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
사이먼 시넥
오늘 사이먼 시넥의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생각에 오래 머물렀다.
사실 나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는 편이다. 사이먼 시넥에게 관심이 갔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그의 자기소개에는 출생, 학력이나 경력보다 먼저 자신의 사명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느끼고, 열정을 가지고 일하며,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세상.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더 강한 조직과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가 꿈꾸는 세상이다.
그 문장을 읽는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WHY
사이먼 시넥은 삶에서 ‘WHY’를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무엇을 하는가보다 왜 그것을 하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WHAT’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무엇을 만들 것인지,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얼마나 성취할 것인지.
그리고 'HOW’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한다.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놓치기 쉽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왜 이것을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묻는다면,
나는 왜 살아가는가.
사이먼 시넥이 말하는 WHY를 따라가다 보니, 우리가 그동안 이야기해 온 ‘신념’과 ‘사명’이 떠올랐다.
결국 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왜 하느냐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나 자신의 WHY를 생각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의외의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숭고함
‘숭고함’이다.
崇(숭)**은 높이다, 받들다, 존중하다, 우러르다는 뜻이 있습니다.
단순히 높다는 뜻이 아니라, 가치가 높아서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상태를 담고 있습니다.
**高(고)**는 높다, 뛰어나다, 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물리적인 높이뿐 아니라 정신적·도덕적으로 높은 상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숭고하다는 것은, 나 자신보다 더 높고 귀한 가치를 마음에 두고 그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평범한 의미보다 숭고한 의미에 끌리는 사람인 것 같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성공하고 싶다거나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만으로는 내 마음이 충분히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도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좋은 가치들이 나를 통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퍼졌으면 좋겠다.
중용
생각해 보면 최근 내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것도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 중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소한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긴 적이 있다.
그리고 실천에 옮기려고 했다.
항복의 마음은 있는데도 사소한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잘 할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되었다.
안하고 싶은 것과는 달랐다.
다만 몇 년동안 사소한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삶을 살다보니 잘 될지 걱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제대로 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생활의 루틴이 만들어졌다.
루틴이 자리 잡으니 내가 나 자신을 믿는 마음도 생겼다. 자존감이 올라갔고, 신기하게도 삶의 에너지도 함께 올라왔다.
작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은 단순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이 아니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었다.
거창한 사명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의 아주 작은 행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까운 사람
그리고 오늘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삶의 방향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질문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어떨까?
예전의 나는 죽음 자체보다 다른 것이 두려웠다.
내가 사라졌을 때 이 세상이 나의 존재를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내가 세상에 아무런 가치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는 사람이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 두려웠다.
그런데 오늘 이나모리 가즈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두려움의 정체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는 2022년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깝다’고 생각했을까.
단순히 슬퍼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조금만 더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더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는데.
조금 더 그가 하는 일을 보고 싶었는데.
그런 아쉬움이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소중한 가치때문에 오는 아쉬움이다.
나는 그 지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죽었을 때 누군가가 슬퍼하는 것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이 조금 더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 사람이 조금 더 일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사람이 세상에 조금 더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숫자가 꼭 수천 명, 수만 명일 필요도 없다.
백 명만이라도 진심으로 나의 부재를 아까워한다면, 나는 꽤 가치 있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가치있는 사람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성공이 아닌 것 같다.
‘쓸모 있는 인간’보다도 조금 더 깊은 의미다.
나는 세상에 ‘가치 있는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다.
그리고 그 가치는 직함이나 재산, 명성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좋은 생각을 남기고,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
내가 가진 것을 통해 세상에 좋은 가치를 조금씩 보태는 것.
이미 사명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약간의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아직 나의 WHY를 완벽한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조금 선명해졌다.
그 안에는 반드시 ‘숭고함’이라는 가치가 들어갈 것이다.
나는 숭고한 것을 좋아한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만을 좇지 않고 더 큰 가치를 향해 움직이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다고 거창한 일만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숭고한 삶은 거대한 결심보다 사소한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작은 약속을 지키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정성스럽게 하고, 매일의 루틴을 지켜내는 것.
그 작은 행동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사소한 것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동시에 계속 질문할 것이다.
나는 왜 이것을 하는가.
이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무엇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가.
그리고 내가 살아 있음으로 인해 세상에 무엇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질 수 있는가.
아직 답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어떤 방향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하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참 아까운 사람이 떠났다.”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삶.
누군가에게 내가 더 오래 존재하기를 바랄 이유가 있었던 삶.
그런 삶이라면 꽤 잘 산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내가 찾은 WHY의 첫 번째 단어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숭고함.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단어를 삶으로 증명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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