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기 정인호
4일 전

어디까지가 행복인가


"매일 간식을 사줬더니, 아이가 웃지 않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간식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자주 사줬어요.

오늘 사주고, 다음 날도 사주고, 볼 때마다 사줬습니다. 좋아하는 얼굴을 보는 게 좋아서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웃지 않았습니다. 받는 게 당연해졌으니까요.

그리고 더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안 사주면 서운해했어요.


사줘도 기쁘지 않고, 안 사주면 서운한 상태. 제가 매일 사준 간식은 어느새 선물이 아니라 기준선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기준선은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고 사라질 때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기쁨은 사라지고 고통만 남은 거죠.


## 돈도 정확히 이렇게 움직입니다


첫 차를 샀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아마 반년쯤 기뻤을 겁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열 번째로 가면 어떨까요??


흔히 "부자는 차를 사도 안 기쁘다"고 말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부자도 새 차를 사면 기뻐요. 적응이 깎는 건 기쁨의 크기가 아니라 기쁨의 지속시간입니다.

처음 차는 반년이 기뻤고, 열 번째 차는 사흘이 기쁩니다.

그래서 더 자주 사게 되고, 더 큰 걸 사게 됩니다.


지금 그 차가 커 보이는 건 아직 못 샀기 때문입니다.

사고 나면 사흘 뒤부터 그냥 주차장에 서 있는 쇳덩어리예요.

이건 냉소가 아니라 그냥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제 아이들의 간식과 같은 원리고요.


여기서 중요한 걸 하나 짚고 싶습니다.

간식은 먹으면 사라집니다. 아무것도 쌓이지 않아요. 그런데도 똑같이 시들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질리게 만든 건 물건이 아니라 기대였습니다.

소유물을 경험으로 바꾸든 뭘 하든, 반복되는 순간 그것은 기준선이 됩니다.


## 그럼 돈은 어디까지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저는 그 경계가 생존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선 아래에서 돈은 고통을 없앱니다.

월세 걱정, 병원비 걱정, 다음 달 걱정.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즉각적이고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구간에서는 돈과 행복이 거의 1대1로 맞먹어요.


생존선 위에서 돈은 자유를 삽니다.

싫은 일에, 싫은 사람에게, 싫은 조건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요.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자유는 살 때 기쁘지 않습니다. 없을 때만 아픕니다.


거절할 수 있는 상태는 실제로 거절하는 그 순간에만 잠깐 느껴지고, 평소에는 아무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존선을 넘은 사람들은 "돈이 더는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행복하게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행복이 조용한 종류로 바뀐 것뿐인데요.


그리고 조용한 걸 못 느끼니까 다시 시끄러운 걸 삽니다.

차를, 시계를, 가방을. 하지만 시끄러운 기쁨은 앞에서 본 대로 금방 식습니다.

생존선을 넘고도 계속 고통을 없애던 방식으로 돈을 쓰는 것.

있지도 않은 고통을 없애려고요.

제가 상담에서 가장 자주 보는 장면이 이것입니다.


(참고: "생존만 되면 돈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2023년 카너먼과 킬링스워스가 서로 반대되던 자신들의 연구를 함께 다시 검증했는데, 대부분의 사람에게 행복은 상당한 소득 수준을 넘어서도 계속 오르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꺾이는 지점은 생존선보다 한참 위에 있어요. 다만 그 위에서 돈이 사 주는 것의 성질이 바뀌는 겁니다.)


## 그래서 저는 간식을 끊었습니다

정확히는 끊은 게 아니라 조건을 걸었습니다.

당연시를 감사로 바꾸고 싶었거든요.

매일 주던 것을 조건부로 바꿨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을까요.

간식은 지금 저의 비장의 카드이자 아이들의 가장 큰 유혹이 되었습니다.

물건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같은 간식이에요. 바뀐 것은 조건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가치가 돌아왔습니다.


저는 여기서 돈을 배웠습니다


가치는 물건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조건에 들어 있습니다.

무제한으로 주어지는 것은 무엇이든 기준선이 되고, 기준선이 된 것은 더 이상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돈도 마찬가지예요. 아무 기준 없이 쓰는 돈은 아무리 써도 무색해지고,

조건과 기준이 붙은 돈은 훨씬 적은 금액으로도 힘을 갖습니다.

원칙이란 결국 내가 나에게 거는 조건부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조건을 걸어서 간식의 가치를 되살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아무 조건도 걸지 않은 채로 돈을 씁니다.

그러고는 왜 이만큼 벌어도 기쁘지 않은지 궁금해하죠.


지금 당신은 당신의 돈에 어떤 조건을 걸어 두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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