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찾지 못했던 천명, 로마에서 찾다

기술자들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특징이 있다.

시장에 자기 기술에 대한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보다, 정교한 기술을 갖고 전문성을 따지는 사람들을 우수하다고 본다. 맞다. 처음에 해당 ‘기술 시장’ 에 들어가면 수많은 선생님과 선배들을 만나게 된다. 나보다 더 우수한 실력을 가진 자들을 보며 열심히 그 기술을 익힌다. 기술을 열심히 연마하여 시장에 팔릴만한 수준이 되면 겨우 ‘한 단계’ 지나갔다 며 안심한다. 그리고 나서도 계속해서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기술을 학습하는 것에 집중한다. 어쩔 수 없다. 최신의 기술을 모를 경우 out-dated되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다. 신종 기술을 더 먼저 배운 사람들을 따라 새로운 강의를 계속 듣는다.

그렇게 기술력에 대한 FOMO가 생긴다.

나도 그랬다. NLP(natural language programing)을 배울때도 느끼던 불안감이, LLM(Large Language Model) 이 등장하자 더 커졌다. 대표님들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몇 불안을 내려놓은 적도 있었다. 놓아버림 책을 읽으면서 LLM이 벌려버린 격차를 따라가는데 급급하지 않고 그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사용하는, ‘소비자이자 생산자’ 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그 순간 뿐이었다. 무언가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상태로 6주가 지나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땐 차분했던 마음이 , 6주차가 되어 나만의 서비스를 만들어야 할 때가 되자 다시 시끄럽기 시작했다. LLM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한지 도저히 ‘나만의 관계성’ 을 맺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업 아이디어 구체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너는 기술자라면서 남들이 하는 것을 베끼기만 해’ 라던가, ‘제대로 기술 사용도 못해’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이탈리아 여행 일정이 다가왔다. 한국에서의 고민을 뒤로 하고 여행에만 몰입하기로 마음먹었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의 압도적인 크기와 화려함에 놀랐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보다 더 큰, 조각상들을 볼 때마다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엄청난 크기에 환호성만 질렀다. 윈도우 배경화면으로만 보던 건축물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그 크기가 ‘실제로 볼땐 좀 작은’ 게 아니었다. 바티칸시티 속 박물관과 성당에 들어가서 보이는, 높은 천장화는 말이 안됐다. 예술적으로 완벽한 미술 실력을 가진 거장들이 자기 인생을 다 바쳐 천장에 매달려 그림을 그리고, 말년에는 자꾸만 떨어지는 회벽때문에 실명을 하고 허리 통증을 얻을 정도의… 그런 그림들을 보며 그저 놀라웠다.

이탈리아 남부도 대단했다. 폼페이 유적지엔 폼페이 시민들의 ‘배수 시스템’ 이라던가, ‘일방통행 표시 방법’ 같은 놀라운 내용들을 알게되었다.

투어가이드가 다시보였다.

그들이야말로 수많은 이탈리아 유적들과 유물들을 ‘소비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생산하는’ 존재였다. 자기 자신이 맡은 유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전문가였다. 그 유물들에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에게 가장 전문가답게 설명해주는 사람이었다. 로마 유물들에 대한 ‘최고 전문가’ 나 ‘박사’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있게 설명하는 건 아니었다. ‘처음 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 으로,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들이 가득했다.

LLM과의 관계에 힌트가 보였다. LLM 투어가 필요한 자들에게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것, 내가 최고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인 상태가 되는 것, 타인의 실력이 나보다 더 뛰어나다거나 앞서나가는 것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것, 나만의 컨셉을 잡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LLM을 잘 사용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존재가 되는 것도 꽤나 괜찮아보였다.

타인에게 설명할 수준이 되려면 ‘박사급’ 이어야 한다거나 ‘완벽한 전달력’ 을 가져야 한다거나, ‘타인과 절대 중복되면 안되는 고유하고 독창적인’ 콘텐츠를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조금씩 깨어나오는 느낌도 들었다. 어느 가이드나 로마 콜로세움 앞에 도착하면 콜로세움이 만들어진 배경과 그 건축의 특이점을 설명한다. 특정가이드는 조금 더 디테일하게 여행자를 챙겼는데, 그 덕에 몇몇 가이드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환경을 계속해서 정리’ 해주는 능력이 좋을 수록 그 가이드가 인상깊었다. 사진이 잘 나오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주며 ‘사람들이 원하는 포인트 하나’ 를 정확하게 해소해주는 가이드도 좋았다. 걸어다니며 설명하는 가이드들은 언덕을 크게 올라가는 구간이나, 전체 일정의 70%가 되는 지점에서 사탕과 초콜렛을 주었다. 지루할 수 있는 버스 투어에서, 해안가 뷰와 가장 어울리는 노래를 들어주는 존재도 있었다. ‘동기부여가 필요한 시점에 적당히 보상을 제공하는’ 가이드 덕에 힘내서 끝까지 완수할 수 있었다.

‘너는 기술자라면서 남들이 하는 것을 베끼기만 해’ 라던가, ‘제대로 기술 사용도 못해’ 라는 마음의 소리를 물리쳐낼 수 있는 마인드가 새롭게 생겨났다. ’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코드를 작성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었다. LLM 이라는 세상에 투어가이드라면 어떤 행동을 할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면 답이 있었다.

1. 비개발자 LLM 유저들에게 ‘처음 봐도 쉽게 잘’ 사용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는 프롬프트를 만들어주는것

2. 남들과 같은 LLM에 대한 프롬프트를 사용하는 것을 겁내하지 않고, 그 ‘프롬프트를 뽑아내는’ 상위 프롬프트를 전달하는 것

3. 비개발자 LLM 유저들이 궁금해하는 ‘그것’ 들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 투박한 방식이더라도 먼저 해결하는 것

4. LLM을 사용해 자기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질린’ 사람들에게 질리지 않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이 과정 속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정말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LLM의 발전이 너무나 두렵다며 눈물을 흘렸던 과거의 내가 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이걸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느꼈나요?’ 처음 들었을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대답할 수 있다.

‘네 이걸 하는게 제 운명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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