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선천적이라는 말은 순간 무기력하게 만든다.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무엇도 해보지 못한채 주저앉을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선천적이라는 말이 그렇다.
아들은 선천적으로 한쪽 안구 길이가 짧다. 초등학교 1학년 건강검진에서 알게 되어 안과를 갔을 때는 왜 이제 왔냐는 말을 들었다. 무심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정밀검사를 받고나서 안구길이가 다르고 시력 차이가 커서 안경을 쓰자고 해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가림치료도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교정시력이 잘 나온다는 것.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갔지만 교정시력이 잘 나온다는 말 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번 안경원에서 원시가 많이 빠졌네요, 하는 말에 순간 신이 났다. 이제 둘다 괜찮은가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안과도 가지 않았다. 안경에 흠이 많이 나서 바꾸러 가자는 말에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안경원에서 선천적으로 안구 길이가 짧은 눈은 변화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사위도 있어서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눈연습을 제안하셨다. 병원에서도 해줄 수 있는게 없었을거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태교를 잘못한 걸까. 그때 몸이 많이 안좋았는데, 그래서 아들이 그런걸까. 아니면 1주일이지만 일찍 태어나서 다 자라지 못해 그런걸까. 수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그 말이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그래, 그때도 그랬지. 선천성 기형이라는 말.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 수술이 미뤄져서 한없이 기다리던 그 날. 친구에게 맡겨놓은 아들이 걱정됐지만 자꾸 미뤄지는 수술에 병원을 떠날 수 없었던 그 날. 그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무력하게만 느껴졌던 그날.
애써 눈물을 감추고 안경원을 나서서 남편에게도 담담하게 아이의 상태를 전했다. 어떨 수 없지 하는 말로 마음을 숨기며 포장했다. 어두운 마음 속 자책과 후회, 미움, 슬픔을 함부로 꺼내놓을 수 없었다. 꺼내놓기엔 너무 어둡고 캄캄하니까. 애써 선천적이라는 말 속에 담아 저 밑바닥으로 내려보낸다. 당분간은 마주하고 싶지 않아 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세 글자에 이렇게 큰 마음이 담기는지 몰랐어요 ㅜㅜ 깊고 깊은 사랑이기에, 아무도 몰래 피어나는 아픈 질문들. 엄마만이 품는 눈물의 시간을 글로 뵈며 함께 마음을 적십니다. 글 나눠주셔서 고마워요 곰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