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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력
" (딸이 없어서) 어떡할래요?"4명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에게 툭 던져진 질문. 나머지 분들은 모두 딸이 있으신 분들이었고, 나만 딸이 없었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은 터라"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찾아야죠." 하고 대답했지만, 질문이 마음에 남았나보다. 저 질문이 마음에 남은 이유는 정말로 노년에 딸이 없어서 외롭고 힘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일거다. 집 앞 꽃집은 카네이션을 사려는 여학생들로 가득했다. 아무리 눈씻고 찾아봐도 남학생은 없다. 더구나 오늘은 야자도 하는 날이니, 야자 끝나고 와서 카네이션을 줄 수 없을 거다. 벌써 올해부터 시작인가 싶어 살짝 우울해졌다. 뭐, 나도 그렇게 살가운 딸이 아니니 하는 생각이 미치자, 자식이 가까이 살고 자주 볼 수 있으면 모르지만 지금의 나처럼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 일년에 서너번, 명절전후에나 볼 수 있다. 나도 그리 살갑지 않은데, 자식에게 바라면 안되지 하며 마음을 단념하려는데, 또 다른 생각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쓰는 화장품 브랜드는 알아. 필요할 때 사드리고. 하지만 시어머니 화장품은 모르잖아? 나이가 들어서도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는거야.' 딸과 며느리의 차이겠지.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휴대폰을 살펴보니 아들의 부재중 전화가 9통이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학교에 있어야 할 녀석이 왜 전화지? 무슨 일이 생겼나? 심장이 벌렁벌렁 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연결된 전화에서 아들이 밝은 목소리로"속이 안좋아서 조퇴했어. 지금 집이야. 그리고 카네이션 샀다."순간 고민하고 불안해했던 생각들이 모두 확 달아났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달의 뒷면을 촬영하러 갔던 아르테미스 호가 지구를 바라보니 모두 하나의 존재로 보인다고 했다던 그 말. 넓은 우주에서 보면 인간은 하나의 점에 불과할텐데. 그것도 한계가 있는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뭐그리 생각이 많고 아등바등 살아가는지. 우주선은 발사할 때보다 돌아올 때가 더 힘든데, 중력에 의해 천천히 돌아오는 길을 발견해서 안전하게 돌아오고 있다는 내용도 이어졌다. 그때 들려오는 멘트. 우리도 삶의 중력에 이끌리듯 살아가는 것은 어떤가요?불안하고 걱정한다고 나의 미래가 바뀌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의 중력대로 삶의 무게대로 천천히 살아가야 한다. 오늘처럼 생각과 불안이 많다가도 삶의 중력은 다시 내 삶으로 이끌어준다.


평균의 함정
