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나상마
2일 전
공지

혼자서는 전속력으로 달릴 수 없다.

어릴 때는 참 잘 달렸던 것 같다.

넘어질 생각보다 빨리 달리는 게 재미있었고,

어디에 부딪힐지 계산하기보다 일단 뛰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조금씩 조심스러워진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업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

한 번 실패해보고,

한 번 크게 데여보고,

내 선택 때문에 돈도 잃어보고 사람도 잃어보면

다음부터는 뛰기 전에 자꾸 바닥부터 확인하게 된다.

'이거 해도 될까?'

'잘못되면 어떡하지?'

'내가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경험이 많아질수록 현명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명해진 만큼 겁도 많아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 법은 잘 알게 되는데,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분은 잊어버린다.

내 동생도 최근에 한번 제대로 넘어진 적이 있다.

사업 확장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돈’이라는 본질에 대한 공부를 하고 난 뒤로

꽤 쏠쏠하게 수익이 나기 시작했고,

확신이 엄청나게 붙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좋은 기회가 있다며 빠르게 결정하고 진행해버렸다.

"진짜 괜찮아?"

"만약 생각대로 안 되면?"

그런데 그때 동생은 거의 '안 될 이유가 없다'는 상태였고

자신의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나 역시 동생이 하는 분야를 잘 모르기도 했고,

본인이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데..

말리고 싶긴했지만, 내맡기기 실험 핑계로..

동생의 선택을 존중했다.

'뭐, 혹시 그 돈이 묶이면 또 다른 방법이 생기겠지.'

‘그러고 건물을 못 사게 되면 거기서 또 배우는 게 있겠지.'

'어떻게 흘러가나 한번 보자.'

시기가 시기였을까,

동생이 생각했던 타이밍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손해를 동생이 먼저 지불해야 했다.

다시 잘 풀리면 받을 돈이긴 했지만

잘 풀리는 시기는 누구도 알수 없었다.

그렇게 지불한 금액은 대략 6천..

그 돈은 심지어 곧 예정된 부동산 잔금을 치러야하는 몫돈이었다.

하필이면 또 잔금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분명 사고는 터졌다.

그런데 그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이미 벌어진 일을 붙잡고 후회하는 게 아니었다.

문제까지 생겼는데, 거기에 자책까지 얹을 필요는 없었다.

"하… 나 진짜 ㅂㅅ인가."

"왜 그런 선택을 했지."

여기에 빠지는 순간 아무것도 안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냥 같이 낄낄 웃었다.

"ㅋㅋㅋㅋㅋ 개어이없네."

"일단 그 돈 날렸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묶인 거고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생기면 꽁돈 생긴 셈 치고."

"자, 그럼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제로에서 다시 어떻게 만들지?"

그때부터 다시 방법을 찾았다.

이리 돌려보고, 저리 찾아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 움직였다.

그리고 결국 또 말도 안되게 방법들을 찾아내고,

잔금을 치루는건 물론, 성황리에 사업을 잘 하고있다.

나는 이 경험이 꽤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그리고 우리가족에게 또한 6천은 엄청나게 큰 돈이었지만

인생을 배운셈치면 싸게 먹힌거라고 합리화도 해본다.

나중에 더 규모가 커졌을 때 그랬다면 그 돈의 액수는 6억이었을지도 모르니까 ㅋㅋ

그리고 돈이 묶였지만 동생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걸 얻었다.

'문제가 생겨도 나는 또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험.

막히면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아내면 된다는 걸 한 번 경험한 것이다.

자신의 생각 혹은 경험이 성공했다는 결론으로 다다르고,

그런 순간이 여러번 쌓여갈 때 사람은

스스로를 믿게 되고 문제상황에서도 쉽게 돌아올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얻는다.

그리고 얼마 뒤,

동생이 훨씬 더 큰 판을 벌이고 싶다고 했다.

원래 브랜딩과 숙소 운영을 했었는데,

이번 매매에 더해 추가 부동산 매매와 투자까지 본격적으로 확장을 하고 싶단다.

최상의 시나리오를 들어보니 진짜 대박이었다.

나도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번 더 물었다.

"근데 안 쫄려?"

"코로나 같은 일이 또 터지거나, 전쟁이나 경제 상황 때문에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저번처럼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어쩔 수 없는 변수 때문에 진짜 다 망하면 어떡할 건데?"

동생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면 파산 신청하고 쓰리잡 뛰지 뭐. 몸 쓰면서 다시 정비하면 돼. 이 정도 실패는 내 삶으로 막을 수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서도 하고 싶어?"

"응."

"그럼 됐어. 그 정도 각오까지 됐으면, 이제 앞만 보고 달려도 될듯. ㅋㅋㅋㅋ"

그 이후 동생의 움직임은 완전히 달라졌다.

원래 에어비앤비를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이

반년 만에 매도 1개, 매수 3개, 장기임대 1개를 진행했다.

투자자를 만나고, 새로운 사업을 만들고, 점점 더 큰 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달라졌다.

사업가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갔다.

단순히 스스로를 '사업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정도가 아니었다.
판단하는 방식도,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움직이는 속도도 달라졌다.

정말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것만 같았다.

문제가 생기면 멈추기보다 다음 수를 찾았고,

혼자 끙끙거리기보다 사람과 기회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너무 커서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판도

이제는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동시에 바로 실행했다.

요즘에는 수백억 단위의 엑싯을 목표로 하는 사업까지 추가로 만들고 있다.

실제로 그 결과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과보다 이 변화가 더 재미있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크기의 미래를,

이제는 실현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로 놓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

어쩌면 사람이 커진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갑자기 모든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니라,

'나는 문제가 생겨도 결국 다음 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인생의 크기가 커지는 것.

불과 몇달 전에 6천 이었다면, 지금은 6억 정도 됐을까?

확신이 생기면 사람은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아니, 자동으로 낼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건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실패해도 그게 내 인생의 끝이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잘되면 당연히 좋다.

그런데 잘못되면?

오히려 좋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문제가 튀어나온 것이고,

그 안에는 또 다음 판을 키울 힌트가 숨어 있다.

왜 안 됐는지 헤집어보고,

무엇을 놓쳤는지 찾아보고,

거기서 발견한 것을 이용해서 다시 판을 짜면 된다.

그러면 이전으로 겨우 복구되는 게 아니라,

전에는 만들 수 없었던 더 큰 판을 만들기도 한다.

잘되면 앞으로 나아가고,

잘못되면 판 자체를 키운다.

어느 쪽으로 가도 남는 게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동생에게 해준 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충분히 고민했다면,

"됐어. 이제 그만 쫄고, 가."

라고 말해주는 것.

그리고 정말 사고가 터졌을 때,

"거봐. 내가 뭐랬어."

가 아니라,

"ㅋㅋㅋㅋㅋ 자,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까?"

라고 같이 다음 수를 보는 것.

어쩌면 뒤에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런 의미인지도 모른다.

내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일이 생겨도 그것을 끝으로 해석하지 않을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러면 자꾸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앞을 보고 달리면 된다.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전속력으로.

내가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얼마나 얼마나 기쁜 삶인가.


사람을 가장 빠르게 달리게 하는 것은
위험이 없다는 확신이 아니라,
어떤 결과가 와도 다음 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다.

— 난나상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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