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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이 부여되는 기분을 느낀적 있는가
또왔다. 나다. 감정의 역치가 높으면 싸패와 다를바 없다는 이야기 들어본적 있는가? 너 티발씨야 에서 타인의 감정에 전혀 공감 못하는 또라이, 지 감정만 중요한 에프코패스, 뭐 그런애들. 감정의 역치가 높아 뭘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감정불구들 말이다. 이는 프로이트 이론에선 어릴적 트라우마랑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시카고 록시도 그르드라~ 이건 전부 어릴때 겪은 애정결핍 때문이라고~) 여유 없는 부모들의 밑에서 자란 아이는 감정의 역치가 높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자식에게 돈과 생존만을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기쁨 설렘 기대 희망 뭐 그런건 목구녕에 밥이라도 넘겨야 있다나 뭐라나. 그게 반복이 되면 자식들은 생존에 필요하지 감정들은 중요하지 않아진다. 그래, 감정의 역치가 높아진다. 세상이 불행으로 가득한 이의 사랑이 어찌 행복을 설명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겪은 불행을 토대로 "불행하지 않는법 100가지"만 설명 할 뿐이다. 그들의 사랑속에 가득한 불행이 자식의 세상을 점점 채워지는 가는것도 모른채 말이다. 이 이야기가 역할과 무슨 상관이냐고? 눈치 못챘는가. 당신에게 부여된 첫번째 역할은 불행하지 않는 당신이 되기 라는 것을. 당신에게 부여된 첫번째 역할은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축하한다. 이 역할을 진행하는 동안은 당신은 불행한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만이 불행하지 않게 되기 위해 노력 할 수 있으니까. ----------------------------------------------------------------------------------------------------- 자 여기까지가 어릴적 당신(나)에게 타인이 부여한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야 본론. 이 이야기는 태초에 부여된 역할인 "불행하지 않는 나"를 벗어 던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오정수고 최대수혜자는 오정수이며, 결정적인 요인이 상미누나다) 사람과 사이에 관계가 생기면 자연스레 역할이 부여된다. 진국인 친구와 안정형 애인, 불안하지만 깜찍한 여자친구 뭐 그런거 말이다. 당신에게 100가지의 관계가 있다면 거기에 부여된 역할은 어쩌면 수천가지가 될지도 모른다. 애인이 뭐 당신에게 하는 말중 너는 좋은 친구이자 오빠이자 어쩌고 하는거 들어본적 있지 않은가. 그래 타인은 항상 당신에게 역할을 부여한다. (항상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당신에게 애도의 Z키를 누른다.) 근데 말이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역할을 부여해 본 적 있는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 정의 내려본적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는 중이다. 이것을 설명하려면 난나상마의 오너 상미누나의 지대한 영향에 대한 설명을 안할 수가 없다. 상미누나가 한때 300명 가까이 되는 제주도 최대 규모 독서모임을 운영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나는 세상이 나랑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였다. (여기서 부터는 대충 정병 서술이니 스킵할사람 스킵하세요.) (한줄로 요약하면 정병모드 오정수 시절이었습니당! 이라고 이해하면됩니당.) 무엇을 해도 체험이 아니라 관망하는것처럼 느껴지는 시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제사상 병풍처럼 그저 그냥 존재하는것처럼 느껴지는 시기. 