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 정답 없는 세상에서 불안한 우리들 (260526)
요즘은 진짜
뭐 하나 까딱하면 나락이다.
정치 성향이 달라도 나락,
연애관이 달라도 나락,
사업방식이 달라도 나락,
말 한마디 잘못하면,
나락.
정치도 비슷한 것 같다.
결국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서로의 장점과 다름을 활용하며 같이 가기보다
점점 서로를 적처럼 대한다.
누군가는 계속 갈라치기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불안할수록
더 쉽게 서로를 미워한다.
조금만 튀어도 이상한 사람이 되고,
조금만 다르면 공격받는다.
처음엔 그런 세상이 답답했다.
왜 이렇게 서로를 쉽게 미워하지?
왜 이렇게 서로를 틀렸다고 말하지?
어쩌면 우리는 모두
“틀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던 건 아닐까.
사실 나도 그랬다.
나는 내가 이상적인 걸 추구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자기계발도 엄청 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고,
계속 배우고 성장하려 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틀리고 싶지 않았던 거였다.
나락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고,
이상한 사람 되고 싶지 않았고,
버려지고 싶지 않았고,
틀리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는 평생을
전형적인 K-장녀 느낌으로 살아왔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도 심했고,
남들이 보는 이미지를 굉장히 열심히 다듬으며 살았다.
잘 웃고,
잘 받아주고,
친구들이랑 놀러가면 내가 mc보는느낌으로
적절하게 중재하면서 흐름을 만든달까,
분위기도 잘 띄우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보살이라는 별명도 있었고,
일 또한 고등학생때부터 미용사자격증도 따고
지금까지 미용업 한 길만 20년 넘게 쭉 해오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다.
나름대로 아름다운 성을 열심히 쌓아올렸다.
근데 이상하게
성이 다 완성되었고, 깃발만 탁! 꽂으면 되는 순간이었는데,
도망쳐버렸다.
너무 공허했다.
나는 그 성의 주인이 아닌 느낌이었다.
심지어
그 성 안으로 들이고 싶은 사람조차 없는 느낌이었다.
나는 성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살아있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
방랑자처럼 살기 시작했다.
정답 같은 삶에서 도망치듯,
내 감각을 따라 떠돌며
나만의 세계관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고,
나다움을 꽤나 많이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나다움을 찾아주고 싶었고,
그게 나의 신념, 사명이었다.
근데 웃긴 건,
그렇게 정답을 싫어하게 되었으면서도
나는 동시에
정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불편해했던 것 같다.
다름을 존중해주지 않는 느낌 때문이었다.
“왜 꼭 하나만 맞다고 하지?”
“왜 저렇게 확신하지?”
“왜 다름을 불편해하지?”
최근 마스터마인드 안에서
재밌는 통찰 하나가 생겼다.
한국인들은
“정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
좋은 대학,
좋은 회사,
좋은 인간관계,
좋은 말투,
좋은 가치관.
우리는 어릴 때부터
틀리지 않는 방향을 찾는 훈련을 굉장히 오래 해왔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원래 현실감각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원래도 어려웠는데
그걸 어떻게든 틀리지 않게 하려고 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공부했고,
더 자기계발했고,
더 맞는 답을 찾으려 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어떤 사람은
현실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능성과 감각을 보는 힘이 강하다.
그리고 그건
누가 더 우월한 게 아니라
그냥 스탯이 다른 거였다.
게임으로 치면
군주, 기사, 마법사, 요정처럼.
누군가는 HP 체력이 높고,
누군가는 MP 마력이 높다.
중요한 건
좋아보이는 모습이나 그 이미지를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자기 스탯을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도움받으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정답을 추구하고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시각..
너무 멋있다고 생각하고
너무 부럽다.
나에겐 없는 능력치다.
별로 잘하고 싶지도않다.
내가 할수 없는 영역이라는걸 받아들인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내가 잘하는 영역을 더 잘, 즐겁게하고 싶었다.
다만 나는
나의 다름 또한 존중받고 싶었다.
“너가 틀린 게 아니야.
그 부분은 내가 잘하니까 내가 도와줄게.”
이게 내가 사람들에게 오지랖하는 태도다.
도와줄때는 확실하게 도와줘야한다.
그런 방향의 관계를 원했던 것 같다.
근데 현실에서는 자꾸 충돌이 생겼다.
특히 깊은 관계 안에서.
신기하게도
얕은 관계나 비즈니스에서는
내 방식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동했다.
사람들은 나를
통찰력 있다고 해줬고
질문이 깊이있다고 해줬고
새로운 방향을 보게 해준다고 했다.
근데 깊은 관계로 들어가면
자꾸 부딪혔다.
“왜 그렇게 자기 입장만 생각해?”
“남의 말도 좀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말들이
나를 미치게 만들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요즘 또한 많이 힘들었다 (ㅋ.ㅠ)
왜냐면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들으며
나는 처음부터 없었고,
타인이 요구하는 방식으로만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팩폭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누군가 내 문제를 짚어주는 것도 좋아했고,
새로운 시각을 듣는 것도 좋아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솔직한 피드백”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 피드백이 반영되길 기대한다는 걸 전혀 몰랐고,
뭔가.. 잘못 됐는데...하고 느꼈던것 같다.
나는 듣고 있었다.
열심히 이해하려 질문도하고
내 방향성과 맞나? 그걸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고민도 하고 있었다.
모두의 피드백을 다 수용할 수는 없었다.
최종 선택까지 같아야 할 것 같은 순간,
숨이 막혔던것 같다.
과거의 나로 돌아갈까봐..
각자가 행복해질수 있는 삶이라고 믿었던 어떤 확신에 대해
아니, 너 단단히 착각했어.
잘못가고있어.
존나 틀렸어. (ㅋㅋ)
라고 하는것 같이 느껴졌던것 같다.
작고 하찮지만, 겨우 만들어낸 나의 소중한 세계관이,
내가 겨우 옮겨 심은 나무가,
아직 뿌리내리기도 전에
다시 뽑혀버릴까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통하는 정답이 없는 건
사실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불안하니까
자꾸 정답을 강요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나 역시 반대로 똑같았던 것 같다.
정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들도 결국
자기 정체성이 무너지고 싶지 않았던 거구나.
나도 그랬고,
그들도 그랬던 거다.
결국 우리는 모두
불안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다시,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이런 세상이라고 정리했다.
각자가 자기답게 살아나면서도,
서로의 다름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기대고,
때로는 서로 도와주면서도,
결국 같은 방향으로
“으쌰으쌰” 살아가는 상태.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좋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사실 다 비슷하니까.
정치도, 관계도, 사회도.
결국 같은 팀 안에서 살아가는 문제인데,
우리는 자꾸 서로를 다른 팀이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각자 조금씩 빌런이어야 한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자기 본질까지 죽이지 않을 만큼.
우리는 결국 한 팀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민족이다. (ㅋ.ㅋ)
나는
"우리가 서로를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같은 팀이었다" 는걸 깨닫고,
서로의 다름을 "가능성"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리고 그제야 자기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되는 장면들,
그런 순간들을 구루모먼트라고 부르고 싶다.
그런 모먼트들이 모여
흐름이 되고,
문화가 되고,
하나의 세계가 되길 바라며. love win all.
이 글을 충돌과 흔들림 속에서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어준
김서한 대표님과 마스터마인드 46기 조원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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