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다윗
3시간 전

나는 나답게 살고 싶어 미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나는 진정으로 나다울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외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매진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 결국 자기 길을 한번 걸어가 보는 것. 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근데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이미 자유롭게 살고 있는 사람만이 아니다.

정말 나답게 살고 싶어 미치겠는데 현실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돈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기존의 평가 기준 때문에 자기 길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들이 자기 달란트로 실제 가치를 만들고, 그 가치로 돈도 벌고, 자기 삶을 지탱하면서 자기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리고 그 도움이 또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

나다울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현실과 재정에 갇힌 사람들이 자기 달란트로 서고, 그 달란트를 비즈니스와 연결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나는 체제 밖에서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왜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

돌아보면 이 신념과 사명은 고등학교와 재수 시절, 입시 한복판에서 시작됐다.

고등학생 때 나는 서울대에 가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그 체제 안에서 세울 수 있는 가장 큰 목표를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진짜 무조건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했지만 결국 좌절도 맛봤다.

그리고 그때부터 질문이 생겼다.

왜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달려야 할까. 이 경쟁은 한 사람의 인간성과 고유함을 정말 고려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공부 말고 다른 일에 엄청난 재능이 있을 수도 있는데, 아직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성적이라는 한 줄에 세워져야 할까. 그 경쟁에서 밀린 사람은 왜 자기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처럼 느껴야 할까.

나는 처음부터 이 체제를 꿰뚫어 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체제가 제시한 가장 큰 목표를 진심으로 믿고 달려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뒤에 남는 좌절과 실패감이 더 선명하게 보였던 것 같다.

대학에 가면 이제 성인이니까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근데 대학에서도 여전히 학점이라는 숫자와 과거의 평가 방식이 이름만 바뀐 채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언가를 실제로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현실에서 결과를 내는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많은 순간 다시 정해진 답을 맞추고 같은 교재와 자격증을 따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은 AI로 빠르게 변하고 있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무엇을 배웠다고 증명하는 것보다 실제로 무엇을 만들어냈는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교육은 여전히 과거의 평가 방식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솔직히 모든 것을 갈아엎고 싶었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정말 바꾸고 싶은 것은 학교라는 건물 하나가 아니다. 사람을 자기답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현실과 재정, 나이와 평가 기준 때문에 자기 안의 달란트를 꺼내보지도 못한 채 갇혀 있는 상태다.

실제로 내 곁에는 AI를 정말 해보고 싶어 하는 한 학생이 있다. 그런데 하루의 많은 시간은 학원과 입시 공부로 채워진다. 물론 학생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본 과정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학교생활을 다 버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묻고 싶다.

정말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지금 해보면 안 되는가. 입시가 끝날 때까지 자기 욕망과 재능을 전부 미뤄야 하는가. 지금 가능한 작은 AI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하고, 그 안에서 실제 결과를 한번 만들어보면 안 되는가.

그리고 그 시작을 옆에서 도와줄 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가.

나는 그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가까운 사람 중에는 자기 재능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비용 때문에 다음 선택지를 마음껏 고르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자기 달란트로 작은 수입과 실제 결과를 만들고, 그 힘으로 자기 꿈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다만 이것은 양육이 아니다. 방향을 정하는 사람도, 자기 재능을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내놓을지 결정하는 사람도 끝까지 그 자신이어야 한다. 나는 그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고 필요한 사람과 지식과 기회를 연결하며 첫 결과를 함께 만드는 조력자에 더 가깝다.

나는 원하는 것이 있는데도 상황상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면 못 견딘다. 그냥 안타깝다고 말하고 지나갈 수가 없다.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하지만 이 끓어오름이 그 사람의 삶을 대신 결정할 권한은 아니다. 끓어오름은 출발점이고, 방향과 선택의 주체는 끝까지 그 사람이어야 한다.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아직 더 고민해야 한다. 마음만으로 사람을 도울 수는 없고, 좋은 뜻만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디까지 책임지고 어디에서 물러날지, 어떻게 돈을 벌면서도 사명 대상을 놓치지 않을지, 어떻게 한 사람의 가능성을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실제 결과까지 함께 갈지는 계속 검증해야 한다.

