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 하루전 ..고난과 시련


아플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저번 주 금요일, 다래끼를 째는 수술을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받은 약 중 하나를, 정확히 말하면 항생제만 빼놓고 먹었다. (븅신 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정신이 없었다.

무료 라이브를 준비하고 있었고,
런칭 일정이 머릿속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고,
“이것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몸이 아프다는 신호는 그 와중에 늘 뒤로 밀렸다.
아픈 건 잠깐 참고 넘기면 되는 거라고,
지금 멈추면 안 되는 시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런데 화요일, 눈이 다시 부었다.
통증도 같이 올라왔다.
병원에 갔고, 의사는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앞에서
“제가 항생제를 안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사실 피곤한 것도 맞았고,
스트레스가 극심한 것도 맞았으니까.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자마자
참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졌다.
엉엉 울었다.
사람들 시선이 느껴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때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단순했다.

“나 돈 벌어야 되는데, 왜 이러는 거야.
내 몸뚱이는 왜 이 타이밍에 이러는 거야.”

돌이켜보면 참 잔인한 생각이다.
아픈 몸을 탓하면서도,
그 몸으로 계속 버티길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쉬는 법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쉬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쉬면 불안해졌고,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았고,
멈추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프지 않기 위해 쉬는 게 아니라,
아파도 계속 가는 쪽을 선택해왔다.

그런데 몸은 어느 순간부터
내 선택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았다.

눈에 염증이 생기고,
다시 붓고,
간지럽고,
뻐근해졌다.

그제서야 알았다.
이건 시련이 아니라 경고라는 걸.

“지금 속도로 가면 더 크게 멈춰질 수 있다”는,
몸이 보내는 마지막으로 조용한 신호라는 걸.


우리는 흔히 말한다.
“쉬어야 해.”
“명상해.”
“마음을 비워.”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쉬는 건
눈 감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계속 긴장한 상태로 살아온 사람에게
진짜 쉼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는 선택
이다.

손을 멈추는 것,
몸을 자극하지 않는 것,
오늘 하루만큼은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도 눈은 완전히 괜찮지 않다.
가끔 간지럽고,
가끔 불편하다.

하지만 그 간지러움은
더 이상 짜증의 대상이 아니다.

그건 내 몸이
“이제 좀 나를 봐달라”고 말하는 방식이니까.

아프지 않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아픔을 무시해온 시간들.

이제는 그 방식을 내려놓아야 할 때라는 걸,
눈 하나가 가르쳐줬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플 틈조차 없다고 느끼고 있다면,

몸이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너무 오래 참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쉬는 건 포기가 아니다.
회피도 아니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오늘은,
아프지 않기보다
덜 밀어붙이는 하루여도 괜찮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 편으로 돌아온다.

2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기본 아바타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