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스토리텔링
어릴 때 나는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고르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집은 가난했고 옷과 장난감은 주어지는 대로 사용했다. 아버지는 항상 열심히 일하셨고 무서운 사람이기도 했다. 현실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고, 공부하라고 사주신 컴퓨터는 나를 게임에 빠지게 만들었다. 게임 속에서 인정받는 경험이 좋았다.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다가도 압박이 커지면 게임으로 도망치는 패턴이 반복됐다.
군대에서는 “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고, 제대후 중국 어학연수에서는 좋은 학교 학생들과 공부하며 “공부도 하면 되는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졸업 후 외삼촌 신발가게에서 일도 해보고 중국에서 장사하던 사촌누나랑 밑에서도 일해보고 병행 수입 하던 형 밑에서도 일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래서 선택한건 온라인 판매였다. 아버지가 신발 공장을 하시고 외삼촌이 신발도매를 하니 당시 온라인붐이 일었었고 나는 온라인쪽을 하면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인터넷으로 신발을 팔았다. 친구와 동업을 하면서 말이 동업이지 내가 월급을 주고 같이 일했다. 결과는 까먹지도 않았지만 벌지도 못했다. 2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 다른 곳에서 일했으면 그래도 2-3천은 모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그러다 중국에서 어학연수 할 때 만난 지금의 와이프와 결혼을 하게 되고 아버지가 신발도매 맡을 사람이 없으니 와서 해볼래? 해서 나의 도매 인생이 시작되었다. 매장을 연 곳은 신발상가 A동 손님이 오지 않는 죽은 상가였다. 몇몇 공장 사장님들이 국내 공장 직영 도매상들을 모으면 좋겠다 싶어서 열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겨울에 하루 12시간씩 난로도 없이 앉아 있을때는 정말 고역이었다. 그러다 이건 아니다 싶어. 오프라인 신발가게를 찾아다니며 명함도 돌려보고, 온라인 카페에 상품을 올리고, 거래처가 사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온라인 셀러를 끌어들였다. 잘나가는 상품을 찾아 공장에 전달하고, 촬영 샘플과 문대 샘플을 뿌렸다. 주문이나 반품으로 돌아오는 정보를 해결하면 매출이 올랐다. 이 구조 안에서 나는 그럭저럭 괜찮게 팔았다.
그러나 시장이 바뀌었다. 코로나 이후 쿠팡시대가 오면서 최저가 경쟁이 심해지고 판매력이 있는 거래처들은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다. 과거의 방식대로 상품을 공급했지만 주문 대신 재고가 쌓였다. 특히 구두 전문 매장에서 구두가 안나가기 시작한건 정말 큰 위기였다. 그래서 다른집 물건을 받아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기존 하고 있는 거래처에 거기서 거래하지 않는 다른 도매집의 상품을 주는 방식은 매출이 떨어지지 않게 유지해주었다. 문제는 받아파는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트렌드와 신발을 판단하는 감각도 약해졌다. 당시에는 정말 편했었다.
문제는 코로나 이후였다. 13년간 장사를 하면서 사스 메르스 세월호 imf 등 여러 위기를 겪었는데 세상이 바뀌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유통 구조가 바뀌고 최저임금인상 집 값 상승등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떨어진 매출이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방향이 바뀐지도 모르고 더 열심시 상품을 올리고 뿌렸다. 문제는 그게 오히려 독이었다. 거래처에 뿌린 신발들은 현금이 아니라 반품으로 올라왔고 내가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했던 잔고는 거래처들이 망하면서 부실이 되었다.
유튜브를 해보려고 컨텐츠를 만들려고 했을때 그 사실이 드러났다. 신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13년이나 신발을 팔았지만 “왜 이 신발이어야 하는가”를 설명할 내 기준이 없었다. 내가 중요하게 본 것은 잘 팔리는지, 공급이 잘되는지, 가격이 좋은지였다. 그것은 도매의 기준이지 브랜드의 기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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