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라면 먹는 이유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면
대체적으로 냉장고를 열어보다가 결국 라면을 끓여 먹어요.
저는 이게 귀찮아서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분리수거장에 있는 라면 박스를 멍-하니 보다가
문득 엄마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어린 시절 엄마는 증조할머니 댁에 가지 못했대요. 멀미가 너무 심해서.
할머니가 혼자 남은 엄마에게 라면 한 박스를 사주고 갔고,
엄마는 "라면이면 문제없었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어요.
그 말이 저의 무의식에 새겨져 있었던 거예요.
심리학에서 모델링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어요.
어릴 때 보고 들은 장면이 뇌에 자동으로 각인되는 것.
라면 봉지를 집어드는 순간 "엄마도 이랬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냥 자동으로 그렇게 돼요.
리처드 도킨스는 이걸 밈이라고 불렀어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복제되듯,
행동 패턴과 생각도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
엄마의 "라면이면 문제없다"가
유전자처럼 나에게 복제되어 있었던 거예요.
그게 무서운 거예요.
모른 채 반복된다는 게.
저는 여기서 시작했어요.
라면 봉지를 집어드는 순간
"아, 지금 그 패턴이 올라오고 있구나" 라고 보는 것.
엄마를 탓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보는 거예요. 나에게 이런 패턴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자동이 멈춰요.
선택이 생겨요.
그다음에 중요한 게 질문의 방향이에요.
"나는 왜 이럴까? 이게 고쳐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뇌를 막아요. 답이 없거든요.
스스로 자책의 패턴으로 가기 마련이고요.
대신 이렇게 물어봤어요.
"혼자 있을 때 내가 잘 먹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질문이 바뀌니까 뇌가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냉장고에 간단히 꺼내 먹을 수 있는 걸 미리 준비해두거나,
혼자 먹을 때도 그릇에 담아서 먹는 작은 규칙 하나를 만들거나.
크게 바꾸려 하지 않아도 돼요.
딱 2분만 움직이는 거예요.
혼자 먹는 날, 냉장고에서 뭐라도 하나 꺼내 그릇에 담는 것.
2분이면 돼요.
도킨스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 만들어졌지만,
유전자의 전제적인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다"
라면 대신 그릇에 뭔가를 담는 2분짜리 선택.
그게 복제된 패턴에 저항하는 첫 번째 순간이에요.
그게 엄마의 패턴과 다른
나만의 선택을 만드는 시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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