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이 열리는 카피라이팅 기술 - 1 (충돌의 원리)
사람을 멈춰 세우는 문장은 단어끼리 서로 싸워야 한다.
‘처음인데 익숙하다.’
가만히 보면 이상한 말이다.
처음이라는 건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익숙하다는 건 이미 여러 번 경험해서 낯설지 않다는 뜻이다.
둘은 원래 동시에 존재하기 어렵다.
그런데 붙였다.
처음 + 익숙하다.
‘처음인데 어떻게 익숙하지?’
머릿속에 작은 물음표가 생긴다.
이런 방식을 카피라이팅의 ‘충돌의 원리’라고 부른다.
학창 시절 친구끼리 싸움이 나면
주변에 있던 애들이 하던 걸 멈추고 쳐다보거나 말리러 오는 것과 같다.
충돌이 생기는 순간 시선이 한곳에 모이는 것이다.
원래 같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붙으면 사람의 머릿속에서도 작은 마찰이 생긴다.
‘월급쟁이 부자’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월급쟁이는 매달 정해진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반대로 부자는 월급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둘을 붙였다.
월급쟁이 + 부자.
머릿속에서 바로 질문이 생긴다.
‘월급쟁이가 어떻게 부자가 되지?’
이 질문 하나가 사람을 멈춰 세운다.
좋은 카피를 만들 때 무조건 자극적인 단어부터 찾을 필요가 없는 이유다.
이미 알고 있는 단어 두 개를 낯선 방식으로 붙이는 게 훨씬 강할 때가 있다.
‘아름다운 구속’도 그렇다.
구속은 자유를 빼앗는 부정적인 단어인데 앞에 ‘아름다운’이라는 말을 붙였다.
모순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표현을 연애에 대입하는 순간 이해가 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묶이고, 혼자일 때보다 자유롭지 않은데도 그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물음표였던 표현이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 느낌표로 바뀐다.
나는 이 지점이 충돌의 원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단어를 이상하게 조합한다고 좋은 카피가 되는 건 아니다.
‘차가운 열정’
‘조용한 혁명’
‘불편한 편안함’
얼핏 그럴듯하다.
그런데 뒤에 실제 제품이나 경험이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냥 있어 보이는 말로 끝난다.
충돌에는 반드시 해소(쿠션 문장)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가구 브랜드가 자신들의 제품을 ‘실용적인 럭셔리’라고 정의했다고 해보자.
럭셔리라고 하면 비싸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 같고,
실용적이라고 하면 편하게 사용하는 생활용품에 가깝게 느껴진다.
둘은 원래 조금 떨어져 있는 개념이다.
그런데 실제 제품이 고급 소재와 디자인을 사용하면서도 가격은 합리적이고,
관리하기 쉽고, 매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 그래서 실용적인 럭셔리구나.’
카피가 제품을 설명한 게 아니라 제품을 이해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준 것이다.
사업에서 이런 충돌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 교육 서비스라면
‘공부하지 않는 영어 공부’ 라는 표현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상하다.
공부를 안 하는데 어떻게 공부를 한다는 걸까?
그런데 이 서비스가 책상에 앉아서 단어를 외우는 대신 출퇴근하면서
영어 드라마를 보고,
원어민과 프리토킹을 반복하는 방식이라면 말이 된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뀐다.
헬스에서도 가능하다.
‘먹으면서 빼는 다이어트’
다이어트하면 보통 적게 먹고 참는 모습을 떠올리는데 정반대의 말을 붙였다.
단순히 자극적인 제목으로 끝내지 않고, 굶는 대신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먹으면서 총 섭취량과 식단 구성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뒤에서 그 충돌을 해소할 수 있다.
마케팅 교육이라면 어떨까.
‘팔지 않고 파는 법’
판매하려면 팔아야 하는데 팔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제품을 계속 홍보하는 대신 고객이 먼저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콘텐츠를 쌓아
구매 문의가 들어오게 만드는 방식이라면 이 역시 앞뒤가 맞는다.
퍼스널브랜딩에서도 쓸 수 있다.
‘유명하지 않은 유명인’
팔로워는 3천 명밖에 없는데 특정 업계에서는 이름만 말하면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팔로워가 10만 명인데 정작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아무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칼럼이라면 ‘유명하지 않은 유명인’이라는 제목부터 사람을 멈추게 만들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이미지 컨설팅에 적용해봐도 재밌다.
