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의 함정

- <왜 이제는 아무도 '독창적인' 영상을 만들지 않을까>, by Aprilynne Alter
'벤치마킹'은 기막힐 정도로 효율적이다. 누군가가 효과를 본 제목과 썸네일, 도입부와 영상 구성을 파악한 후, '효과적인 포인트'를 살려 내 영상에 녹이면, 어느 정도 타율을 보장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튜브를 하는 모두가 이 전략을 쓰기 시작하면서, 유튜브 안에는 '평범성'이라는 무서운 독이 자라기 시작했다. 영상을 아직 보지 않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아는 것만 같은 기시감. 게다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겉모습만 비슷하게 흉내내거나, AI의 어투를 대본 그대로 읽고 있는 영상을 보자면, 이 사람은 AI에게 모든 생각을 맡겨버렸구나, 하는 자조가 들 때도 있다. 재미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고, 학원 뺑뺑이 도는 고등학생이 대충 만든 수행평가 같은 영상들이, 너무 많아져버렸다. 모두가 '벤치마킹 신봉론'에 빠져버린 탓이다.
출판기획자로 일하는 친구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도 혀를 찼다. "출판업계도 똑같아. 외서 중 베스트셀러 하나 나오면, 그 저자 책 번역해서 또 다른 베스트셀러로 만들려고 발악하지. 결국 몇 달간 그 저자의 생각이 판을 휩쓸다가, 질리면 또 다른 저자를 찾아 헤메는 식이고. 디자인도 비슷하고, 제목 카피도 점점 비슷해져. 팔아야 되니까." 팔아야 되니까. 그 말이 참 씁쓸했다. 뭐, '출판사'라는 회사라면, 의사결정 구조도 있을 것이고, '성공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안정적인 선택을 지향할 수밖에 없음을 백 번 이해한다. 그런데, 유튜브는? 사업적으로 유튜브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벤치마킹'으로 수집한 영상들을 분석해서, '비슷한' 영상을 찍어내는 것이 '사업'에 유리한 것일까? '벤치마킹'을 잘 하면, 정말 '잘 팔릴까'?
나는 '反벤치마킹'을 위한 벤치마킹이 아니라면, 차라리 벤치마킹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시장에서 먹히는 것'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까지만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나는 클라이언트들의 유튜브 영상을 대신 제작하는, '제작 대행'을 하고 있다 보니, 그 분들의 '매출'과 내가 받는 '돈'의 상관관계가 매우 큰 편이다. 그 분들을 성공시키고, 그 분들이 돈을 벌어야 내가 하는 작업의 의미가 생긴다. 1년 전만 해도, 유튜브 판의 '먹히는 공식'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봤던 시절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고 앞으로 더더욱, '독창성'과 '본질'이라는 한 끗이 들어가지 않으면, 이제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절대 구매하지 않는다. 말만 그럴 듯하고 제품은 개판인 경험에 내성이 생겨버린 것이다. 점점 '독창성'과 '본질'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중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독창적인, 자기만의 본질을 담은 콘텐츠를 만드는데 주저하는 것일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어줄까, 하는 불안감. 사실 맞다. '유튜브스럽게' 포장지를 만들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들을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실제로 너무 귀한 정보가 들어 있더라도, 그 채널이 폭발적인 노출을 받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유튜브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익힐 때까지 벤치마킹이 필요한 것이지만, '벤치마킹만 잘 하면 유튜브 씬을 씹어먹을 수 있다'는 식의 일반화가 이 판을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튜브 뿐만 아니라 출판업계도, 음반시장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업하는 클라이언트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핵심은 '고객 분석'이다. 독창성과 고객 분석이 아무 상관 없어 보이지만, 결국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전문가'라는 포지션을 잡는 게, 독창성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다. 비슷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든 해외채널과 국내채널들을 분석하는 것보다, '왜 고객은, 클라이언트에게 돈을 주었을까?'에 대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파악하는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의 '독창성'이 발현될 수 있다. 내 경우 고객 데이터이 찾아온 이유를 꽤나 디테일하게 요구하는 편이고, 그 요구에 대한 클라이언트의 생각도 자세히 물어보는 편이며(내 생각보다 이들의 생각이 훨씬 더 정확하기 때문에), 촬영하기 전이나 후에 어떻게든 고객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들으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을 거치다보면, 유튜브 안에서 '수많은 시청자'를 만족시키려는 습관보다, '클라이언트의 고객'에 집중하는 뇌의 회로가 하나 생긴다. 그러면 썸네일과 제목을 만들 때, 굳이 '유행하는 스타일'대로 제작하려 하지 않는 자신감도 생기게 되고(클라이언트 눈치보다, 고객의 눈치를 봐야 한다), 실제로 '매출'에 효과가 좋은 영상들을 뽑을 수 있다.
유튜브는 점점 한 채널에게 '뾰족한 독창성', '그 사람만의 개성'을 요구할 것이다. 점점 더 솔직하고, 직설적이면서도, 따뜻한 메시지를 담는 채널들이 살아남을 것이다. '벤치마킹'은 유일한 전략이 아니다. 그저 내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시장에 어떻게 붙일 것인가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여러가지 기준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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