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독서를 시작하기에 앞서...
본문을 읽기 전, 감수의 글을 읽고 짐작해보면 이 책은 인간과 기술의 융합, 그리고 그 연장선에 있는 ‘영원’을 긍정하는 방향을 향하는 듯하다. 다만 그로 인해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느낌도 든다.
삶이 영원해진다는 것은, 한정된 자원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과연 적합한 일일까. 삶은 유한하기에 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 왜 우리는 영원을 꿈꾸는 걸까. 아마 지금의 삶에 대한 만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끝이 아쉬운 것일 테다. 그러나 나는 그 방향에 쉽게 동의되지 않는다. 기계와의 융합을 통해 이어지는 삶은 낯설고, 어딘가 불편하다.
나는 오히려 유한한 삶에 만족한다. 끝이 있기 때문에 삶은 더 또렷해진다. 어쩌면 내가 펼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펼칠 자본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기회는 대부분 돈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돈이 없는 사람은 꿈조차 제한된다. 그리고 그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빈곤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은 쉽게 믿기 어렵다. 격차는 누군가에게는 필요조건처럼 작동한다. 차이가 있어야 욕망이 생기고, 욕망이 있어야 시장이 유지된다. 그런 구조 속에서 모두가 풍요로운 상태는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불안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늘 예측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즐겁지만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즐거움을 유지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까.
이미 내가 익숙했던 영역에서도 변화는 시작됐다. 키오스크와 AI 상담사가 자리를 대신한다. 감정 노동이라 칭하던 서비스직이 가장 먼저 대체되었다. 인건비가 들지 않는다는 명확한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계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답답해도 ‘기계니까’ 하고 넘긴다. 반복되는 응답, 해결되지 않는 상황, 하소연할 대상의 부재. 인간적인 상호작용은 점점 줄어든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에 적응해야 할까. 지금 사용하는 도구들 또한 금방 다른 것으로 대체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반드시 대비해야만 하는 걸까.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걸까. 나는 그저 안정적이고 평온한 삶을 원할 뿐인데, 왜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맞춰 자신을 바꿔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편리함이 늘어날수록,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나는 그것들을 지키고 싶다. 느긋한 삶, 여유로운 독서, 사색과 토론, 그리고 곱씹는 시간. 삶을 반추하며, 후대에 남길 정신을 다듬는 일. 나는 언젠가 사라질 존재이기에, 그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나는 한 권의 책처럼 읽히는 삶을 살고 싶다.
AI의 발전은 더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여유로워질까? 글쎄,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것 같다. 인간은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AI를 따라잡기 위해서든, 맡겨두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든 인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이들은 쉽게 ‘도태되었다’고 불릴 것이다.
이 변화의 속도 앞에서 나는 불안하다. 그럼에도 나는 한 권의 책으로 읽히고 싶다. 느긋하고 사색적인 삶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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