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두가 가격을 올릴 때, 혼자 멈춘 가게가 왕이 됐다
가장 강력한 마케팅은 요란한 이벤트가 아니라, 끝까지 지켜낸 하나의 약속에서 나온다.
나는 요식업 사장님들을 만날 때마다 거의 같은 질문을 받는다.
"매출을 올리려면 뭘 더 해야 할까요?"
그런데 나는 요즘 오히려 반대로 묻고 싶어졌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을 14년째 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가게가 하나 있다. 커뮤니티에 잊을 만하면 올라오는 그 포스터, '14년째 가격 동결'의 주인공. 엽기떡볶이 이야기다.
잘되던 가게에, 예상 못 한 위기가 왔다
시작은 2002년 동대문 중앙시장 한복판의 4평짜리 닭발 가게였다.
맛있게 매운 특제 소스가 입소문을 타면서 오픈 1년 만에 일 매출 100만 원. 거침없이 잘나가던 그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찾아온다.
2003년, 전국을 덮친 조류 인플루엔자.
닭발 수급은 불안정해졌고, 닭고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시장 전체를 덮었다. 주변 자영업자들은 하나같이 울상이었다. 재료가 흔들리고 손님이 끊기는, 사장이라면 누구나 무너지는 그 상황.
그런데 이 가게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근데 우리는 왜 매출이 안 떨어지지?"
닭이 안 팔리는 시기에, 매출은 멀쩡했다.
사장은 그 이유가 궁금해서 영수증을 하나씩 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도 몰랐던 답을 발견한다.
닭발이 아니었다.
닭발 양념을 그대로 부어 만든 사이드 메뉴, 엽기 떡볶이. 이 곁다리 메뉴가 전체 매출의 60%를 끌고 가고 있었다.
주력이라 믿었던 것이 진짜 주력이 아니었다. 손님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데, 사장만 뒤늦게 안 것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가게는 "운이 좋았네"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 사장은 달랐다. 이걸 우연이 아니라 방향으로 받아들였다.
명인을 찾아다니며 소스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세수대야만 한 그릇에 강렬한 매운맛을 때려박아 지금 우리가 아는 엽떡의 원형을 만들어냈다.
우연히 발견한 것을, 끝까지 파고들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비싼 가격은 약점이 아니라 무기였다
많은 사람이 엽떡의 성공을 '매운맛' 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승부수는 다른 데 있었다.
가격이었다.
당시 분식집 컵떡볶이가 500원, 잘나가던 떡볶이 프랜차이즈들도 비싸야 2,000원대였다. 그 시장에 엽떡은 12,000원, 이후 14,000원짜리 떡볶이를 들고 나왔다. 3~4인용이라 해도 소비자 입장에선 파격을 넘어 무모해 보이는 가격이었다.
그런데 이 '무모한 가격'이 결정적인 순간에 치트키로 바뀐다.
스마트폰과 함께 배달앱 시대가 열렸을 때, 배달앱에는 '최소 주문 금액'이라는 장벽이 있었다. 2,000원짜리 떡볶이는 이 금액을 채우려고 이것저것 억지로 담아야 했지만, 본품만 만 원 중반대인 엽떡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남들이 약점이라 부르던 비싼 가격이, 엽떡에게는 배달에 최적화된 유일한 체급이었다.
비싼 게 문제가 아니라, 비싼 이유가 없는 게 문제였던 것이다. 엽떡은 그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올릴 때, 엽떡은 멈췄다
그렇게 왕좌에 오르나 싶던 2022년, 진짜 시험대가 찾아온다.
전쟁 여파로 밀가루 값이 80% 넘게 뛰었다. 어묵도, 식용유도, 심지어 플라스틱 용기까지 죄다 올랐다. 엽떡은 창업 이후 처음으로 약 18억 원의 영업 손실, 적자로 돌아섰다.
이럴 때 사장이 당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레버는 하나다.
가격 인상.
실제로 그해 수많은 떡볶이 브랜드가 값을 올렸다. 모두가 "이제 엽떡도 올리겠지" 했다.
하지만 엽떡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대신 이 시기에 자체앱에 투자를 늘리고, 마라 같은 신제품 개발에 힘을 쏟고, 급기야 자체 어묵 공장까지 세웠다. 값을 올려 당장의 손실을 메우는 대신, 원가 구조 자체를 바꾸고 고객이 다시 찾을 이유를 만드는 쪽으로 갔다.
손쉬운 수익이 아니라, 오래 버틸 체력에 투자한 것이다.
전략은 통했다. 2023년, 엽떡은 사상 처음으로 연 매출 1천억 원을 넘겼고 흑자로 돌아섰다. 그 뒤로도 경쟁 브랜드들이 원가를 못 견디고 값을 올릴 때, 엽떡은 가격 동결의 뚝심을 이어갔다.
지켜낸 약속은, 그 자체로 마케팅이 된다
여기서 진짜 마법이 벌어진다.
한때 시장 가격을 파괴하던 '빌런' 엽떡이, 남들이 다 오르는 사이 혼자 멈춰 있자 어느 순간 '가성비'라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창렬이었는데 다른 놈들이 계속 올려서 이제 가성비 됐다"는 소비자들의 말이, 돈 한 푼 안 들인 최고의 광고가 됐다.
여기가 핵심이다.
엽떡은 '14년 가격 동결'을 홍보 문구로 만들지 않았다. 그냥 약속을 지켰을 뿐이다. 그 약속을 소비자가 대신 퍼뜨려줬다.
바이럴은 억지로 만든 이벤트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하고 싶은 경험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알아서 만들어내는 결과다.
"언제 가도 14,000원이면 3인분을 먹을 수 있다"는 각인 하나가, 어떤 프로모션보다 강하게 손님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 각인 덕에 손님은 일단 들어와 사이드 메뉴까지 시켰고, 그렇게 매출이 회복됐다.
지켜낸 약속이 신뢰가 되고, 신뢰가 다시 매출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이 이야기를 사장님들과 나눌 때 늘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매출을 올리려면 뭘 더 해야 하느냐고 묻지만, 엽떡이 왕이 된 이유는 무언가를 '더' 해서가 아니었다.
모두가 당기는 손쉬운 레버 앞에서, 혼자 멈출 줄 알았기 때문이다.
단기 매출은 값을 올리면 오늘 당장 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지킨 숫자가 손님과의 약속을 무너뜨린다면, 그건 성공이 아니라 천천히 진행되는 실패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
가장 강력한 마케팅은 요란한 신메뉴도, 화려한 이벤트도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끝까지 지켜낸 하나의 약속. 그 약속이 쌓여 만든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를 지킬 시간과 체력을 확보하는 것 — 손쉬운 레버 대신 본질을 강화할 여유를 만드는 것 — 그것이 결국 오래 살아남는 가게의 유일한 공식이다.
당신의 가게가 절대 흔들지 않을, 그 하나의 약속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남들과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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