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AI] 002_나는 AI시대에 자기만의 창조력을 가져야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사람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싶다

요새 창조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이미 창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닌다. 여신 동상에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그만큼 사람들의 머리는 딱딱하고 멈춰있었다. 그들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어떤 것이 필요했다.

왜 지금, 나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을까.

AI가 글을 쓰고, 코드를 짜고, 이미지를 만든다.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내 일이 사라질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AI시대에 생존하려면, 오히려 나만의 창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잘 만들기'는 경쟁력이 아니다. 만드는 일은 AI가 한다. 그럼 남는 건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사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결국 창조력을 가진 사람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나는 숨결을 불어넣는 요정이 되고 싶어졌다.


나의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까. 내가 원하는 수준의 돈과 명예와 사업을 잘 완수할 수 있을까. 의심하지 않는다. 성공은 할 건데, 어떻게 할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어서 세상을 향해 물어보는 중이다. 일단 이렇게 가는 게 성공의 길 맞을까. 과거에도 '삘 가는 대로' 살았을 때 실패하지 않았으니 맞는 것일까.

사실 요새는 많이 행복하다. 행복해도 된다고 말하며 옥죄였던 나를 놔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 '창조력'이라는 단어가 들어온 건 아닐까. 나의 머릿속을 편안하게 만들어준 힘 때문이 아닐까. 이 행복을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머릿속에서 정말 바쁠 정도로 샘솟고, 그 샘솟는 열정을 따라가기만 해도 시간이 잘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마 누구나 자기만의 창조력 속에서 몰입하며 세상을 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던 일들이 모여 하나의 사건을 만들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 나는 그게 꽤 크다고 생각한다.


이 힘이 다른 것보다 우선시 되는 이유가 있다. 창조력은 나에게 집중하게 도와준다. 명상을 생각해보자. 명상은 내가 쉬고 있는 숨, 나의 몸뚱이의 감각을 하나씩 인식하면서 나를 인지하게 된다. 창조력은 그보다 조금 더 쉽고 빠르게 내게 집중하게 도와준다.

물론 시작은 '어떤 것을 만들어내려고' 한 것이다. 점점 그 '만들어내는 상황'에 몰입하다 보면 머리는 이렇게 굴러간다. 만들어내는 나의 손에 집중한다. 나의 움직임은 다시 내 머리로 들어가 신호로 작용한다. 어떤 것에 대한 인풋과 아웃풋이 이렇게 순환이 잘 될 수 있나. 공부도 스스로 배우고 익혀 출력해야만 머릿속에 제대로 적재되는데, 그보다 쉽게 '나의 아웃풋 —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금방 손을 통해 입력된다. 그럼 또 다시 아웃풋이 인풋으로 돌고 돌아간다. 머리에는 생각이 스치기만 하는데, 그 스치는 순간마다 개선된다. 큰 지끈거림 없이도, 뇌에 힘을 주지 않아도 저절로 생겨난다.

그러다 물론 막히는 경우가 있다. 아주 답답하게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으면서 콱 막혀버린다. 괜찮다. 그것은 이미 뇌에 끊임없는 스크래치로 인해 뇌가 평평해졌다는 (실제가 그렇다는 건 아님, 상상!) 뜻이고, 그 길 말고 다른 길로 가서 다시 스크래치를 내면 된다. 손으로 입력받던 것을 다른 감각을 통해 입력받기만 해도 달라진다. 향과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하기 너무 좋다. 정 안 되면 낯선 것을 보고 와도 된다. 그리고 다시 머릿속에 계속 스크래치를 낸다. 평평해질 때까지 내고, 또 완료하면 다음 영역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막히는 창조력을 풀어내다 보면, 어느새 어떤 구간에서든 창조력을 발휘하기 너무 쉬워진다.

나는 그 쉬워지는 순간에 또 집중한다. 당신이 창조력을 만들어내는 그 구간을 찾아내라. 그 상황과 환경의 영향을 인식하고, 앞으로 그걸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어라. 우연찮게 그런 기회가 찾아온 게 아니라는 것, 언제든지 스스로에게 '선물처럼'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때문에 그 환경을 구성하기 가장 쉬운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식하고 요약해서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음번에 또 써먹어야 한다. 그렇게 주변 환경을 관리하다 보면 언제든지 필요할 때 창의력을 가져다 쓸 수 있게 된다. 나도 그렇고,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는 '비유'만 잘 한다면 어떤 새로운 생각이든 해낼 수 있다. 막히는 순간에도 주변 물건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 물건의 동작 원리를 살펴본다. 그렇게 하면 금방 인생의 답을 찾아버린다. 마법 수준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AI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대신해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감각', '막혀도 다시 길을 내는 감각', '자기 환경을 설계해서 자기만의 몰입을 불러오는 감각' — 이런 것들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다. 이게 내가 믿는 생존의 조건이다. 기술이 아니라 창조력이다. 더 정확히는, 자기만의 창조력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런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할 때 나는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요정'이 된 듯한 느낌을 정말 받는다. 딱딱하게 멈춰 있던 누군가의 머리에 내 말이 닿아 조금 말랑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게 내가 이 시대에 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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