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공부하지 않고 살았다
최근 한 달 동안 내 삶에 꽤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잠자는 시간이 달라졌고, 먹는 습관이 달라졌다. 하루를 보내는 루틴도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몸이 전보다 건강해졌고, 쉽게 지치던 피로도 많이 줄었다.
주변에서도 묻기 시작했다.
“너 요즘 뭐가 달라졌어?”
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내 삶에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환경이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이 크게 줄어든 것도 아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16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왔던 나의 삶과는 꽤 다른 하루를 살고 있었다.
조금 더 정돈되어 있고, 루틴이 생겼고, 몸은 가벼워졌고, 예전보다 덜 피곤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꾸었을까.
한동안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한 가지를 발견했다.
나는 그동안 나를 너무 몰랐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꽤 열심히 사는 엄마였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그 시기에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싶었고,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래서 첫아이를 낳기 전부터 육아에 관한 책을 읽었다.
원래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아이에 관한 책은 열심히 읽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육아 강의를 찾아다녔다.
지금처럼 유튜브에 좋은 강의가 넘쳐나는 시대도 아니었다. 좋은 강의를 들으려면 직접 찾아가야 했다.
아이를 아기띠에 메고 버스를 타고 스터디 모임을 찾아다닌 적도 있다.
나는 아이를 이해하고 싶었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이 시기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싶었다.
특히 큰아이는 남편과 성향이 아주 비슷했다.
문제는 나와 남편의 성향이 거의 반대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이가 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밤 11시, 12시가 되어도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물었다.
“오늘 아이가 이런 행동을 했는데 왜 그런 거야?”
남편에게는 쉽게 이해되는 행동이 나에게는 하루 종일 고민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일 때가 많았다.
그러면 남편은 몇 분 만에, 때로는 1분 만에 답을 주었다.
나는 그렇게 아이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16년 동안 해왔다.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히고 싶어서 둘째가 돌 무렵 거실의 텔레비전을 없앴다. 그 자리를 책장으로 채웠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정말 많이 공부했다.
아이를 관찰했고, 아이를 이해하려 했고,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나에 대해서는 그렇게 공부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그렇게 궁금해하면서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묻지 않았다.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그렇게 이해하려고 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는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거실의 텔레비전까지 없애면서, 정작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무엇을 할 때 에너지가 생기고 무엇을 할 때 소진되는지, 언제 쉬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야 편안한지, 나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메타인지’라는 것이 나에게는 부족했던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니 늘 혼란스러웠다.
해야 할 일은 많았고, 그중 무엇이 중요한지는 잘 몰랐다.
결국 가장 급한 일을 먼저 했다.
아이를 키우면 급한 일은 끝이 없다.
밥을 챙겨야 하고, 학교와 학원 일정을 챙겨야 하고, 집안일을 해야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계속 생긴다.
그렇게 하루하루 급한 일을 처리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집도 정신이 없었고 내 머릿속도 정신이 없었다.
몸은 늘 피곤했고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그러면 짜증이 났고 화가 났다.
그리고 그 감정이 결국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흘러갔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관계가 어려워진 순간도 있었다.
나는 아이를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유는 단순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에 대해서는 공부했지만 나에 대해서는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달 동안 내가 한 일은 어쩌면 아주 단순했다.
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어떤 생활방식이 나에게 맞는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하나씩 들여다봤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되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수면 습관을 잡았다.
먹는 방식을 바꾸었다.
하루의 루틴을 만들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몸이 달라졌고 하루가 달라졌다.
그리고 내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아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나는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의 나는 누군가가 어떤 방법을 알려주면 먼저 판단했을 것이다.
‘이게 정말 맞을까?’
‘나한테도 맞을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정말 변하고 싶었다.
조금 더 나아지고 싶었고, 우리 가족이 지금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나를 잘 이끌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일단 배워보기로 했다.
물론 아무 사람의 말을 무조건 따르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신뢰하고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판단한 사람에게 배울 때만큼은, 이미 가지고 있던 고집과 의심을 잠시 내려놓아 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항복’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포기한다는 의미의 항복이 아니다.
변화하기 위해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잠시 내려놓는 것.
그리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 변하고 싶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알려주신다면 한번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그 마음으로 한 달을 살았다.
핑계를 대지 않으려고 했다.
하기 싫은 날에도 약속한 것을 지키려고 했고, 한번 해보기로 한 것은 가능하면 실행했다.
그러자 아주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16년 동안 만들어진 생활이 한 달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다시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말 달라지고 싶다면 때로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일하고, 피곤하면 짜증도 내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한 달 동안 나를 공부하고, 배우고, 작은 것들을 실행했을 뿐인데 삶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그래서 앞으로 이 과정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을 몰랐으며, 무엇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것을 삶에서 어떻게 실행했으며, 그 결과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하나씩 이야기해보고 싶다.
혹시 나처럼 열심히 살았는데도 늘 정신이 없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정작 자신은 지쳐 있고,
무엇인가를 바꾸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먼저 이 질문을 해봤으면 좋겠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아이를 공부하고, 배우자를 이해하려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런데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단 한 사람,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의외로 공부하지 않는다.
나는 16년 동안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했다.
그리고 이제야 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삶의 변화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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