먼저 달리기를 시작한 남편을 따라 뛰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되어 간다. 처음엔 1킬로도 못 뛰었는데 지금은 10킬로에 도전한다. 작년까지는 10킬로 기록에 도전하는 맛이 있었는데, 올해는 몸이 참 안따라준다. 아니 불안하다는 게 맞다. 조금만 무리하면 감기 몸살이 오고, 중간에 독감도 걸렸다. 걸리는 건 괜찮은데 한번 걸리면 집안일은 올 스톱이 되고, 자꾸 누워있게만 된다. 아들은 데려와야 하니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나간다. 그게 계속 반복된다. 아침에는 일어나는게 힘들고, 저녁엔 누웠다가 병든 닭처럼 자기 일쑤다. 일은 해야 하는 사회인이니 없는 힘을 다 짜내 일을 하고 수업을 한다. 집에오면 탈진 상태가 된다. 3월부터 계속 반복되니 이제는 아픈게 무섭다. 달리기를 할 때는 괜찮은데 끝나고 추운 상태로 조금만 지속이 되면 몸살이 온다. 몇 번 겪고 나니 달리는 것도 힘들고 무서워졌다. 몸살이 또 걸릴까, 감기가 올까. 이 비루한 체력. 그럴수록 운동을 더 해야하는데 운동은 안하게 되고 자꾸 눕는다. 겨울에 신청해놓았던 대회는 또 나가야 하니, 대회때만 달리고 평소 연습은 거의 못했다. 5월 황금 연휴에 잡힌 달리기 대회. 마침 비도 온다. 더운 것보다는 낫다지만 그치지 않고 계속 오는 비는 달리기를 힘들게 한다. 비도 오고 미끄러지면 안되니 조깅 페이스로 달리기로 마음 먹었다. 조깅페이스는 천천히 뛰기 때문에 숨이 그리 차지 않아서 끝까지 천천히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둘씩 내 앞을 지나쳐가는 사람들. 걷지는 않았지만 뛰는 속도가 느리다보니 자꾸 뒤로 밀린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뛰는 거지? 조깅페이스로 뛸거면 대회 신청은 왜 했을까 하는 자책이 밀려온다. 이왕 대회 나올거였으면 준비도 좀 하고 운동도 하고, 숨차도록 뛰어봐야 하지 않느냐는 남편의 말도 생각난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뛰고 있었다. 조금씩 남은 거리가 줄고 있었던 그때, 내 앞에 1시간 20분 페이스 메이커님이 나타났다. 사실 1시간 20분 페이스 메이커 곁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잘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10킬로 1시간 이전 페이스메이커에 사람들이 있지, 1시간 20분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페이스메이커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뛰어가셨다. 나도 그 속도와 큰 차이가 없으니 곁에서 잠시 뛰었다. 그래, 내가 달리기를 기록을 세우려고 하는게 아니잖아.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은 운동이 달리기라면 지금 나는 달리기의 과정에 서있는 거지. 지금 당장 기록이 느리고 저 뒤에서 세는게 더 빠르다고 할지라고 난 끝까지 꾸준히 뛸거니까. 지금도 내가 달리는 시간의 가운데에 있는 거지. 이런 마음이 드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언젠가 할머니 1시간 20분 페이스 메이커도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을까? 지난 해 5킬로 달렸던 구간이 보인다. 아, 이제 진짜 얼마 안남았구나. 걷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속도를 조금 더 올려서 계속 뛰어본다. 골인 지점이 다가온다. 완주하고 기록을 보니, 오잉? 걷지 않고 꾸준히 뛰었는데, 빨리 뛰다가 걷다가 했던 기록보다도 느리다. 평균의 함정이다.
왜 학교에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곰곰
올해 내 연구 주제는 읽기, 특히 학교에서 읽기이다. 학교에서 책을 함께 읽고 싶어하고, 교과서에 나온 책을 더 읽기도 한다. 왜 읽고 싶어할까.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고민을 안고 책을 읽고 있다.

