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은 증명해야 풀린다?
또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저는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잘못한 (공주)쪽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저를 탓할 때입니다. 억울함이 올라오고, 제가 맞다는 걸 보여 줄 말들이 줄을 섭니다.그 장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번 반응했고, 매번 증명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믿습니다.
억울함은 증명해야 풀린다고.
내가 맞다는 걸 상대가 인정하는 순간,
이 답답함도 끝날 거라고.
그런데 이상하게 증명은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왜?
끝나는 지점을 상대가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이 정리되려면
상대가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은 제가 통제 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수치심을 견디는 일이기도 합니다.
몰아붙일수록 잘못에 대한 인정은 ‘완전한 패배’가 되고, 상대는 더 단단히 방어합니다.그 방어는 다시 탓이 되어 돌아오고, 저는 더 억울해집니다.
증명할수록 억울함이 커지는, 이상한 회로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이 회로를 멈추지 못했을까요?
답은 의외로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습니다.
열 살의 법정
아홉 살인지 열 살인지, 외할머니와 외사촌 여동생과 함께 살던 때입니다. 5살 어린 여동생과 마찰이 생기면 외할머니는 늘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나이가 많으니 참아"야 한다고.
누가 먼저 그랬는지와 상관없이,
판결의 기준은 ‘나이’였습니다.
저는 늘 억울했고, 화가 났습니다.
그 감정은 어느새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시비를 거는 여동생이 미워졌고, 저는 제 감정의 원인을 여동생에게 돌렸습니다.
끝나지 않은 재판
돌이켜보니 딸 앞에서 증명하던 제 모습이 그제야 보였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대화가 아니라, 그때 받아들여지지 않은 변론이었습니다. 저는 그 오래된 재판을 지금까지 이어 가고 있었던 겁니다.
조건도 어렸을 때와 비슷했습니다.
제가 ‘나이 많은 쪽’이고, 상대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저를 탓하는 순간입니다.
그때마다 열 살의 법정이 다시 열렸습니다.
거울처럼 겹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감정의 원인을 여동생에게 돌리던 열 살의 저처럼,
저를 탓하는 11살의 딸도 그 자리에 서 있을지 모릅니다.
"남을 탓하는 마음"
그것은 자기가 아픔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나오곤 합니다.
참는 것과 지키는 것
그렇다면 증명을 멈추면 될까요?
여기서 또 하나의 착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증명을 멈추는 건 지는 것이고, 결국 참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그래서 제가 그냥 넘기는것이 그토록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열 살의 제겐 넘긴다는 건 “무조건 참아라”를 다시 받아들이는 일, 곧 제 억울함을 없던 일로 하는 일이었으니까요.하지만 참는 것과 지키는 것은 달랐습니다.
참는 것은 내 억울함을 지우는 일이고,
지키는 것은 내 억울함을 내가 먼저 알아주고 말할 때를 내가 고르는 일입니다. 상황은 그대로입니다.다만 그 상황에 대한 나의 해석과 태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앞의 것은 나를 버리고, 뒤의 것은 나를 지킵니다.
지금은 과거 그 장면의 세 사람이 모두 이해됩니다.
억울했던 열 살의 저도, 인과를 알기 어려운 나이에 자기 입장에서 생각했을 어린 동생도, 그리고 외할머니의 의도도요. 다만 이해한다고 그때의 억울함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해하면 풀릴 거라는 생각, 이것이 마지막 착각이었습니다.
이해는 머리가 하는 일이고, 인정은 마음이 받아들이는 일이니까요.그래서 그때 듣지 못했던 말을, 지금의 제가 어린 10살의 저에게 해줍니다.나이가 많다고 네 억울함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어. 억울할 만했어
딸에게 받으려 했던 인정은, 어쩌면 그때의 제가 받고 싶었던 인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원칙 하나를 세웠습니다.
억울할 때, 증명 대신 마음을 먼저 듣는다.
먼저 들을 마음은 둘입니다.
하나는 억울해하는 제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저를 탓하는 상대의 마음입니다.
사실은 그 뒤에,
감정이 가라앉은 다음
한 번만 차분히 말하면 됩니다.
『중용』 14장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 上不怨天 下不尤人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에게서 구하지 않으면 원망이 없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게되고,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않게된다.
인정을 남에게서 구하지 않을 때, 억울함은 비로소 원망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나이로든 사실로든, 마음을 건너뛴 판결은 억울함을 남깁니다.
제가 받은 그 억울함을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합니다.
열 살의 저의 옆에 필요했던 그 "어른"이,
이제 제가 될 차례입니다.
혹시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증명하고 있다면, 잠시 스스로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이 변론은, 몇 살의 내가 하고 있는가?
여기에 파일을 드롭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