그래서 원칙이 필요했다.

원칙은 내가 잘해서 만든 문장이 아니다

나는 처음에 ‘조직 원칙’이라고 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먼저 떠올렸다. 근데 생각하면 할수록 순서가 반대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표의 개인적인 삶이 무너지는데 조직만 건강할 수 있을까. 사람을 바꾸고 싶은 욕망을 다루지 못하면서 관계의 자유를 말할 수 있을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사업의 방향을 계속 바꾸면서 사명을 말할 수 있을까. 돈을 내 능력의 증거처럼 붙잡으면서 청지기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

결국 조직의 문화는 대표가 붙여놓은 멋진 문장보다, 대표가 불안할 때 실제로 하는 행동을 더 많이 닮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칙을 네 영역으로 나눴다. 혼자 있을 때도 나를 먼저 묶는 개인 원칙, 사람의 자유와 감정을 대하는 관계 원칙, 도움과 가치를 실제로 만드는 사업 원칙, 맡겨진 돈을 다루는 재정 원칙이다.

그리고 각 원칙에는 내가 어떤 약점 때문에 이 문장을 세우게 되었는지를 같이 적었다.

원칙은 내가 이미 잘 지키는 덕목의 목록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반복해서 넘어지는 자리에 박아두는 난간에 가깝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자랑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는 이런 식으로 무너질 수 있다고 인정하는 말이다.

먼저 나를 묶는 일곱 가지 개인 원칙

1. 최선을 다하되 모든 것은 다 그에게 맡긴다

나에게 그분은 하나님이다.

바뀌는 것과 회복하는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도, 어떤 일의 최종 결과도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 몫의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

나는 가끔 이 두 가지 중 하나로 치우친다. 내가 다 해야 한다는 오만으로 모든 것을 쥐거나, 반대로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을 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까지 놓아버린다. 그래서 이 문장은 반드시 두 절이 붙어 있어야 한다.

‘최선을 다하되’만 있으면 통제가 되고, ‘맡긴다’만 있으면 손 놓는 핑계가 된다.

최선을 다하고 맡기는 것과 그냥 손 놓고 있는 것은 천지차이다.

2. 결정보다 기도가 먼저다

나는 결정을 다 해놓고 하나님께 승인만 받고 싶어질 때가 있다. ‘제가 맞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근데 기도는 내 욕망을 통과시키는 절차가 아니다.

제가 맞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제가 주님께 맞춰지게 해주세요.

내 결정을 밀어붙이기 전에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욕망하는지 내려놓는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그렇다고 기도 뒤에 책임까지 미루지는 않는다. 기도하고, 내가 해야 할 한 가지를 한다.

3. 반응을 갈구하지 않으며 나의 방향을 명확히 한다

솔직하게 인정하면 나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내가 한 일을 대단하게 봐주고,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껴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근데 반응에 집착하면 이상하게 사명에서 멀어진다. 무엇이 중요한지보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더 중요해지고, 설명해야 할 것을 혼자 짊어지며 부하만 커진다. 실제로 인정받으려 애쓰다가 오히려 방향을 잃었던 적이 있었고, 반대로 상황과 내 방향을 솔직하게 정리해 말했을 때 상대의 부하도 줄고 내 부하도 줄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을 통제하는 대신 내가 가는 방향을 선명하게 설명하려 한다. 박수는 내가 정할 수 없지만 방향은 내가 분명히 할 수 있다.

4. 나의 달란트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 달란트를 불리면서 산다

예전에는 ‘나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했다. 지금도 나다움은 중요하다. 근데 솔직히 나다움이라는 말 안에는 인정 욕구가 섞일 때가 있었다. 나다운 것은 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누군가 알아줘야 확인되는 구조가 있었다.

달란트는 다르다. 달란트는 내가 소유한 장식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진 것이다. 주인이 따로 있다. 그러면 누가 알아주든 말든, 맡기신 분께 잘 돌려드리기 위해 쓰면 된다.