당근
아들이 사용하던 글러브를 팔고 싶다고 했다. 제 성질대로 하지 못하면 짜증부터 내는지라 우선은 들어주기로 했다. 지지난 금요일에 올리고 몇 명이 채팅이 왔다. 산다고 했다가 안산다고 했다가, 연락이 끊겼다가. 하. 이래서 당근이 싫다. 당근에 올리기 싫었다. 언제 울릴지 모르는 채팅 알람. 바로바로 대답해주어야 하는 상황. 내가 팔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중간에서 하는 게 불편했다. 그래도 아들이 경험해야 하는 과정이려니 했다. 가장 불편했던 건 아들이 사진을 보냈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샀던 페이지 사진이 아닌 것 같은거다. 좀 찜찜했지만 올렸다. 어디에서 사줬는지 사실 나도 모르겠고, 찾기도 어려워서 그냥 지나쳤다. 귀찮았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남편도 상태도 좋은데 왜 당근을 하냔다. 남편의 말도 마음에 걸렸다. 굳이 팔지 않아도 되는데. 아들에게 물어봤다. 그렇게 용돈이 부족해? 아니, 안써서 팔려고. 그래, 안쓴다니까. 팔아보자. 복잡한 마음으로 당근을 시작했다. 몇 번의 채팅으로 거래가 어그러진 후 갑자기 당근이 울렸다. 거래를 하자고 한다. 시간 약속을 잡았다. 혼자 나가도 되지만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아들보다 조금 더 큰 학생일까. 상태가 좋다고 하고 가져간다. 아들과 그 모습을 함께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판 돈의 일부는 아들에게 주고, 다음달 용돈까지 아들에게 보냈다. 버스도 타고 매점도 이용하다보니 돈이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만원밖에 안남았었다며 만족스러워한다. 그래, 네가 만족하면 됐다. 집으로 돌아와 아들의 중간고사 대비를 함께 하고 있는데, 다시 당근이 울린다. 사갔던 학생의 아버지란다. 올렸던 사진은 정품 사진이고, 우리가 샀던건 레플리카란다. 그래,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사진 않았던 것 같다. 순간 내가 거짓말로 당근을 한 것 같아 부끄럽고, 불안했다. 남편과 아이에게 보여주니 제대로 정보를 보내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고 환불해주겠다고 하란다. 확인해보니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니었고, 혼란을 주어 미안하다고, 그 때문에 환불을 받고 싶다고 하면 바로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들을 보내겠다고 했다. 이번엔 남편하고 나갔다. 글러브를 다시 받고 바로 환불해주었다. 그랬더니 학생이 마음에 드는데 깎아줄 수 없겠냐고 한다. 으잉? 환불했는데? 안그래도 글러브 파는 걸 탐탁치 않아했던 남편이 우리가 쓰기로 결정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집으로 오면서 내내 찜찜했던 마음들이 하나둘씩 올라왔다. 사진이 아닌 것 같으면서 강하게 이야기하지 못해서 번거로운 상황이 벌어졌구나 싶기도 했다. 다시 찾아보라고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겠구나, 싶었다. 남편은 파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잘 되었다며 아들과 가끔 쓰겠다고 했다. 그 학생이 마음에 들어하는 모습을 봤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환불을 받으러 나오기 전에 가격을 조정해달라고 했으면 조정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 아들도 별 일 없었냐고 묻는다. 제 실수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혹시나 문제가 생겼을까 걱정스러웠나보다. 당근은 신중하자. 사실 당근을 또 하고 싶지는 않다. 신경이 많이 쓰인다. 내가 정말 팔고 싶거나 보내고 싶은 물건이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지. 제대로 된 정보를 확인하고 올리는 것도 필수다. 아들에게도 한번더 찾아보라고 하고, 정확하게 올리자고 해야지. 아들도 이번 기회로 배웠을 것이다. 사소한 일이지만 생각이 많은 내 모습도 살피게 된다. 웃기지만 사실 계좌 번호 주고 받는 것도 찜찜해서 당근페이라는 것도 가입했다. 낯선이들과 내 정보를 주고 받는 것도 이제는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것도 조금은 안타까웠지만 어쩌랴. 사회가 그리 되는 것을. 승자는 아들이다. 아들에게 글러브를 처음 팔았을 때 주었던 돈은 돌려받지 않았다.