그 당시의 나의 역할은 여전히 불행하지 않기 위한 나였다. 사실 그것도 몰랐지, 나는 내가 불행한지 전혀 몰랐어. 그냥. 괜찮은줄 알았지. 가끔 침대에 누우면 침대가 늪처럼 느껴져 침대속으로 내가 사라질것만 같은 기분으로 사는것도, 사람이 많은곳에 가면 가끔 머리가 하얘져서 기억이 안나는것도, 사람들이 다 일회용 인연인것으로 느껴지는것도, 그냥 내가 이상하니까 이상한 내가 문제니까. 괜찮은 줄았지. 그래 감정의 역치가 높아졌어. 이런 우울감은 월급받는데 아무 쓸모없고 관련없는 감정이니까. 아무것도 아닌거라고 생각 해야하는 건줄 알았다니까. 우리집 가훈이 뭔지 알아? 쓸모있는사람이 되자야. ㅋㅋㅋ누구에게 쓸모있었어야 할까 나. 사업에 실패하는 아버지와 능력없는 남편을 원망하는 어머니? 그들에게 쓸모가 있으려면 나는 우울하면 정신병이 있으면 안되지 않아? 아아,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람들. 불행하지 않은적이 한번도 없으면서 말이야 코메디야 코메디. 아아....나는 아무렇지 않아야만해. (여기까지 입니당) 큰 독서모임은 생각보다 골치가 아프다. 여미새 남미새는 물론 지적 욕구를 자랑하고싶은 사람들과 외로운사람들, 찐따부터 쌈닭까지 옹기종기모여 책이라는 공통사항을 가지고 대화하는게, 그게 맨날 300명이 모일수도 없고 매주 20명 정도의 사람만 모여서 운영되는데 문제가 없는게 더 이상하지. 노쇼에 장소섭외, 뿌에엥 누구누구 이상한거같애여 우앵앵 누가 누가 껄떡대여 불편불편~ 이러는데 아주 정신이 나갈것 같을 때도 꽤 많았다. 위에 스킵구간 다 읽은 사람이면 알겠지만 나도 딱히 제정신도 아니었으니까. 역치가 높아진 감정불구자. 그래도 다행인건 싸패모라서 저지랄 전쟁터에서도 그냥 글쿤 그러덩가말덩가 상태로 운영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운영진 역할을 하면서 저 아픔을 이겨낸거냐고?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운영진으로서 활동이 중요한게 아니다. 처음 운영진을 한다고 했을때 운영진을 하겠다고 한게 아니었다. "이번 모임에선 서로 한줄평으로 가장맘에든 생각 써보는건 어떨까유?" "재밌겠다. 당장 진행하자. 책임자 오정수 ㅇㅋ?" "카페를 만들어서 글써보는건 어떨까유 기록이 많이 남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좋은생각이다. 당장 진행하자. 책임자 오정수 ㄱ?" 일을 나한테 미루는게 아니다. 상미누나는 정말 좋은생각이라고 생각했고, 정말 재밌어보여서 말했다. 아아 이건 경험해 본사람만 안다. 능력있는 자의 순수한 믿음. 돈주고 사지 못하는 경험이다. (파는 놈도 없구.....) 내가 말한것들은 나의 책임이 되었고, 책임은 나의 역할이 되었다. 쌓여진 책임들은 모여 나를 이루었고 감탄과 호응 관심이 되었으며 그것은 권리라고 부르기 충분할 만큼 달콤하다. 이런 이야기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역할을 부여 한다는 건. 인생이 소설이라면 타인이 나에게 역할을 부여했다면, 그건 그 사람 소설의 이야기다. 스스로의 소설을 적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한 인간은 평생 주인공이 아닌 타인의 인생 등장인물 이상으로 될 수 없으니. 등장인물 따윈 사실 차에치여 죽어도 스토리 전개에 크게 방해 될 게 없다. 상미누나가 뭘 한거냐고? 그녀는 내가 정한 것을 믿었다. 나조차 잘믿지 못하는 믿는 감각도 몰랐던 나를 "존나재밋겟다 당장해보자" 따위 초딩같은 말로 믿었다. 믿어준게 아니라. ㄹㅇ 그렇게 되는게 눈에 보였다더라. 이세계 능력이라고 하면 "재능냄새를 기가막히게 맡는 개"같은 이름의 능력 아닐까. 후각이라 설명하기 어려워하지만 유무는 확실하게 아는 능력. 고작 그게 도움이 되냐고? 하하하, 나의 정병은 불행하지 않길 바라는 사랑에서 시작되었는데, 구원이 믿음에서 비롯되는게 이상하진 않지. 그녀는 여전히 낙원을 꿈꾼다. 당신도 낙원을 바란다면, 펜을 들어라. 당신의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적어라. 그것이 당신이다. 그게 당신의 정의이다. 역할이다. 그리고 해내라. 그것이 나의 구원이었다.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면 좌측에 보이는 커피챗을 누르고 오상미랑 얘기라도 해봐라. (광고아님 맞나) 나는 이곳에 있다. 행복을 고민하는 내가 있어. 불행하지 않음을 위해 노력했던 역할 따윈 버린 내가 있다. 내가 부여한 나의 역할. 그게 뭐냐면. https://www.geekus.kr/nanna/post/10378