그리고 ‘불리면서 산다’에는 실행이 들어 있다. 달란트를 발견했다는 말만 하면서 묻어두지 않는다. 실제 사람과 문제 안에서 사용하고, 더 나은 가치로 만들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 달란트를 좋은 곳에 쓰도록 돕고 싶다면, 나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남에게만 사명을 적용하면 그것은 위선이 되기 쉽다.

5. 거룩한 루틴을 지켜낸다

나는 자유를 좋아하지만, 공간과 시간이 흐려지면 자유보다 방황에 가까워질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계속 일하다 보면 삶 전체가 일에 삼켜지고, 반대로 부하를 줄이겠다는 말로 중요한 책임까지 밀어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정한 공간에서 정한 시간을 먼저 채운 뒤 자유를 누리기로 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정해둔 공간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금요일은 닫는 날, 토요일은 쉬는 날, 일요일은 다시 여는 날로 둔다. 밤 11시 30분에는 작업을 끝낸다.

루틴은 나를 가두기 위한 틀이 아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기분에 따라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그릇이다.

6. 인풋을 지혜롭게 조절한다

내가 반복해서 보고 듣는 것은 생각보다 빠르게 내 욕망과 방향이 된다. 새로운 도구와 사례와 성공담을 계속 보다 보면 지금 해야 할 일보다 다른 가능성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인풋을 무조건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방향에 맞게 지혜롭게 조절하려 한다.

다만 이 원칙은 아직 검증 중이다. 무엇을 줄였을 때 실제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더 봐야 한다. 멋있는 문장으로 확정하는 것과 삶에서 작동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7. 닫는 것으로부터 책임을 연습한다

이것은 내가 잘해서 세운 원칙이 아니다. 정말 못해서 세웠다.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도 새로운 가능성이 계속 머리에 떠오른다.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은 잘하지만, 하나를 끝까지 닫는 것은 어렵다. 때로는 여러 시스템을 만들고도 가장 중요한 결과물 앞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숨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책임진다’가 아니라 ‘책임을 연습한다’고 적었다.

시간을 정해놓고 닫는 연습을 한다. 결과가 있어야 하고, 실제로 전달되어야 하고, 검수받을 수 있어야 하고, 다음 사람이 이어갈 수 있게 인계되어야 한다. 의도와 노력과 진행률만으로는 끝난 것이 아니다.

책임은 나를 벌주는 감정이 아니라, 무엇이 끝나지 않았는지 사실을 밝히고 도망치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사랑하되 소유하지 않기 위한 세 가지 관계 원칙

1. 사랑을 선택한다

이 원칙의 시작은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나는 이미 먼저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그 사실을 잊으면 사랑은 의무가 되고, 의무가 된 사랑은 상대에게 빚을 지우며 나를 소진시킨다.

내가 믿기로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다. 받은 것이 먼저고 흘려보내는 것이 뒤다. 그래서 사랑은 나의 의지력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먼저 받은 사랑에 반응하는 일이다.

받음, 반응, 흐름. 나는 이 순서를 잊지 않으려 한다.

2. 솔직함을 최우선으로 삼되 배려의 밸런스를 갖춘다

나는 관계가 깨질까 봐 솔직한 감정을 숨길 때가 있고, 반대로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너무 강하게 말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솔직하지 않으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거짓으로 만든다. 하지만 배려 없이 솔직하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니까 이것은 적당히 중간을 찾자는 말이 아니다. 솔직함과 배려라는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감정을 말할 때는 사실, 감정, 소중한 것, 부탁, 듣기의 순서를 지키려 한다. 상대의 의도를 추측하기 전에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말하고, ‘너 때문에’가 아니라 내가 느낀 감정을 내가 소유하고, 왜 아팠는지와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 말한다. 그리고 상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행동 하나를 부탁한 뒤, 그 사람이 경험한 상황과 의도를 듣는다.

평화를 가장하기 위해 감정을 숨기지도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지도 않는 것. 이것이 내가 연습하려는 솔직함이다.

3. 사람을 바꾸려 하지 않고 곁에서 지지한다

이 원칙은 내 사명에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다.