글쓰기의 환상
있지, 있어. 글쓰기의 환상. 아주 많다. 쓰고 싶은 글감이 생각나서 책상에 앉으면 술술 써지는 그런 환상을 꿈꾼다. 멈추지 않고 쭈욱 써내려가는 내 모습을 그린다. 아, 얼마나 멋진가. 다시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글을 한 숨에 쓴다니. 다시 글을 읽어본다는 건 부족함과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부족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한다. 글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될만큼 멋진글을 한번에 써내는 환상을 꿈꾸는건 나의 부족함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일것이다. 부족하고 싶지 않다, 잘 쓰고 싶다, 누가 봐도 멋진 글이었으면 좋겠다. 결국 글쓰기에도 게으른 완벽주의가 깃든다. 삶에서도 보이는 것이 글쓰기에도 그대로 투영되는 셈이다. 아, 순간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글쓰기가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마저도 환상. 환상이다. 술술 잘 풀리기를 바라는 환상. 삶도 마찬가지로 큰 풍파 없이 잘 넘어가기를 바라는 환상. 지금 안정적인 것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환상. 모두 욕심인 걸 알면서도 바라게 되는 환상. 손에 잡힐듯 해서 손을 뻗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환상들이다. 살아보니 알게 되는 것들 중에 완벽하지 않고 안정적인 것은 없다는 걸 매순간 느낀다. 삶은 불안정하고 불안하다. 무서운 곳이었다. 살아가면서 열심히 잘 살아가려고 했던 건 무섭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정적인 것을 찾아 헤맸다. 이걸 배우면 안정적이 될까, 저걸 배우면 계속 써먹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일에서도 삶에서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것은 없었다. 언제든 변화는 찾아왔다. 내면에서도 외적으로도. 그 변화가 마냥 무섭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또 적응해나가는 내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글쓰기도 결국 이 모습과 닮았다. 안정적으로 술술 써내려가는 환상을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글을 쓰고 또 다시 읽고 고치는 과정을 통해야만 글이 아름답게 변한다. 삶도 안정적으로만 살기를 원하지만 고난 끝에 피어난 꽃이 더 아름답듯, 여러 고비들을 넘겨가며 얻은 삶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물론 어려움이 없으면 좋겠지만, 어려움 속에도 배우는 것은 있다는 걸 몸으로 체험하며 느낀다. 글도 그러하겠지. 내 글을 보는 게 부끄럽고 어렵지만 그 글을 보면서 또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환상은 환상일뿐. 현실로, 글도 현실로.
선천적
선천적이라는 말은 순간 무기력하게 만든다.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무엇도 해보지 못한채 주저앉을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선천적이라는 말이 그렇다. 아들은 선천적으로 한쪽 안구 길이가 짧다. 초등학교 1학년 건강검진에서 알게 되어 안과를 갔을 때는 왜 이제 왔냐는 말을 들었다. 무심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정밀검사를 받고나서 안구길이가 다르고 시력 차이가 커서 안경을 쓰자고 해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가림치료도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교정시력이 잘 나온다는 것.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갔지만 교정시력이 잘 나온다는 말 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번 안경원에서 원시가 많이 빠졌네요, 하는 말에 순간 신이 났다. 이제 둘다 괜찮은가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안과도 가지 않았다. 안경에 흠이 많이 나서 바꾸러 가자는 말에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안경원에서 선천적으로 안구 길이가 짧은 눈은 변화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사위도 있어서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눈연습을 제안하셨다. 병원에서도 해줄 수 있는게 없었을거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태교를 잘못한 걸까. 그때 몸이 많이 안좋았는데, 그래서 아들이 그런걸까. 아니면 1주일이지만 일찍 태어나서 다 자라지 못해 그런걸까. 수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그 말이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그래, 그때도 그랬지. 선천성 기형이라는 말.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 수술이 미뤄져서 한없이 기다리던 그 날. 친구에게 맡겨놓은 아들이 걱정됐지만 자꾸 미뤄지는 수술에 병원을 떠날 수 없었던 그 날. 그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무력하게만 느껴졌던 그날. 애써 눈물을 감추고 안경원을 나서서 남편에게도 담담하게 아이의 상태를 전했다. 어떨 수 없지 하는 말로 마음을 숨기며 포장했다. 어두운 마음 속 자책과 후회, 미움, 슬픔을 함부로 꺼내놓을 수 없었다. 꺼내놓기엔 너무 어둡고 캄캄하니까. 애써 선천적이라는 말 속에 담아 저 밑바닥으로 내려보낸다. 당분간은 마주하고 싶지 않아 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