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은 그대로인데 옷이 헐렁해졌어요
최근 상담했던 한 회원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이 회원님은 두 달 넘게 체중계 숫자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어요. 숫자만 보면 다이어트가 정체된 것처럼 보일 수 있죠.
그런데 몸에서는 분명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옷의 핏이 달라졌고,
무엇을 먹어도 늘 더부룩했던 소화 상태도 편안해졌죠.
식단을 바짝 조이거나 운동량을 갑자기 늘린 것도 아니었어요.
그리고 상담 중 회원님이 직접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몸무게가 다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이 한마디가 이 프로그램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좋은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체중계가 알려주는 숫자만으로 자신의 몸을 판단하던 사람이, 숫자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스스로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에요.
왜냐하면 이 회원님의 다이어트를 막고 있던 것은 체중 자체가 아니었어요.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보다
그 자리의 분위기와 상대방의 기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먼저 살피는 생활 방식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몸의 신호보다 다른 사람의 말이 먼저..
시댁에 가면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더 먹어라”
“그렇게 먹어서 배고프지 않겠니?”
반면 친정에 가면 어머니는 반대로 말씀하셨죠.
“그만 먹어”
“너 그거 먹으면 살쪄!”
양쪽에서 완전히 반대되는 말을 계속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정작 아무도 묻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배고프니?”
“뭐 먹고 싶어?”
“배부르니?”
심지어 회원님 자신도 그 순간에는 잘 알지 못했어요.
자신의 배고픔과 배부름을 확인하기 전에
그 자리의 분위기에 맞춰 먹는 것이 더 익숙했기 때문이에요.
식사 자리를 결정할 때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퇴근 후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어도 어른이 “저녁 먹으러 갈까?”라고 물으면, 속으로는 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일이 가끔 발생한 것이 아니라 거의 매주 반복되고 있었어요.
회원님은 다이어트 중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하는 것도 어려워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제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살을 빼는 것도 아닌데, 다이어트 중이라고 말하면 유난스러워 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거나 필요한 것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알아서 조심했습니다. 먹고 싶지 않음에도 먹고, 충분히 먹었어도 더 먹은 뒤 집에 돌아와 혼자 헛헛해하셨죠..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몸과 계획보다 상대방의 기분과 평가를 먼저 두는 삶의 순서가 반복되고 있었던 거예요..
음식 앞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 패턴은 식사할 때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어요.
자신의 몸을 바라볼 때도 똑같이 반복됐어요.
회원님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웨딩드레스 핏에 크게 불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에도 나름대로 만족하고 계셨죠.
그런데 메이크업숍에서 자신보다 마른 다른 신부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위축되셨대요.
“나도 더 말랐으면 좋았을까..?”
혼자 거울을 볼 때는 괜찮았던 몸이
다른 사람과 나란히 놓이는 순간 갑자기 부족하게 느껴지신 것..
자신의 몸을 보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성적표를 받는 자리가 되어버린 거예요..
식사할 때도, 자신의 몸을 평가할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배부른지보다 다른 사람이 더 먹으라고 하는 말이 먼저였고,
내가 만족하는지보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말랐는지가 먼저였습니다.
내 기준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원하는 숫자에 도달해도
옆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꿔야 했던 것은 식단표가 아니라 삶의 순서
이런 구조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식단만 더 강하게 조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일주일 동안 계획대로 먹어도, 매주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몸의 신호를 계속 무시한다면 다이어트는 다시 흔들립니다.
그래서 진짜 바꿔야 했던 것은 식단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반응보다 먼저 다음과 같이 묻는 습관이 필요했어요.
“지금 나는 배가 고픈가?”
“얼마나 먹고 싶은가?”
“지금 정말 식사하러 가고 싶은가?”
“나는 오늘 무엇을 원하는가?”
그동안은 이런 질문 없이 상대방의 말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지만
이제는 대답하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서가 하나 추가되어야 해요.
사실과 감정을 분리하면 내가 원하는 것이 보인다
저는 코칭할 때 사실과 감정을 분리하는 연습을 자주 해요.
예를 들어 시댁에서 식사를 권하는 상황이 있었다면 다음과 같이 하나씩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어른이 더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배가 부르다.
거절하면 상대방이 서운해할 것 같아 걱정된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먹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고 답답하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더 먹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식사를 마치는 것이다.
“더 먹으라고 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거절하면 나를 싫어할 것이다”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해석 입니다.
그 상황에서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감정 입니다.
더 먹고 싶지 않은 것은 자신의 욕구입니다.
이것들이 한데 뒤섞여 있으면 상대방의 말에 반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보이지 않지만
사실·해석·감정·욕구를 구분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보입니다.
그다음에야 거절하는 말도 찾을 수 있어요.
“저는 지금 충분히 배불러서 여기까지만 먹을게요”
“오늘은 많이 피곤해서 먼저 쉬고 싶어요”
“조금만 먹고 더 먹고 싶으면 그때 가져올게요”
거절을 잘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는 만큼 자신의 몸과 마음도 함께 존중하는 것입니다.
체중계보다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것
체중이 두 달 넘게 그대로라는 사실만 보면 정체기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회원님은 숫자가 움직이지 않는 동안에도 자신의 몸이 편안해지는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체중만으로 다이어트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지 않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말에 반응하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살피는 연습을 시작하셨죠.
저는 이것을 정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방향이 맞다는 신호라고 생각하죠.
다이어트의 진짜 변화는 체중계 숫자가 먼저 내려갈 때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던 사람이 자신의 몸을 확인하기 시작할 때,
먹고 난 뒤 자신을 탓하던 사람이 그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던 사람이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묻기 시작할 때
이미 변화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체중계는 몸의 일부만 보여줍니다.
숫자만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지,
무엇을 참아왔는지,
왜 자신의 몸보다 타인의 반응을 먼저 살피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원님들과 상담할 때 숫자보다 먼저 물어요.
“그 순간 어떤 감정이었어요?”
“그때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어요?”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살이 빠지지 않는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계속 같은 선택을 만들었던 삶의 구조가 보입니다.
몸무게는 그대로일 수 있어요.
하지만 내 몸의 변화를 알아보고,
타인의 기준과 나의 기준을 구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묻기 시작했다면
멈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체중보다 먼저 삶의 순서가 달라지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것이 다이어트가 제대로 시작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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