나는 갇힌 사람을 보면 정말 돕고 싶다. 프레임을 바꿔주고 싶고, 달란트를 발견하게 하고 싶고, 작은 출구를 만들어주고 싶다. 근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쉽게 상대의 인생을 소유할 수도 있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사람을 밀어붙이고, 불씨가 없는 사람에게 변화 의지를 대신 만들어주고, 상대의 자유보다 내 팀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고 싶은 마음을 사명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래서 조언과 도움 전에 허락을 묻는다. 내가 원하는 것과 경계를 말한 뒤 선택은 상대에게 돌려준다. 설득해서 끌고 가기보다 내가 먼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문을 열어둔다.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이유로 상대가 바뀌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통제가 아니고, 동행은 소유가 아니다.

사명을 현실의 가치로 바꾸기 위한 여덟 가지 사업 원칙

1. 내 부족원들을 타협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부족원은 나답게 살고 싶지만 현실과 재정 때문에 자기 달란트를 펼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과거에 겪었던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가진 사람들, 그래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근데 사업을 하다 보면 돈이 되는 다른 일이 눈앞에 나타난다. 실제로 돈이 되는 SaaS 업무를 하면서도 그것이 내 사명의 대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 적이 있다.

돈을 버는 일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현금흐름 고객과 사명 대상은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매출을 억지로 사명이라고 포장하지 않는 것이다. 돈을 내는 고객에게는 약속한 가치를 정직하게 주고, 그 일을 통해 만든 돈과 사례와 프로젝트를 다시 사명 대상의 작은 출구로 연결해야 한다.

나는 부족원을 찾지 못해서 넘어지는 사람이 아니다. 돈이 되는 곳으로 마음이 옮겨가면서 원래 돕고 싶었던 사람을 저버릴 가능성 때문에 넘어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찾는다’가 아니라 ‘타협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2. 나의 사명과 공명하는 이들과만 사업한다

나는 사명이 공명하지 않는 곳에서 일할 때 마치 눈 속에 파묻힌 것처럼 한 발을 옮기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동의하지 못하면 오래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깊은 사업을 함께할 사람과는 목적과 윤리와 약속이 맞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만’이라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나와 같은 신앙, 같은 인생, 같은 열정의 온도를 요구한다는 뜻이 아니다. 특히 사람을 채용하고 평가할 때 나의 사명에 얼마나 감동했는지를 자격조건으로 만들면 이 원칙은 금방 폭력이 될 수 있다.

나의 신앙은 직원의 자격조건이 아니라, 내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묻는 기준이어야 한다.

함께 풀기로 한 문제의 목적과 지켜야 할 윤리, 서로 약속한 책임이 공명하면 된다. 사명은 사람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이 일정한 시간 동안 한 문제에서 만나는 교집합이어야 한다.

3. 작은 도움부터 시작한다

이 원칙은 사업 원칙이지만, 굉장히 개인적인 두려움에서 태어났다.

나는 좋은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이게 정말 도움이 될까?’, ‘방향이 틀리면 어떡하지?’를 오래 고민한다. 신중함이 어느 순간 자기검열로 넘어간다. 완전한 확신과 정답을 기다리다가 정작 실질적인 도움을 시작하지 못한다.

확신이 생긴 뒤 도우려고 하면 생각만 길어진다. 실제 반응을 얻지 못하니 무엇이 좋은 도움인지도 알 수 없고, 모르니까 더 생각하고 더 두려워하는 순환이 생긴다. 때로는 학교와 플랫폼과 거대한 시스템을 먼저 설계하는 방식으로 이 두려움을 숨기기도 한다.

그래서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완전한 확신 뒤에 도움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도움을 먼저 건네고 실제 반응을 보며 더 좋은 도움으로 수정한다.

작다는 것은 대충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실행할 수 있고, 틀려도 되돌리거나 수정할 수 있는 범위라는 뜻이다. 상대의 동의와 안전을 건너뛰지 않으면서 작은 도움을 실제로 건네고, 도움이 된 점과 빗나간 점을 물어 다음 도움에서 바꾼다.

