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남
22시간 전•

최악의 시나리오

커리큘럼 업데이트가 하나 밀린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그 위에 촬영이 밀리고, 칼럼이 밀리고, 

공부도 손을 못 댄 채 쌓인다.

몇 주가 지나도록 이도저도 끝내지 못한 일들이 책상 위에 그대로 쌓여 있다. 

유능감은 조금씩 깎이고, 몸과 마음의 부하율은 계속 올라간다.

그 와중에 운동도, 식단도, 하루 끝의 짧은 독서도 지켜지지 않는다.

사소해서 더 아픈 약속들이다. 나와 나 사이의 약속이 하나씩 깨질 때마다, 

내 가치를 세워주던 기둥도 하나씩 흔들린다. 

그 가치는 원래 나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남의 시선과 평가에 자꾸 예민해진다.

실행력은 떨어지고, 그 밑바닥에서는 나도 모르게 "수강생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스며든다. 그 마음은 그대로 거울처럼 현실에 비친다. 

수강생은 정말로 오지 않는다. 매출이 나오지 않는다. 유튜브는 간헐적으로만 올라가고 구독자도 적어서, 가족이나 친척, 가까운 어른들에게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가 없다. 

명절에 뭐 하냐는 질문에 얼버무리게 된다. 가족은 나를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못한다. "저점매수하라"고 자신 있게 말해야 할 순간에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입을 열 수 없다.

자기신뢰가 무너지니 회피가 시작된다. 유튜브를 보며 눕는 시간이 길어진다.

정작 자율신경 이완을 위해 매일 해야 할 명상과 스트레칭, 운동은 게을러진다.

남을 이완시키는 일을 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교감신경이 항진된 채로 산다. 

피부는 나빠지고 에너지 레벨은 낮아져서, 원래 잘하던 몰아치기조차 못 하게 된다.

에너지가 없으니 뾰족하게 밀어붙일 수가 없다.

이 상태로는 연애를 시작하기도 어렵고, 성과는 계속 늦게 나온다. 

어쩌다 누군가를 만나도,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채로는 그 관계를 이어가기가 힘들다.

자기효능감이 낮은 채로 관계를 지속하는 건 일도 연애도 같이 갉아먹는다. 

결국 연애의 횟수 자체가 줄어들고, 마음속에 그려둔 이상형과의 교제도,

결혼도 점점 멀어진다. 매출이 없으니 자유형 사업가로서 누리려던 것들

원할 때 여행 가고, 데이트하고, 좋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다 미뤄진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다. 성과는 여전히 더디고, 자기효능감은 바닥이고,

가족은 나를 자랑스러워할 거리가 없고, 곁에는 아무도 없고, 정작 내가 가르치는 자율신경 이완은 내 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커리큘럼 하나가 밀렸던 어느 날, 그 첫 도미노에서 시작됐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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