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탓하기 게임
탁월한 사람이란 결국 남 탓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광고 효율이 떨어지면 플랫폼을 탓했고,
콘텐츠 조회 수가 나오지 않으면 알고리즘을 탓했다.
직원이 기대만큼 움직이지 않으면 직원의 역량을 탓했고,
제품 생산이 늦어지면 공장과 거래처를 탓했다.
경쟁업체가 나타나면 시장을 탓했고,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상대방을 탓했다.
물론 실제로 상대방의 잘못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잘못을 증명한다고 해서 내 사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게임을 잘하지는 않지만, 게임과 사업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게임에서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팀원을 탓한다.
“우리 팀원이 못해서 졌다.”
“상대 팀이 너무 잘해서 졌다.”
“운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실력이 좋은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팀원이 실수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찾고, 게임이 불리하더라도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매출이 떨어졌을 때 경기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모든 사업자의 매출이 동시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광고 효율이 떨어졌을 때 플랫폼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도 쉽다.
하지만 같은 플랫폼에서도 누군가는 계속 매출을 만든다.
직원이 일을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쉽다.
하지만 내가 업무의 기준을 명확하게 전달했는지, 제대로 된 사람을 채용했는지,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는지는 다른 문제다.
결국 사업에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나였다.
그렇다고 내 탓을 한다는 것이 나를 비난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하지?”
“나는 대표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내 탓하기가 아니라 자책이다.
내가 말하는 내 탓하기는 문제의 통제권을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사라진다.
하지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광고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플랫폼이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스레드 조회 수가 나오지 않는 것은 계정이 저품질에 걸렸기 때문이다.
직원이 기대만큼 일하지 않는 것은 직원에게 책임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품 출고가 늦어진 것은 공장과 거래처가 일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쟁업체와 법적인 문제가 생긴 것은 상대방이 비상식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탓을 하기 시작하면서 질문이 달라졌다.
하나의 광고 소재와 하나의 채널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은 아닐까?
기존에 반응이 좋았던 방식만 반복하면서 새로운 패턴을 실험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직원에게 명확한 목표, 기준, 마감일, 보고 방식을 알려주지 않은 것은 아닐까?
생산 지연을 예상하고 충분한 재고와 대체 공장을 준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상표, 계약서, 디자인권과 같은 방어 장치를 더 일찍 준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상대방의 잘못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상대방의 잘못을 찾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탓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업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첫 번째로, 문제 해결 능력이 높아졌다.
과거에는 문제가 생기면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지?”
하지만 지금은 문제를 조금 더 구조적으로 보려고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모든 것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고, 해결 방법을 만들고,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화하는 능력이다.
두 번째로, 직원과 협업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좋은 사람을 채용하면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사람도 목표가 불명확하면 헤맨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도 업무의 기준이 없다면 대표가 원하는 결과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직원이 일을 못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업무의 목적을 설명했는가?
완료의 기준을 정했는가?
마감일을 정했는가?
중간 보고가 필요한 시점을 알려줬는가?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숫자가 있는가?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중 상당수는 사실 구조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드는 것은 대표인 내 책임이었다.
세 번째로, 소비자의 입장에서 사업을 보게 됐다.
모든 사업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어도 고객이 그것을 알지 못하면 판매되지 않는다.
제품의 효과가 있어도 고객이 신뢰하지 못하면 구매하지 않는다.
고객이 제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객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내 설명이 부족한 것이다.
상품이 판매되지 않는다면 제품만 볼 것이 아니라 시장, 가격, 상세페이지, 후기, 광고 소재, 구매 과정 전체를 살펴봐야 한다.
고객에게 선택받지 못한 책임을 고객에게 돌리는 순간 사업은 멈춘다.
고객의 입장에서 불편한 지점을 찾는 순간 제품과 서비스는 개선된다.
네 번째로, 내가 하기 싫어했던 일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당장 매출이 발생하는 일은 비교적 잘했다.
광고를 돌리고, 상품을 만들고, 콘텐츠를 올리고, 판매하는 일에는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조직의 원칙을 만들고, 업무를 정리하고, 관리자를 키우고, 장기적인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계속 미뤘다.
매출이 떨어지면 시장을 탓했지만, 사실 내가 단기 매출에만 집중하면서 장기적인 구조를 만들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었다.
직원이 나를 계속 찾아야만 일이 진행된다면 직원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내가 하루라도 일을 멈추면 매출이 멈춘다면 사업이 아니라 내가 직접 일해서 돈을 버는 구조에 가깝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불편했다.
하지만 인정하고 나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졌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더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나 없이도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들고, 사람을 키우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 탓을 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문제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기가 나빠질 수도 있고, 플랫폼의 정책이 바뀔 수도 있다.
직원이 갑자기 퇴사할 수도 있고, 공장의 생산이 늦어질 수도 있다.
경쟁업체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준비해도 막을 수 없는 일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한 채널이 막혔을 때 다른 채널을 준비할 수 있다.
직원이 퇴사해도 업무가 이어질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 수 있다.
생산이 늦어질 가능성을 고려해 안전 재고를 확보할 수 있다.
분쟁이 발생하기 전에 상표와 계약서를 준비할 수 있다.
문제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도 문제에 무너지지 않는 구조는 만들 수 있다.
사업을 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남 탓을 하면 순간적으로는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도 함께 상대방에게 넘겨주게 된다.
반대로 내 탓을 하면 처음에는 불편하다.
내 선택과 부족함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생긴다.
내 탓하기는 나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다.
내 인생과 사업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려고 한다.
“누구의 잘못인가?”
이 질문보다,
“이 상황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업가에게 내 탓은 패배를 인정하는 말이 아니다.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되찾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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