주였다. 대표적인 질문들은 이것이었다.

- 장점

- 개선할 점

- 현재 릴스 생성하는 과정과 대비해보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 만약 어떻게 하면 더 쓰겠는지?

인터뷰어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줌으로 들어갔다. 사실상 첫 유저였다. 운이 아주 좋게 그 유저의 피드백을 바로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떨려서 말이 제대로 안나왔다. 이미 서비스를 써본 그에게 ‘내 서비스의 동작방식’을 다시 설명하는 식이었다. 꽤나 긴장했다.

어떠셨어요? 라는 말도 안되는 질문을 그에게 던질 정도로, 머리가 멈춘 느낌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정말 이 기능이 실제 도움이 되실 것 같은지 물어보았다.

아니요. 저는 안쓸 것 같아요.

이어, 그는 내게 그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미 충분한 레퍼런스와 성공 경험을 가진 자는 피드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헉 — 너무 맞는 말이었다. 이미 자기만의 방식이 충분히 성립되었을 뿐 아니라, 그 ‘방식’ 을 판매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마치 내가 원로 대학 교수에게 찾아가 ‘교수법 컨설팅’ 을 해주겠다고 이제 갓 만든 시스템을 들이민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어떤 기능이 필요하신데요?

저는 평소에도 레퍼런스를 모읍니다. 그리고 그걸 모아서 습득하는 시간을 갖죠. 더 많은 레퍼런스가 한데 모아져 있다면 모를까.

릴스 고수들의 눈에서 보이는 건,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이미 뛰어넘은 상태였다. 철저히 그 산업군의 고수에 빙의하지 않는다면 나는 유저를 놓칠게 분명했다. 말문이 막혔다. 질문들을 꺼낼 수 조차 없었다. 릴스 분석기가 마치 ‘대량화/자동화’ 에 초점이 맞춰져있었기에, 나도 발견 못한 부분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해주셨다.

LLM 이 만들어낸 답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아뇨… 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LLM 의 인풋을 ‘초고수’ 가 넣지 않는 이상, 내가 넣는다고 뭐 특별히 달라질 게 없었다. 누군가의 말투를 따라할 수 있는 기능이라던가, 프레임을 초 단위로 캡쳐해서 볼 수 있게 한다던가 하는 그 모든 것들은 부수적인 일이었다. 본질은, ‘릴스 분석’ 을 기계가 충분히 납득할 만큼 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전에 남겨주신 댓글이 하나 더 생각났다.

유사한 , 참고할 만한 다른 릴스를 분석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 이 기준은 뭔가요?

사실 나는 그런 것에 대한 개념도 없는 상태였다. 아마 아셨을 것이다. 내가 릴스를 한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더 좋은 릴스를 만들기 위해 고민해본 경험도 없다는 것. S대표님은 쉽게 이야기 해주셨다.

‘조회나 노출이 큰 것들, 나와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말이에요’

인간이 가진 정성적인 부분은 각기 다르기에, 결국 ‘기계’ 가 담당할 수 있는 가장 정량적인 부분은 ‘top 10’이었다. 대중의 픽을 받은 릴스는 어떤 지점이 있나, 내 릴스와 비교했을 때 어떤 것이 다른가.

그렇게 대표님과 짧고 굵은 인터뷰가 끝났다. 다시 보니 내가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 했던, 그 대시보드가 미워보였다. 한참 못나보였다. 역시 난 실패했어 — 라며 구렁텅이에 빠질락말락, 갑자기 이번주 내내 읽고 있던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알베르토 사보이어가 쓴 책, 거기에 나온 ‘프로토 타입’ 개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수많은 실험들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그만큼, 하나의 상품이 나오기까지 다양한 시도와 테스트를 거쳤다는 것을 뜻했다.

나는 분명 그 책을 읽으며 ‘수백번의 테스트? 당연하지’ 라고 생각했었다. 명확히 그기억이 났다. 그러나 막상 내 상황이 되니, 하나의 부정적 피드백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걸려 넘어져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 깨달았다고 말하던 내가 위선같이 느껴졌다.

아니, 위선은 무슨 하고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보니 S대표님의 아이디어는 사실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 구현하면 적어도 한명의 사용자는 확보하는 셈이었다. 말로만 프로토, 프리토를 외칠게 아니었다. 맨날 말로만 안다고 하는 A/B 테스트 이딴건 집어치우기로 했다..

몸으로 부딪히기로 했다. ver2가 태어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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