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부터 흙수저였던 나는 5년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에필로그
태생부터 흙수저였던 나는 5년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1500만원을 빌려 멘땅에서 시작한 5평짜리 가게가,
1년 만에 월매출 6천만 원을 넘겼다.
나는 지금 10억이 넘는 청약 아파트를 계약하고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5년 전, 내 통장에는 단돈 1만 원밖에 없었다.
음대를 졸업했지만 전공을 살리지 못했고,
마땅한 직장 하나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두 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1년 만에 유튜브 구독자 10만 명을 만들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현재는 대표님들의 브랜딩과 채널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유튜브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어쩌다 통장에 1만 원밖에 없던 청년이, 서른살 초반에 10억 자산가가 되었을까?
난 이것이 결핍이 많았던 내 어린 시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외동으로 태어난 나는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마늘 장사를 하셨고,
어머니는 건강 사업을 하셨다.
어릴 때는 부족함 없이 자란 줄 알았다.
그러나 돈은 항상 우리 가족의 싸움의 원인이었다.
돈은 ‘누가 더 벌었느냐’의 권력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아버지의 마늘 사업 실패 이후
나는 ‘돈을 못 벌면 무시당한다’는
잘못된 무의식을 마음속에 새기게 됐다.
우리 부모님은 아주 먼 친척의 소개로
몇 차례 땅을 사셨는데,
그 땅은 지금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땅으로 남아 있다.
수입은 줄고, 연이은 땅 투자 실패로
아버지는 알콜중독이 되었고,
어머니는 화병을 앓으셨다.
6살 때쯤이였을까? 어느 날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나를 16층 현관으로 던질려고 했었다.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울면서
벌벌 떨던 어린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가난’을 배웠다. 지긋지긋했다.
어릴 때 어렴풋이 돈이 없으면 무시당하는구나
돈이 없으면 죄다.
돈이 없으면 싸우는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알바는 가리지 않고 틈틈히 했다.

공부에는 애초에 소질이 없다는 걸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잘하는 건 오직 독학으로 배운 춤과 음악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그때 나이가 18살이었다.

자양동 보증금 300에 월세 25만 원짜리 옥탑방.
겨울에는 고드름이 맺히고,
여름에는 40도까지 오르는 방에서 꿈을 키웠다.

2012년, 521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실용음악과에 합격했다.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열심히 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졸업 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대결절이 찾아왔고,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군 전역 후 집안은 더 어려워졌고,

음악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
남아 있는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했고,
전공을 살리지 못해 취직도 쉽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미친 듯이 일했다.
평일에는 에어컨 청소를 했고,
주말에는 12시간씩 일하며 토요일과 공휴일에도 쉬지 않았다.

골프장에서 공을 주우면 돈이 많이 된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캐디로도 일했다.
캐디라는 직업이 되기 위해서
교육생 기간을 거쳐야 한다.
짧게는 1개월 반, 길게는 3개월까지
무일푼으로 교육을 받는다.
어렵게 받은 캐디 일
한 달에 700만 원 넘게 벌기도 했다.
나는 일을 많이 하는 것만이 부자가 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행복하지 않았다.
만나는 모든 고객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손님이 내가 초보캐디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4시간 동안 날 무시했고 욕을 하는 손님도 더러 있었다.
새벽 다섯 시, 눈을 뜨면 한숨이 먼저 나왔다.
출근 준비를 하는데 눈물이 났다.
그렇게 3개월 만에 2천만 원을 모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다시 방황이 시작됐다.
그 돈이 사라지는 데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열심히 산다고 삶이 달라지진 않았다.
내 건강은 점점 악화됐다.
중학교 때부터 비보이 크루에서 온몸으로 땅을 치며 춤추던 탓에
몸은 이미 많이 상해 있었다.
스트레스성 위염을 달고 살았고,
어깨와 등은 매일 저려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때 재활운동센터를 찾아가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몸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 일을 계기로 운동에 흥미가 생겼고,
결국 나는 운동 강사가 되었다.
보건소, 치매안심센터, 노인대학, 중학교, 고등학교를 돌며
2년 동안 강의를 이어갔다.

