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남
2시간 전

연기를 멈추고 온전한 '나'가 되는 법

우리는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리섭의 연애 강의에는 아니무스라는 개념이 나온다.

리섭은 여성의 아니무스를 자극해서 꼬셨으면 어떻게든

처음 만났을때의 그 아니무스를 평생 유지하라고 했다.

아니무스를 유지하지 못하면 어떤 표면적인 노력을 해도

헤어지게 된다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억지로 꾸며낸 '척'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단계를 넘어,

결국 나 자신이 그 아니무스 자체가 되어버려야 한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자지절제론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늘 가장 사랑하는 배우자가 바로 옆에 있다고 가정해보라.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그녀가 듣고 보며,

내가 행한 모든 것들이 24시간 안에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달된다고 상상하라.

이런 상상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강인한 의지와 자기 절제를 발휘하게 되며,

가장 충실하고 이상적인 배우자의 모습을 지켜내게 된다.

괜히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 올림픽 선수들이 경기 후
관중석의 연인에게 달려가 포옹을 하고

살인적인 훈련동안 연인,가족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게 아니다.

결국 아니무스를 평생 유지한다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이 아니라,

가장 단단하고 온전한 '나다움'을 확립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이 고결한 나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흔히 '환경'을 탓하곤 한다.

내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변명한다.

나는 스프린트를 제외한날에 원칙이고 뭐고 잘 안 지킨다.

침대라는 중력장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하루종일 누워 유튜브를 본다.

밖에 나가지 못하고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지 않고 있는 환경탓을 한다.

그래서 환경만 갖춰지면 날아다닐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환경이 부족해서일까?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지금 나를 둘러싼 그 환경마저도 결국 내가 만든 것이다.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환경은 단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뿐이다."

환경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내 내면의 상태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성인이 된 이후부터 자신의 태도를 고를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이 속할 환경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환경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그 안에서만

수동적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해 보이는 그 환경의 뿌리마저 뽑아버릴 수 있는

주도성이 우리에게 있다.

당장 내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계산하기보다,

필요할 때마다 묵묵히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어느새 그 치열한 실행의 향기가 내 몸에 깊게 배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의 본질도 결국 여기에 있다.

우주는 거창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자주 생각하는 것들,

그리고 일상에서 자주 어울리는 것들을 내 삶으로 끌어당길 뿐이다.

자기 이상이 명확하고,

자기 절제력을 통해 현실의 나를 자아이미지에 끊임없이 맞춰나갈 때,

우리는 찾아오는 거대한 기회들을 두려움 없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의 '자아이미지 3요소'가 완벽하게 일치할 때 찾아온다.

  1. 내가 생각하는 나

  2. 타인이 생각하는 나

  3. 타인이 실제로 대하는 나

이 세 가지가 하나의 선상에 놓일 때,

즉 내가 나를 진심으로 소중하게 대하고,

내 옆에 있는 타인 역시 나를 그만큼 소중하게 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행복을 경험한다.

배우자가 늘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자아이미지를 일치시키는 가장 강력한 훈련이다.

이러한 자아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태도가 바로 '렛뎀(Let them, 내버려 두라)'이다.

내버려 두고 내 할일 하기이다.

타인이 나를 통제하려는 시도나,

이른바 '머글'들의 얕은 생각과 평가는

그들이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뼈아픈 착각을 했다.

나 역시 한동안 이 '렛뎀'의 앞부분만 차용하며 살아왔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겉으로는 내버려 두었을지언정,

정작 그로 인해 파생된 '내가 나를 생각하는 복잡한 감정'은

내버려 두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았던 것이다.

반쪽짜리 '렛뎀'은 방관에 불과하다.

진정한 '렛뎀'은 단순히 타인의 생각을 내버려 두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뭐라 하든 신경을 끄고,

"나는 나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는

흔들림 없는 실행까지 포함되어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 완벽해 보이려는 연기를 멈출 시간이다.

남들의 시선은 그들의 몫으로 온전히 내버려 두고(Let them),

나는 내가 설정한 이상적인 자아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면 된다.

24시간 나를 지켜보는 가장 소중한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일상을 쌓아가는 것.

자기절제를 통해 내 환경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내가 꿈꾸던 아니무스 그 자체가 되는 유일한 길이다.

렛댐이 되지 않는 이유는 자기절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렛댐 후 자기절제력을 통한, 내 할일 하기 까지 완성되어야

비로소 자아이미지 보존, 잉여포텐셜 해소, 어려운길의 엔트로피 낮추기

모든것이 되는것이다.

나는 이 책을 강추한다.

특히 타력(감시,벌금,선언)에 의해서만 일을 해왔던 사람들

혼자하면 자꾸 무너지는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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