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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페이지 5/9
무기력해지는 나를 질책하고 반성하다가문득 그동안의 이러한 절망과 애씀 덕분에 여기까지왔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지만달팽이처럼 조금씩 나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기쁨의 딸 - 수산나
선물같은 순간들 어제와 같은 오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일터까지의 동선마저 짧아 특별한 사건 하나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늘 글감이 부족했다. 주변에서는 약국에 에피소드가 넘쳐나지 않느냐고 말한다. 처음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매일 하나씩만 풀어내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펜을 들면 써 내려갈 이야기가 마땅치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명을 만나는데 왜 쓸 거리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나는 그동안 사람이 아닌 ‘증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학회나 스터디에서 발표할 임상 사례는 될지언정, 삶의 냄새가 나는 이야기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솔직히 그 임상 기록마저 대단한 비법은 아니라는 자격지심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약국 이야기를 어떻게든 쓰고 싶었다. 약국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써보기도 했지만, 늘 알멩이가 빠진 듯 허전했다. 그 허전함은 결국 약국을 채워주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약국은 몸만 불편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 마음이 고단한 이들도 온다. 사실 몸이 아픈 것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의 병이 만든 경우가 많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한결 밝아진 얼굴로 문을 나선다. 병원보다 문턱이 낮아서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은 때로 나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기도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밝아진 얼굴들 덕분이었다. 이제는 그 얼굴들을 하나씩 문장에 담아보려 한다. 사실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지금 나의 위치는 풍전등화와 같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이 밀려오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들이 내게 안겨준 선물 같은 순간들을 허공에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 더불어 그동안 내가 흘린 눈물과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나의 시간을 나만이라도 소중히 기록해 두고 싶다.

글쓰기 환상 - 수산나
불과 몇년 전까지도 글쓰기의 환상을 꿈꿔 본 적은 없다. 감히 내가 도전해 볼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러던 어느 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니 온통 글의 세상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오직 글을 통해서만 소통되는세상이었다.그렇게 글의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서 처음에는 허우적거렸다.가라앉지 않으려고, 물가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팔과 발을 마구 휘저었다.덕분에 한동안 짠 바닷물로 들이키는 반갑지 않은 경험도 했다.헤엄칠 힘이 생기면 뭍으로 나가리라고 몇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른다.그런데 파도를 조금씩 타기 시작하자 마음이 다른쪽으로 기울었다.' 시원하고 후련하고 짜릿한 이 느낌! 뭐지?'늘 속마음을 감추고 살았다. 그래야 된다고 믿었다. 너무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아서 새삼 마음을 열어보이는 것이 더 어색했다.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빗장을 파도가 흔들면서 열리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속살을 다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워 숨기도 했다.한꺼풀씩 가면이 벗겨지면서 나 자신조차도 몰랐던 진짜 내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나의 낯선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점점 오롯이 나로 설 수 있게 됨에 감사함이 몰려왔다.나의 글쓰기 환상은 온전한 나와의 만남이다.이 환상에 매료되어 한동안 열심히 글을 썼다. 아니 빗장이 한번 풀리니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요즘은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쏟아내기만 하느라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이제는 먼 바다를 향해 나가고 싶다. '나'가 아닌 '당신'을 향한 이야기를 담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