처음부터 좋은 도움을 주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구보다, 실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4. 끝그림이 명확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다

이 문장만 보면 바로 앞의 ‘작은 도움부터 시작한다’와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근데 이 두 원칙은 반드시 짝으로 읽어야 한다.

작은 도움만 있으면 시작만 많이 하고 닫지 못한다. 끝그림만 있으면 완벽한 그림을 그리다가 시작하지 못한다.

그래서 끝그림은 완벽한 미래상이 아니다. 이번 사이클의 사용자, 결과, 검수, 전달이라는 최소 완료선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만들고, 누가 확인하며, 어디까지 전달되면 이번 일이 끝나는지 선명하게 정하는 것이다. 크기는 작아도 된다.

나는 분석을 오래 하는 편이기 때문에 ‘끝그림이 명확하지 않다’는 말을 시작하지 않을 면허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원칙은 3번과 떨어지면 안 된다.

3번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4번이 그 움직임을 끝까지 데려간다.

5. 시스템을 만든다

나는 하나하나를 매번 기억하고 일일이 반복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사람을 계속 직접 챙겨야 하고, 대표가 모든 중요한 판단에 들어가야 하며, 대표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일이 멈추는 구조는 오래 갈 수 없다.

그래서 반복되는 도움과 판단을 시스템으로 남기려 한다. 무엇을 보고 결정했는지, 실패를 어떻게 발견하는지, 어디에서 다시 시작하는지, 다음 사람이 무엇을 이어받아야 하는지가 보여야 한다.

대표가 계속 봐야 돌아간다면 아직 시스템이 아니다.

근데 시스템은 나의 강점인 동시에 숨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 시스템을 만들면서 실제 사용자에게 결과를 전달하는 일을 미룰 수 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수동으로 한 번 끝까지 검증하기 전에 큰 자동화부터 만들지 않는다. 시스템의 성과도 내가 얼마나 멋진 구조를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사람의 개입과 불편이 실제로 줄었는지로 본다.

좋은 시스템은 사람을 통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사랑이 내 기분과 체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반복되게 하는 구조다.

6. 불필요한 것은 덜어낸다

나는 할 것이 많을 때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다. 가능성을 계속 더하고 기능을 계속 붙이다 보면 무엇이 핵심인지 흐려진다.

그래서 더하는 능력만큼 덜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만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다는 말로 어렵고 불편한 책임까지 삭제해서는 안 된다. 단순화는 하기 싫은 일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흐름 하나를 끝까지 닫기 위해 나머지를 내려놓는 일이다.

7. 모든 과정은 기록한다

나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과 연결을 잘 만들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그 판단이 내 머릿속에서만 사라진다. 그러면 같은 도움을 줄 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고, 실패해도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도왔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남긴다. 결과물과 검수와 교정과 남은 문제를 기록한다. 좋은 의도나 영웅담이 아니라 다음 사람이 재사용할 수 있는 증거를 남긴다.

기록 없이 실험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록이 사람을 감시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감정과 약점과 관계를 몰래 분석해 쌓는 순간 도움을 위한 기록은 지배를 위한 기록으로 바뀐다. 사람을 더 잘 돕기 위해 기록하되, 그 기록으로 사람을 소유하지 않는다.

8. 무자비하게 사랑으로 기여한다

조금 거친 문장이지만 나는 이 문장을 남기고 싶었다.

나는 사랑이 기여를 만들고, 기여가 신뢰를 만들며, 신뢰가 가치와 돈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사랑, 기여, 신뢰, 가치, 돈.

여기서 무자비함은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몸과 감정을 갈아 넣거나 나 자신을 소모품으로 만들겠다는 말도 아니다. 내가 먼저 가치 주기를 계산적으로 미루고, 핑계를 만들고, 손해 보기 싫어 숨는 태도에 무자비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그리고 반드시 ‘사랑으로’가 붙어야 한다. 사랑이 빠진 기여는 인정받기 위한 노동이나 상대에게 빚을 지우는 희생이 되기 쉽다. 내가 먼저 받은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기여하고, 지속 가능한 경계 안에서 내가 맡은 몫을 감당한다.

