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딸 - 수산나

선물같은 순간들

 

어제와 같은 오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일터까지의 동선마저 짧아 특별한 사건 하나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늘 글감이 부족했다. 주변에서는 약국에 에피소드가 넘쳐나지 않느냐고 말한다. 처음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매일 하나씩만 풀어내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펜을 들면 써 내려갈 이야기가 마땅치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명을 만나는데 왜 쓸 거리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나는 그동안 사람이 아닌 ‘증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학회나 스터디에서 발표할 임상 사례는 될지언정, 삶의 냄새가 나는 이야기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솔직히 그 임상 기록마저 대단한 비법은 아니라는 자격지심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약국 이야기를 어떻게든 쓰고 싶었다. 약국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써보기도 했지만, 늘 알멩이가 빠진 듯 허전했다. 그 허전함은 결국 약국을 채워주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약국은 몸만 불편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 마음이 고단한 이들도 온다. 사실 몸이 아픈 것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의 병이 만든 경우가 많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한결 밝아진 얼굴로 문을 나선다. 병원보다 문턱이 낮아서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은 때로 나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기도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밝아진 얼굴들 덕분이었다. 이제는 그 얼굴들을 하나씩 문장에 담아보려 한다.

 

사실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지금 나의 위치는 풍전등화와 같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이 밀려오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들이 내게 안겨준 선물 같은 순간들을 허공에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 더불어 그동안 내가 흘린 눈물과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나의 시간을 나만이라도 소중히 기록해 두고 싶다.

5
기본 아바타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