몸도 마음도 점점 건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모든 강의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운동 강사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내 수입은 다시 0원이 되었다.
돈은 정말 지긋지긋하게 나를 힘들게 했다.
그때 내 통장에 남은 돈은 단돈 1만 원이었다.
나는 더 이상 밑바닥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1,500만 원을 빌려
5평짜리 작은 샐러드 가게를 열었다.
코로나로 가게들이 줄줄이 폐업하던 시기였다.
주변에서는 지금 창업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앞으로 사람들은 건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고,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그리고 배달업이 뜰 거라고.
배달의민족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우리 가게도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는 배달을 직접 다녔다.
다른 가게들이 문을 닫을 때도 쉬지 않았다.
정말 간절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새벽 1시까지 일했고,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가게는 2배로 커졌고,
월매출은 6천만 원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독거노인분들에게 후원한 기억이 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gWropT-UP9I
이제는 부자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 뒤로 자신감이 생겨 2호점을 오픈했지만,
상권 분석 실패로 하루 7만 원도 벌기 힘들었다.
1호점마저 매출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후 온라인 정기배송 사업도 시도했지만,
결국 또 실패했다. (잘됐지만 시스템이 엉망이였다)
그때 깨달았다.
배가 향해하는데 방향이 없으면 결국 표류하듯,
내 사업에는 방향이 없었다.
그저 돈 되는 일에만 몰두했다.
매출은 올랐지만, 늘 불안했다.
대부분 돈이 된다는 것들을 쫒다보면
돈을 빨리 벌어도 결국 무너진다.
그 이유는 본질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하고 싶었다.
행복하게 사업하고 싶었다.
나는 나를 틀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열심히만 일해서 돈을 버는 삶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부를 만들어가는 삶을 원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믿고
밤낮없이 열심히 일해왔지만,
결국 남은 것은 고생 끝에 골병든 내 몸이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때부터 나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를 먼저 묻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일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랐다.
그때부터 마케팅, 자기계발, 돈, 부동산, 경제, 심리, 뇌과학까지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필요한 강의를 찾아 들었고,
부족하면 찾아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부했다.
책을 읽을수록 들뜬 마음이 들었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유튜브 관련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몇개의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했다.
배운 방법들을 토대로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영상 네 편을 만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조회수는 10회를 넘기기 힘들었고,
한 달 동안 구독자는 고작 12명뿐이었다.
나는 콘텐츠 방향을 바꿔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마음으로
딱 한 편만 더 올려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 분야였다.
중학교 때부터 비보이를 하며 혹사했던 내 몸,
그리고 전역 후 재활운동 회사에서 2년간 근무하며
배웠던 체조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운동 콘텐츠로 다시 한 번 승부를 보기로 했다.
하지만 반응은 여전히 없었다.
결국 유튜브를 접고,
다시 가족들과 함께 자영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평소처럼 일을 나가려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알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누군가 내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영상은 조회수 100만을 기록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거 되는거구나!!
“인생에도 게임처럼 성공의 방정식이 있구나.”
그 깨달음 이후,
그동안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던
공부와 돈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인생은 지옥이 아니었다.
정해진 방법을 배우고, 시스템화하고,
그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게임처럼 계속 레벨업할 수 있는 구조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1년 만에 10만 구독자를 달성했다.
그 경험을 통해 내 친구에게도 방법을 알려주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친구의 채널이
한 달 만에 눈에 띄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 친구 역시 10만 명이 넘는 채널을 운영하며,
여러 채널을 동시에 키우고 다양한 수익 파이프라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만든 코칭의 성과였다.
내가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히 조회수를 늘리고 돈을 버는 게 아니었다.
내가 실행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결과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가르쳐왔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에게 춤을 알려줬고,
고등학교 입시 때는 노래를 가르쳤다.
대학교에서는 피아노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교회 선교를 준비할 때는
CCM 안무를 직접 만들어 교우들에게 전했고,
군대에서는 휴가를 받기 위해 군가를 만들어
선임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운동을 할 때는 후임들에게 동작을 알려주었고,
전역 후에는 재활운동 강사로서
회원들에게 체조를 지도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늘 ‘가르침’ 속에 있었다.
누군가의 성장에 기여할 때,
내가 가장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나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실패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결국 내가 잘하는 건
‘사람들의 성장을 돕는 일’이고,
본인이 가진 컨텐츠를 가지고 사업과 유튜브로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 사실이 내게 엄청난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을 즐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컨텐츠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돕고 발전시킨다.
그들 삶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재미있다.
그들이 매출이 늘어나는 것에 뿌듯하고 보람차다.
이제부터 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단순히 돈 버는 법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비즈니스로 바꾸는 방법을 전하려 한다.
이 채널에서는 내가 지긋지긋했던 돈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갓생 살아왔던 삶의 루틴
또 나처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사업가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싶다.
성장을 향한 여정은 종종 외롭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걷는 동료를 만나면
그 외로움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채널을 만들었다.
혹시라도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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