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면의 목소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촉매역할을 하여 그들이 자유롭게 창의적인 활동을 할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나는 자유와 창조를 목적으로 감동을 주고, 공명하고, 해방시킨다.
모든 답은 각자의 안에 있다.
나는 질문을 던질 뿐이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내가 모르고 있는, 보지못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을 깨는 방식의 대화를 좋아했다.
물론 이런 대화방식이 편하진 않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걸 모르는채로 사는것 보다,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이걸 알고 넘어가는 편이 스스로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내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주변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초등학교때나, 학창시절, 그리고 직장을 다닐때에도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불편해했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그들은 그 불편한 점을 최대한 멀리 피하고, 방치하고, 안보고 싶어하다가 결국 문제를 키운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피하다가 더이상 피할수 없을때가 되어서야 "아, 그러지 말걸 그랬다"하고 후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나는 문제가 작을때 먼저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해줄수 있는건 먼저 해줘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아끼는 사람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내가 해 줄수 있는 도움을 해줬다.
그런데 그들은 문제가 해결됐는데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걸 해결해주면서 오히려 또 그 문제를 직시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불편한 감정은 계속해서 남아있었던 거다.
그렇게 나는 교착상태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저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걸 내어줬는데, 돌아오는게 없었다.
나는 내 가치가 점점 낮아진다고 느껴졌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우연히 "스스로의 가치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거다." 라는 문구를 보게 됐다.
할인마트에 가면 코카콜라 캔은 500원에 살 수 있다.
편의점에 가면 1,000원이다.
그렇다면 외국에 가면? 환율에 따라 10,000원에도 못 살 수 있다.
그렇다. 가치란건 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나는 사람의 과거 데이터를 취합하여 그 사람이 못보고있는 사각지대를 짚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하는것을 좋아하고, 잘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제안한 해결책을 통해 기뻐하고, 변화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할나위없이 기쁘고, 이 세상 어떤것 보다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바뀌길 원하는 사람들이 자기안의 문제를 찾지 못하고 헤메이고 있을때 문제점을 같이 찾아주고, 해결책을 제시하여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