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기 정인호
2시간 전

사명을 묻기 전에 이음매를 본다-여덟 개의 층, 일곱 개의 이음매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사명은 분명한데 왜 이렇게 지치는지 모르겠어요."

이럴 때 나는 사명을 다시 묻지 않는다.

사명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를 묻는다.

천명, 신념, 사명, 원칙, 규칙, 태도, 자세, 행동.

현장에서 자주 뒤섞여 쓰이는 이 여덟 단어는 각각 다른 층에 있고,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부하는 어느 한 층이 약해서 생기지 않는다. 층과 층 사이가 끊겼을 때 생긴다.

천명은 원재료다.

고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욕구의 목록은 거의 같지만 어느 욕구에 과잉 반응하는가는 다르다.

그 편중이 천명이고, 이것만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

선택은 신념부터 시작된다.

신념은 세상은 어떻고 사람은 어떻다는, 내가 세상을 읽는 전제다.

천명이라는 원재료를 신념이라는 렌즈로 읽을 때 사명이 도출된다.

이 편중을 가진 내가, 이렇게 읽은 세상에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신념은 바뀔 수 있고, 그래서 사명도 시기마다 다시 쓰인다.

사명이 서면 원칙이 따라온다.

원칙은 사명을 위해 지켜야 하는 것과 포기해야 하는 것의 목록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가 원칙의 절반이다.

규칙은 그 원칙을 행동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니 존재 이유는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

규칙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고,

원칙은 사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고,

사명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규칙이 원칙과 끊긴 채 살아남으면 사람은 왜 지키는지 잊은 규칙을 성실하게 지키게 된다.

성취해도 갈증이 남는 부하의 전형이다.

내가 말하는 충실한 삶은 여기서 정의된다.

사명을 흔들리지 않게 매일 하면서, 나와의 원칙을 지켜 나가는 것.

여기에 큰 전제가 하나 있다.

세상은 늘 변한다. 엔트로피는 자연의 법칙이고, 고객의 삶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천명을 제외한 신념, 사명, 원칙, 규칙은 불변이 아니다.

일정 시간 유지되다가 변한다.

다만 방향이 있다.

더 뾰족하게, 더 정밀하게, 더 나에게 맞게 변해야 한다.

규칙은 시간과 상황을 조건으로 바뀌고,

원칙은 사명을 조건으로 바뀌며,

사명은 신념을 조건으로 바뀐다.

조건 없이 바뀌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표류다.

여기까지가 선택의 계열이라면,

태도와 자세와 행동은 그 선택을 감싸고 세상으로 내보내는 몸의 계열이다.

태도는 선택을 품는 마음의 지속적인 기울기이고,

자세는 그 기울기가 순간의 몸과 표정과 거리로 드러난 것이며,

행동은 세상과 실제로 닿는 유일한 층이다.

사명은 태도로 체화되고, 원칙과 규칙은 행동으로 집행된다.

선택의 계열은 언어로 점검할 수 있지만 몸의 계열은 언어 바깥에서 먼저 드러난다.

고객이 사명을 유창하게 말하는 동안 어깨가 굳고 시선이 내려간다면,

말과 몸 사이 어딘가가 끊겨 있다는 가장 빠른 신호다.

그래서 나는 고객의 사명을 묻기 전에 이음매를 본다.

규칙이 원칙을 잊었는가?

원칙이 사명 없이 굳었는가?

신념이 천명을 건너뛰고 사명을 지어냈는가?

선택은 뚜렷한데 몸이 받쳐 주지 못하는가.

여덟 층에는 일곱 개의 이음매가 있고, 부하는 늘 그중 하나에서 샌다.

어디가 끊겼는지 이름을 붙이는 것.

그것이 사명을 새로 쓰는 것보다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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