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기 손소희
1시간 전•

돈에게 쓰는 편지 (2)

돈아, 우리 어제 많은 이야기를 나눴잖아.

엉키고 엉켜버린 실타래에

도대체 얼마나 무수한 이야기가 얽혀 있을지

아직도 감이 오지 않아.

난 너를 엄마라고 생각했고

또 아빠라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남자라고 생각했어.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네게 투영하고 있었어.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렇게 네가 미웠을까?

그래, 인정할게.

나는 가족을 살리고 싶어서 너를 가지려고 했어.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애초부터 회복될 관계는 없었는데 말이지.

한편으로는 너를 정복하고 싶었고,

내가 인정받고 싶었어.

너를 정복해야 내가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

정복은 가족관계로부터 시작된 미움에서 왔고,

인정은 나만 널 갖지 못했다는 설움에서 왔어.

나는 널 왜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거든?

그게 정복으로 나타난 거고.

널 정복한다면 난 어떤 기분이었을까?

많이 슬펐을 것 같아.

모래 위에 쌓인 금방 무너질 모래성이라는 거 알았을 것 같다.

참 희한하지?

나는 직감으로 너를 잘 알면서도

경험으로 너를 왜곡하고 있어.

나는 느끼거든.

나는 너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걸.

나는 너를 잘 알았고,

너도 나를 편하게 여겼어.

이 감각은 어디에서 온 걸까?

생각에서 가장 큰 충돌이 있는 두 가지가 있어.

돈을 많이 벌어야 해.

그런데 돈을 많이 버는 건 나쁜 거야.

왜?

부모님은 분명 돈을 많이 벌 자질은 충분하셨던 것 같아.

엄마는 교수가 되실 수 있었고,

아빠는 사업을 성공시킬 충분한 능력이 있었고.

그런데 두 분 다 돈을 많이 벌면 나쁘다고 생각하셨어.

가족 싸움 때문에.

분명 친척 중에서도 우리가 제일 잘 살 수 있었거든?

그런데 나서지 않으셨어.

가족관계가 틀어질 까봐.

이미 한 번 돈 때문에 가족 불화를 경험하셨고,

가장 사랑하던 가족을 잃었으며,

믿었던 가족에게 배신당했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우리에게 돈을 많이 가져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심어주셨어.

우리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그런 능력이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돈 많이 벌어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계속 말씀하셨어.

그러네.

부모님이 나에게 넌 안 된다고 얘기하셨던 게 아니네.

내가 돈을 많이 벌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게 아니네.

분명 우리가 돈을 많이 벌고 잘 살 걸 알고 계셨던 거야.

그런데 당신들이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니까

계속 돈은 나빠. 큰 돈은 나빠.

돈을 크게 벌면 딸들이 서로 싸울까봐,

당신들 형제처럼 서로 비난할까봐 걱정하셨던 거네.

내가 돈을 많이 벌게 될 걸 아셨던 거야.

내가 너와 아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아셨던 거야.

그래서 정복하고 싶었어, 너를.

우린 부모님 형제와 다르다.

나는 다르다는 걸 보여드리겠다.

큰 돈을 벌어도 나는 동생들을 챙긴다는 걸 보여드리겠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너를 만날 수가 없는 거야.

운이 점점 좋아지면서 내가 너를 만나는 크기가 늘어나긴 했거든?

그렇지만 넌 나를 스쳐지나갔어.

아, 나는 그게 너를 정복하는 방법이었구나.

써서 이겨버리는 것.

이겨야 속이 후련해지는 것.

사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전해주고 싶으셨던 건데 말이야.

네가 나쁘지도,

네가 악하지도,

네가 문제도 아니라는 걸 아셨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을 선택할 건지,

그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아셨던 것 같아.

하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았던 거지.

각자 당신을 상처와 아픔에 빠져 있느라 차마 너를, 그리고 우리를

돌보지 못하셨던 거야.

그럼 앞으로 우린 어떻게 화해하면 될까?

내가 단순히 '우리 화해하자' 라고 해서

우리가 쉽게 화해하지는 못할 것을 알아.

내가 변화해야겠지.

알려줄래?

내가 어떻게 변화하면 좋을지?

어릴 적, 너를 편안하게 여겼던,

그래서 우리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면 되겠다.

너를 노란색 강아지 인형처럼 느꼈던 이유가 있었어.

나 그 인형 진짜 좋아했거든?

근데 인형은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갖고 놀지 않았어.

그런데다가 버린 것 같아.

성인이 될 때까지 갖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 인형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잘 갖고 놀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걸 보고 있으면,

그리고 만지고 있으면 편안했기 때문에 계속 생각나.

널 떠올릴 때도 생각나고,

예술을 떠올릴 때도 생각나.

다시 오면 좋겠다.

나는 너와 싸우지 않고,

너를 정복하려 하지 않고,

너와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

그런데 여전히 남아 있는 불편한 마음이 있어.

너를 정복한다는 마음에서 넘어가질 못하는 마음이.

그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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