‘꾸미지 않은 듯 잘생겨지는 법’
꾸며야 잘생겨질 것 같은데 꾸미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남자에게 필요한 게 화려한 옷과 진한 메이크업이 아니라
헤어, 눈썹, 피부, 핏처럼 티가 크게 나지 않는 요소를 정리하는 것이라면 이 문장도 성립한다.
‘평범해서 매력적인 남자’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우리는 매력적인 남자라고 하면 키가 크거나, 잘생겼거나, 돈이 많거나, 말을 잘하는 사람부터 떠올린다.
그런데 압도적인 장점이 없는 평범한 남자가 오히려 깔끔한 외모와 안정적인 태도, 좋은 사진, 적절한 대화 방식 때문에 이성에게 꾸준히 선택받는 사례를 이야기한다면 ‘평범함’과 ‘매력’의 충돌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카피를 만드는 방법도 조금 달라진다.
처음부터 멋있는 단어를 찾지 않는다.
먼저 사람들이 이 시장에 대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을 적는다.
사업은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
비싼 제품이 품질도 좋다.
전문가는 어려운 말을 쓴다.
광고는 많이 보여줘야 한다.
팔로워가 많아야 돈을 번다.
잘생긴 남자가 연애를 잘한다.
마케팅은 제품을 알려야 한다.그다음 그 문장을 뒤집어본다.
그다음 그 문장을 뒤집어본다.
‘게으른 사업가가 더 많이 버는 이유’
‘싸구려가 더 비싼 이유’
‘초등학생처럼 말하는 전문가’
‘보여주지 않는 광고'
‘못생겨도 인기 많은 남자’
‘제품을 드러내지 않는 마케팅’
'소리 없는 아우성' 이라는 문장을
대부분은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 문장 같이
여기서 끝내면 클릭을 얻기 위한 말장난이다.
앞뒤에 정말 그 말을 증명할 수 있는 논리가 배치되어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게으른 사업가가 더 많이 버는 이유’라는 제목을 달아놓고
그냥 열심히 일하라는 이야기를 하면 독자는 낚였다고 느낀다.
반대로 대표가 직접 모든 업무를 처리하던 사업가가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사람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매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의사결정에만 시간을 쓰게 되면서
노동시간은 줄었는데 매출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제목이 해소된다.
‘아, 여기서 말한 게으름은 일을 안 한다는 뜻이 아니었구나.’
이 순간 카피가 완성된다.
그래서 충돌의 원리를 사용할 때 나는 서로 반대되는 단어를 찾는 것보다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부터 찾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월급쟁이는 부자가 되기 어렵다.’
‘럭셔리는 비싸고 비실용적이다.’
‘밤은 어둡다.’
‘구속은 싫은 것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개념을 집어넣는다.
월급쟁이인데 부자다.
럭셔리인데 실용적이다.
밤인데 눈부시다.
구속인데 아름답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미 A라는 상식이 있기 때문에 반대편의 B를 붙이는 순간 마찰이 생긴다.
특히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백 개의 콘텐츠와 광고를 넘겨보는 환경에서는 이 차이가 크다.
‘고품질의 합리적인 가구’
틀린 말은 아니다.
너무 익숙해서 문제다.
읽는 순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로 처리된다.
‘실용적인 럭셔리’
같은 제품을 이야기하고 있어도 머릿속에서 잠깐 충돌이 일어난다.
그 짧은 순간이 광고에서는 매우 소중하고 비싸다.
사람들은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냥 지나치니까.
‘이해될 것 같은데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 것’에는 시선을 준다.
그래서 좋은 충돌은 황당해서는 안 된다.
너무 가까우면 충돌이 없고, 너무 멀면 이해할 수 없다.
서로 반대되는 두 개념을 붙였는데 제품이나 메시지를 알고 나면
“아, 그래서 이렇게 표현했구나”가 나와야 한다.
나는 좋은 카피를 볼 때 이 과정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첫 문장에서 물음표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줬는가.
사람을 멈춰 세우는 건 충돌이지만, 사람의 머릿속에 남는 건 그 충돌이 해소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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