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한
36분 전

사업의 태도(부제: 일시적인것에 영혼을 바칠것인가?)

안녕하세요. 김서한 입니다. 이번시간에는 우리가 사업을 할때 어떤 태도로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제가 마스터 마인드 수업을 시작하면 에이그라운드를 입어야 큰돈을 날리지 않을수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영상중에 하나가 중용의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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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예기 중용 23번째 장)

위의 중용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항복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항복의 어원을분석해보면

항복(降服)

‘降’은 스스로를 낮추어 지배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

‘服’은 그에 따라 몸을 굽히고 뜻을 따르는 것

→ 따라서 항복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자기 주체성의 위치를 낮추고, 타인의 명령이나 구조에 편입되는 완전한 태도 변화

항복이란 무릎을 꿇고 손을 내미는 자세이다.

이런 중용과 항복의 자세를 갖추어야만 에이그라운드과정이 입어 지게 되고 성과로 직결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 우리는 수양을 해야합니다.

잠시 여러분의 인생을 뒤돌아 보시죠

우리가 삶이 시작되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결혼 을 겪게 됩니다.

저는 초등학교때 파브르곤충기를 좋아해서 어머니에게 이런말을 했습니다. 엄마나는 돈을 안벌고 산에 들어가서 곤충채집을 하면서 살거니 알아서 살아요. 무슨 마음이었는지 곤충학자가 장래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를 거치니 의대를 가야한다는 이상한 의식이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대치동에서 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곤충학자 를 꿈꾸던 아이는 의대갈 실력은 안되서 수의대로 꿈을 축소 시키고 수의대도 안되서

생명과학과를 진학 하게 됩니다. 그리고 타인이 만들어준 꿈을 포기 하지 못하고 20대를 수의대 편입 하다가 결국

아주대 경북대를 합격 하고 그꿈을 더 축소해서 아버지가 알려준 안전장치인 장교과 대기업을 선택해서 cj제일제당에 입사 하게 됩니다.

아주대를 합격했을때 아버지랑 껴안고 기뻐했고, 1주일 뒤에 우울했으며, cj제일제당에 합격하고 9박10일동안 신입사원 ot에서만 행복했고 공장배치후 우울했습니다.

그리고는 도대체 행복할수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됬고 이대로는 행복해지는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어미니 누룽지 사업을 도와줄려고 하다가 사업에 들어왔으며 사업한지 거의 10년차가 된지금

10년동안 인생과 나를 찾는 과정을 뼈아프게 경험하고서야 어떤 태도로 사업과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위에 진로를 선택하고 일시적 기쁨을 느끼고 다시 우울해지는 무한 굴레에 있으며 사업도 10억 100억 1000억 1조 등 비교의식에서 끝없는 일시적 기쁨을 얻을려고 무한 굴레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우리는 죽을까바 두려워 하며,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죽음을 피할수가 없습니다.

결국엔 어차피 죽을 인생을 두려워해서 더 안전한 집, 안전한 돈, 안전한 직장을 추구하고 얻고 허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두려움이 없다면 인생이 행복해질수있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두려움의 정의는 두려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실을 현실처럼 경험하는 것이며, 그래서 두려움을 없애려고만 하면 중요한 정보를 놓칩니다.

오히려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운가?”

그리고 한 번 더 들어갑니다.

“그것을 잃는 것이 정말 위험한가?”

마지막으로,

“그것을 잃을 가능성보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여기에서 두려움 → 선택 → 용기로 전환됩니다.

특히 사업과 사명의 관점에서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큰 이유를 가진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용기는 두려움의 반대라기보다 두려움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행동하는 능력입니다.

두렵지 않으면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조는 오히려 이렇습니다.

두려움 → 위험을 인식한다 → 그래도 선택한다 → 용기

그래서 용기의 본질은 두려움의 제거가 아니라 두려움보다 중요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떄 가장 두려움에 맞서서 이긴 이순신 장군을 떠올려보면

必生則死 — 반드시 살려고 하면 오히려 죽는다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사업가는 그래서 안전한 사업만 합니다. 직장인은 싫어도 월급 때문에 떠나지 못합니다. 창작자는 욕먹을까 봐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업가는 매출이 떨어질까 봐 원하지 않는 고객까지 붙잡습니다.

결국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잃지 않을 수 있는가?”

가 됩니다.

몸은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선택권이 죽습니다.

이 의미에서 必生則死를 철학적으로 이렇게 확장할 수 있습니다.

살아남는 것만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순간,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죽이기 시작한다.

결국 죽는것이 두려워서 살아남을려고 발버둥 치고 그것때문에 자유를 뺏기고 행복을 뺏기는 것이죠.

必死則生 —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유가 생긴다

반대편에는 必死則生이 있습니다.

여기서 ‘죽는다’는 것을 무모하게 목숨을 버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핵심은 상실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돈을 잃을 수도 있다.”

“사업이 망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나를 떠날 수도 있다.”

“지금 가진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

“실패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이것을 진짜로 받아들이면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선택권이 돌아옵니다.

죽음의 수용 → 상실의 수용 → 두려움의 약화 → 선택권의 회복 → 자유

그래서 必死則生의 현대적 의미는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지키겠다는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돈의 노예가 되는 구조도 똑같다

돈에 대한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면 사실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 → 생존 → 안전 → 돈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말합니다.