사명은 나를 소모품으로 만드는 명령이 아니다. 고객에게 친절하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과 나 자신에게 잔인한 사업은 오래 갈 수도 없고, 내가 만들고 싶은 사업도 아니다.

맡겨진 돈을 다루는 두 가지 재정 원칙

1. 십일조를 기쁨과 감사로 드린다

돈을 많이 벌었을 때 내가 대단해서 벌었다고 생각하고, 돈이 없을 때 내 존재까지 작아지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주신 이도 주님이시고 거두실 이도 주님이시다. 십일조는 나에게 주어진 것이 전부 내 능력으로 생긴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방식이다. 성과를 내 것으로 완전히 소유하지 않는 훈련이다.

성과가 전부 내 것이면 성과가 없을 때 나도 사라진다. 하지만 맡겨진 것이라면 없어져도 나의 존재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수입이 생기면 십일조를 먼저 떼고, 아까움보다 기쁨과 감사를 연습하려 한다.

2. 가계부는 나에게 주어진 돈을 현명히 쓰기 위해 매일 작성한다

나는 돈을 죄책감이나 막연한 감각으로 판단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위해 얼마나 쓰고 있는지 실제 흐름을 봐야 한다.

가계부는 나를 벌주는 장부가 아니다. 나에게 맡겨진 것을 알고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한 기록이다. 그래서 특별한 재정 철학을 말하기 전에 매일 쓴다.

아직 나에게는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에 대한 재정 원칙이 없다. 실제 수입을 만들고 사람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사건이 더 쌓였을 때 그 문장을 세우려 한다. 빈칸을 멋있는 말로 서둘러 채우지 않는 것도 지금의 정직이라고 생각한다.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

스무 가지 원칙을 다 쓰고 보니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모였다.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

내 재능도 내 것이 아니라 맡겨진 달란트이고, 돈도 내 능력의 왕관이 아니라 맡겨진 자원이다. 사랑도 내가 만들어내는 의무가 아니라 먼저 받은 것에 대한 반응이다. 사람의 가능성도 내 사업과 비전을 위해 소유할 것이 아니라, 잠시 곁에서 지지하고 연결해야 할 생명이다.

그러니까 내가 만들고 싶은 조직은 대표의 꿈에 사람을 편입시키는 조직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 달란트의 주체로 서면서도, 우리가 함께 풀기로 한 문제에는 끝까지 책임지는 조직. 솔직하게 말하되 상처를 무기로 사용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일하되 결과와 전달을 흐리지 않는 조직. 대표가 모든 일의 중심에 있지 않아도 사랑과 도움이 반복되고, 돈이 되는 일 때문에 처음 돕고 싶었던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

나는 아직 이 원칙들을 다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실수를 해봤기 때문에 쓴다. 인정받고 싶어서 방향을 잃었고, 맡긴다는 말로 최선을 피한 적도 있고,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상대의 몫까지 설계하려 했고, 좋은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아무 도움도 시작하지 못했고, 작은 시작을 많이 열어놓고 끝까지 닫지 못했으며, 시스템을 만들면서 실제 결과물 앞에 서는 일을 미룬 적도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직원들에게 붙일 규칙이 아니다.

내 자리 안쪽에 붙일 경고문에 더 가깝다. 내가 불안할 때 사람을 재촉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명이라는 말로 누군가의 삶을 삼키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이라는 말로 나와 다른 사람을 소진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새로운 가능성 뒤에 숨어 지금 맡은 일을 닫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나에게 먼저 묻는 문장들이다.

나는 진정으로 나다울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용기는 거대한 선언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오늘 작은 행동으로 꺼내고, 실제 사람에게 가치를 건네고, 그 일을 끝까지 닫아보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나답게 살고 싶어 미치겠는데 현실 때문에 갇혀 있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들이 자기 달란트로 서고, 자기 삶을 지탱하고, 언젠가 자기 자리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어줄 수 있도록.

나는 그 생태계를 만드는 데 내 삶과 일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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