본 포스팅은 원고료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일정 부분 구라다. 지원 안받았다. 일정 부분 팩트다. 솔직하게 작성중이다. 제목이 블로그 포스팅 같은 이유는 의미가 있다. "오상미"의 가장 큰 영향은 직업 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부분이다. "내 이름은 오정수 마케터죠." 이 간단한 문장을 쓰기까지 3년 정도가 걸렸다. ----------------------------------------------------------------------------- 인간이 인간한테 어떤 보통 어떤 영향을 주는가. 1. 거슬리게 해서 짜증나게 하기 2.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귀찮게 굴기 3. 신경꺼주고 살아가다 외롭게 만들기 등등이다. 너무 부정적이고 예민한거 아니냐고? 혹시 우리가 쓰고 있는 사이트 이름 읽어봤는가? [난나에여상간마세오] 그렇다. 그런거다. 인간이 인간한테 어떻게 영향을 주겠는가. 그저 방해나 되지 않기를 바라며 행복을 기원하는거 밖에 더 있겠는가. 당신의 세계에선 모르겠지만 예민하고 까다로운 나의 세상에 인간의 영향이란 딱 그정도의 의미였다. 그런데 "오상미"는 영향의 의미 자체를 흔들었다. 불교의 교리에선 연기(緣起)라는 개념이 있다. 뜻은 인연이 일어나다 라는 뜻이다. 대충봐줘라 있어 보이려고 가져다 쓰는 개념이니까. 교리의 의미는 인간의 성격 능력 가치관은 타고난 본성보다 관계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타인을 불신했다. 아니, 불신보다 더 진한 무언가를 가지고있었다. 일회용 인연들을 끝없이 이어붙여 하나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삶을 가지고 있었다. 쪼가리 천을 모아 얼룩덜룩한 거대한 거적데기를 만들고는 그걸들고, 꽤 멋지잖아~ 하고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구려, 싸구려 같은 천쪼가리였다. 오상미가 무엇을 바꿔줬냐고? 천쪼가리의 이음새를 다듬어줬다. 얼기설기 어설픈 바느질, 튀어나온 실밥, 숭덩숭덩 구멍나 있던 나의 인생들을 인연이라는 의미를 이해시키고는 깔끔하게 다듬어줬다. 이제까지 있었던, 일어났던 얼룩덜룩하고 꼴보기싫던 인간의 의미들이 이음새들은 점점 매끄럽게 이어져갔고, 무의미한 가치를 가진 내 인생이란 천들은 하나+하나+하나에서 전체가 하나가 되었다. 의미가 생기니 이음새는 보이지않고, 전체가 되니 따로 떨어져있던 추억들의 색감이, 색채가 통일 되었다. 그래, 그제서야 내손에는 자랑할만한게 생겼다. 지금은 말이지 나는 마케터다. 나의 재능은 정리다. 눈으로 보고 잘모르겠는 데이터나 가치들을 가시화 시키는데 재능이있더라고. 이 재능은 위에 설명한 거적데기 천조각중에 "오만함"라는 이름의 조각이 있는데, 그 조각과 "외로움"이라는 조각을 "도움을 주고싶은 마음"이라는 실로 연결해서 만든 재능이다. 1. 오만하여 타인을 답답해하고 무시한다. 2. 타인을 무시하여 그들과 상관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3. 그러다보니 혼자있게 되고, 혼자임에 외로워한다. 이 각각 놀던 마음들을, 악순환을 생성하던 마음들을 질문 하나로 이어 붙여주었다. "그럼 정수 니가 원하는건, 그들이 답답하지 않게 구는거야?" 그럴리가 없지. 그들이 답답하던 말던, 나와 무슨상관이람. 제길! "그럼, 그들을 도와주고싶어? 그들이 좋아? 함께있고 싶은거야?" 그럴리가 없지. 인간관계란건 그저 순간들의 연속일 뿐이라고! "너는 쓸모있고 싶구나~ 스스로 쓸모가 있을때, 외롭지 않게되네. 너는 그들과 연결되고 싶은게 아니라 너의 쓸모를 그들에게 증명하고싶은거 같아. 근데 정수야. 그게 도움이야. 그 마음을 도와주고싶은 마음이라고 불러도 돼." 오상미가 한일은 그런거다. 수많은 나의 조각들의 정의를 같이해주고, 이것들을 이어내어 나 스스로를 사랑할 법한 천을 만들수 있게 만드는것. 그녀의 영향은 나에게 허락해준것이다. 그렇게 불러도 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