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기 박윤홍
2시간 전

신앙과 삶의 일치에 관한 조금 불편한 이야기(1)

나는 기독교인이다.

아니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규정하는 기독교인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는 부류의 인간이다.

나 스스로도 그런 정의에 굳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게 서로를 위해 편하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하는 기독교인이라는 범주에 포함되기를 거부한다.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조금씩 그 이야기들을 풀어가볼까 한다.

나는 모태신앙도 아니고 우리 집안이 기독교집안도 아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20대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다가 신이 없다는 생각에 그만다니려고 했다.

그러다 마지막 교회에서 뭔가 신의 존재에 대한 강한 확신을 느꼈고 그 이후로 교회에 심취했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는 신이 존재하는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필요했다.

아니면 경험적 증거라도 필요했다.

이게 없다면 내가 교회를 다녀야 할 이유가 없고 신이 존재한다고 말할 내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기본값이다.

그래서 의심하고 또 의심할수 밖에 없는거다.

마치 데카르트처럼...

처음에는 교회에 새벽기도와 성경공부, 나중에는 신학책을 파면서 신 존재를 입증하려고 했다.

그리고 역사를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논박하면서 교회문화와 신학이 발전해 온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때부터는 신학생들이 공부하는 것 이상으로 신학책에 심취했다.

(나중에는 신학교에 가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내 주변에 신학생들이 나보다도 책을 안읽고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 그냥 혼자 공부해도 되겠다 싶었다.)

20~30대초반까지 고민하며 읽던 책들이다. 신학과 철학을 오가며 고민했지만 공부할수록 현실과의 괴리만 커져 괴로움만 더했다.

그런데 교회생활과 신학에 깊이 들어갈수록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과 교회에서 행하라고 가르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성경에서 보고 깨달은 내용들은 '자기를 희생하고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인데

교회는 '자기 환원적인' 종교 이기주의 집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중세의 카톨릭이 종교를 중심으로 국가를 점령하고 이에 복속시키려는 시도와 같이 한국 교회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충성심을 바탕으로 교회의 살을 찌우는 구조로 흘러갔다.

그래서 성도가 많아지면 건축을 하고 담임목회자의 차가 바뀌고 목회자 자식이 유학을 가고 이런 양상을 띄었다.

중세 카톨릭의 반향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개신교가 나왔지만 개신교는 또 다시 중세의 상아탑 쌓기 놀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교회에 집중하던 나는 교회 안에서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여긴 지금 예수님이 오시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화를 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관심사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로 흘러갔다.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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