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환상: 특이점 시대에 쓴다는 것에 대하여

-마지막 세대의 문장

우리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세대. 마지막으로 뇌가 몸에만 있는 세대. 마지막으로 지능이 생물학적 한계에 묶인 세대. 2045년 무렵, 과학자들이 말하는 특이점이 도래한다면, 그 이후의 인류는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인류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두려운 일일까, 경이로운 일일까.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시간에 함께 쓴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것들일 것이다.

10년 안에 뇌와 컴퓨터는 인터페이스로 연결된다. 생명공학은 질병을 치료하는 수준을 넘어 수명 자체를 재설계한다. 자동화는 노동의 지형을 바꾸고, 나노 기술은 신체의 경계를 지운다. 2030년쯤에는 인간과 기계가 유례없는 방식으로 결합되기 시작한다. 기하급수적인 기술의 가속은 우리가 직관으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훨씬 먼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AI는 이미 많은 창작을 '매우 잘' 하고 있다. 논문을 쓰고 소설과 시를 쓰고 작곡을 한다. 예술성 있는 영화를 만들 뿐아니라 감정도 시뮬레이션하고 독자와 관객의 눈물을 계산할 줄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쓰는가.

인간의 문장은 비효율이다. 혼자 방에 앉아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에 답하고,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감각을 언어화하려고 골몰한다. 쓰는 행위로 인간은, 우리 존재를 증언할 수 있을까.

특이점 연구자들은 솔직하다. 이 기술은 인류를 번영시킬 수도 있고, 멸절시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생명공학의 실수 하나가 파괴적인 팬데믹이 될 수도 있고, 자기복제 기계는 연쇄 반응을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낙관과 공포가 같은 자리에 있다.

이것은 문학의 오래된 자리와도 닮았다. 문학은 항상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는 곳에서 쓰였다. 전쟁의 한복판, 상실의 한가운데,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문장을 완성해왔다.

AI는 syntax error를 찾는다. 오류를 수정하고 패턴을 완성하고 빈칸을 채운다. 인간보다 월등히 잘한다. 그런데 애초에 무엇을 써야 하는가를 묻는 것은 다른 일이다. 오류 없는 문장과 써야할 이유가 있는 문장은 다르다.

나는 오랫동안 어쩌면 syntax error를 고치는 사람으로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편집자로서 다른 사람의 문장을 다듬는 작업은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롤랑 바르트의 사토리의 순간처럼, 특이점에 관한 FOMO가 다가올수록 오히려 나는 쓰려는 욕망을 느낀다. 가장 인간적인, 마지막 세대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남기고 싶은 환상을 품어본다.

글쓰기-의지. 쓰고 싶다는 감각을 품고 나아가는 것. 소멸하지 않는 욕망을 가슴에 두고 하루를 사는 것. 출판의 지형이 바뀌고 종이책의 종말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일을 실천하시는 작가님들과 함께, 여전한 오늘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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