“돈을 더 벌면 자유로워질 거야.”

1억을 벌면 3억이 필요하고, 3억을 벌면 10억이 필요하고, 10억을 가지면 그것을 잃는 게 두려워집니다.

돈이 증가했는데도 자유가 증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를 결정하는 변수는 보유한 돈의 절대량만이 아니라 ‘잃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범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역설이 가능합니다.

돈이 없어서 돈의 노예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가진 돈을 잃을까 두려워 돈의 노예가 되는 사람도 있다.

결국 핵심은 ‘죽을 각오’가 아니라 ‘잃을 각오’다

이걸 현실에 적용할 때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죽을 각오를 하라” → “잃을 각오를 하라.”

돈을 잃을 각오. 평판을 잃을 각오. 기회를 잃을 각오. 누군가에게 거절당할 각오. 기존의 정체성을 잃을 각오.

그러면 이상하게도 사람은 더 과감해지는 게 아니라 더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으면 모든 선택이 방어적이 됩니다.

반대로 상실을 받아들인 사람은 질문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위해 살지?”

이게 필사즉생을 사명과 사업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전환이라고 봅니다.

죽음이 두려운 사람은 생존을 선택하고,
생존이 절대적인 사람은 돈을 선택하고,
돈이 절대적인 사람은 자유를 포기한다.

그러나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상실을 감수할 수 있고,
상실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은 돈보다 사명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가 생긴다.

그래서 必死則生 必生則死를 현대적으로 한 문장으로 바꾸면 이겁니다.

“살아남기 위해 살면 평생 끌려다니고, 잃을 것을 각오하면 비로소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역설적인 것을 삶으로 살아냈을때 자유을 얻고 행복해 질수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사업을 했습니다. 돈에 행복을 팔려고 사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돈에 행복을 팔려고 사업을 했다고 주장하시면 할말은 없습니다.

돈을 우상숭배하면서 평생 사시면 됩니다.

우리는 결국 두려움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무언가를 얻을수있습니다.

애매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됩니다.

사업의 태도

1.두려움을 포기하고 이것저것 다 얻을려고 하지 말고 사업에 올인원씽하기로 결단해야함

2.상대적인 태도를 버리고 원칙주의 태도를 타협없이 지켜야함. 마음의 기준은 원칙이외에 두면 안됨

3.나름대로 평범 평균적으로 등등의 애매한 자세를 절대 취하지 말고 사명으로 세상과 선을 긋고 무시당하고 욕을 먹고 경멸당하고 공격당해도 절대 굽히지 않고 일관된 자세를 취해야함

4.내가 자격이 없다는등 그것으로 합리화 해서 타협하지 말아야함

5.기존의 패턴을 깨야함, 패턴을 깨려면 세계관이 있어야 하며, 패턴안에 들어가는건 누구나 함, 왜냐면 두려워서 패턴안에 있고 싶은것임, 패턴안에는 증거가 있습니다. 다른 사업다들이 들어가고 있다는 안전한 증거가 있다는것을 오히려 두려워 해야합니다. 증거를 따라가는건 쉽고 마음도 편합니다. 그런데 패턴 밖으로 나가려면 정반대를 해야합니다. 증거가 없는 자리에 두려움을 넘어서서 베팅해야하며, 그 베팅을 할려면 결국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대학교를 대체하겠다고 하는 것이나, 사명, 신념을 6-7년전부터 주장한것, 잠재의식과 사업을 연결하고 통합한것이건 아무런 증거도 없었으며 그냥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믿는다고 말만 해봤자, 믿음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현실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6년전 사명이야기를 하고 다닐때 저에게 배운 어떤 누구도 사명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큰 사업가들이 사명이야기 하니 증거가 나오니 사명이야기 하며, 미래신문기사 쓰라고 해도 진지하지 않다가 1000억 사업가가 미래신문기사 쓴다니까 미래신문기사를 씁니다. 그리고 원칙을 아무도 안가르치니 배우고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사업은 믿음의 영역이고 증거가 없어도 믿어야하며 믿는것은 행동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증거를 따라가는건 쉽고 마음이 편하며 두려움을 극복할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것과 시장이 다른때만 비로소 패턴밖에 들어 갈수 있고, 시장과 다른 믿음대로 행동할때만이 현실이 됩니다. 아무도 안들어 가는 자리에 혼자 손을 들고 있다는건 계속 욕먹고 불편한 일이고, 무시당하기 좋습니다. 그 불편함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은 세계관과 사명입니다.

사명이 약한 사업가들은 사명이 약한 사업가들은 별다른 결심이 없어도 자동으로 패턴안에 머물게 되는게 그게 평범함 사업가를 못 벗어나는 메커니즘이다.

결국 위에 항복과 중용의 자세는 증거가 없어도 믿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을 넘어가는 용기를 가진자만 할수있는것입니다.

결국 코칭받는 태도부터 여러분들은 증거를 가져오세요. 라고 사례가 있나요? 라고 묻는건 겁쟁이의 태도입니다. 사업을 때려치세요. 그냥. 직장을 다니세요.

알려주시면 일단 해보겠습니다. 라는 행동을 수반한 믿음의 태도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낼때 사명은 비로소 내삶에 실제가 되는것이며, 에이그라운드에게 지불한 가치의 100배를 뽑아가실수있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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