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도약 17] 진짜 공부의 목적: 시험 100점이 아닌 ‘어떤 어른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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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공부의 목적: 시험 100점이 아닌 ‘어떤 어른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

시험 기간이 끝난 날, 거리의 풍경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가방에서 무거운 문제집과 단어장을 꺼내 쓰레기통에 내던진다. 100점 맞은 시험지를 손에 쥐고 환호하지만, 그 환호는 배움의 기쁨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형벌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의 비명에 가깝다.

그 모습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무엇을 위해 공부하라고 가르쳐왔는가?

“이번 시험에서 100점 맞아야지.”

“남들보다 앞서야 좋은 대학에 가고, 그래야 편하게 살 수 있어.”

목적지가 오직 ‘시험지의 점수’와 ‘남들과의 경쟁’에 맞춰진 공부는 시험이 끝나는 순간 그 생명을 다한다. 100점을 맞았든 80점을 맞았든, 시험지가 사라지면 머릿속의 지식도 신기루처럼 흩어져 버린다.

더 비극적인 것은, 평생을 그렇게 ‘남이 낸 문제의 정답’만을 맞히며 살아온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마주하는 텅 빈 허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지만, 정작 “당신은 누구이며, 어떤 가치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 앞에서는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당황하며 침묵한다.

세네카의 탄식: 인생을 낭비하는 공부를 멈추어라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 루키우스 세네카는 그의 저서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도덕서간》 제106서간 12절에서 목적을 잃은 배움에 대해 통렬한 경고를 던졌다.

"우리는 삶을 위해 공부하지 않고, 학교를 위해 공부하고 있다."

정작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인간답게 존재할 것인가를 배우는 일이다.

세네카의 탄식은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거실과 교실에서도 그대로 메아리친다.

아이가 원서를 유창하게 읽고, 수능 영어에서 1등급을 받고, 토플 만점을 기록한다 한들 그것이 인생의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언어는 생각의 그릇이고, 공부는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기둥이어야 한다.

그릇 안에 탐욕과 이기심만 가득 차 있다면, 기둥의 바닥이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철학 없이 모래 위에 세워져 있다면, 그 화려한 스펙은 작은 인생의 시련 앞에서도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만다.

공부의 진짜 목적은 시험지 위에서 1등을 차지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다.

거칠고 불확실한 세상 한가운데서 나만의 중심을 잡고, 타인의 아픔에 손을 내밀 줄 알며,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벼려내는 ‘단단한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서는 것이다.

고전이 던지는 단 하나의 질문: 너는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우리가 아이에게 고전 문학을 건네고, 깊은 사유가 담긴 원서를 함께 읽는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전은 단 한 번도 아이에게 “이 공식을 외워서 만점을 받아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책장 사이에서 불쑥 걸어 나와 아이의 어깨를 잡고 이렇게 묻는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묻는다.

“남들이 다 옳다고 하는 거짓된 삶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위해 외로운 길을 걸을 것인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은 묻는다.

“세상이 강요하는 맹목적인 분주함에 휘둘릴 것인가, 아니면 불필요한 껍데기를 벗겨내고 너 자신만의 진짜 삶을 살 것인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묻는다.

“모든 것을 빼앗긴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너는 네 존엄성과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가?”

이 무겁고 숭고한 질문들과 마주하며 자란 아이의 눈빛은 시험 점수에 연연하는 아이의 눈빛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이런 질문을 품고 자란 아이에게 영어는 더 이상 학원 레벨을 올리기 위한 지루한 암기 과목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삶을 고민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목소리를 원어로 직접 듣고, 그들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가장 벅찬 창문이 된다.

진짜 공부를 회복하는 세 가지 부모의 시선

아이의 공부를 ‘점수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삶을 살아내는 힘’으로 바꾸어주기 위해, 부모는 세 가지 시선의 전환을 결단해야 한다.

1. 성적표 대신 ‘아이의 가치관’을 들여다보아라

시험이 끝난 날, 점수를 묻기 전에 아이의 표정을 살피며 먼저 물어보자.

“이번 과정을 겪으면서 스스로 어떤 점이 가장 자랐다고 느껴지니?”, “결과와 상관없이 네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 순간이 엄마는 정말 자랑스러워.”

숫자가 아니라 아이의 인격과 성장의 궤적에 박수를 보내는 부모 밑에서,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영혼으로 자란다.

2. “무엇이 될래?” 대신 “어떻게 살래?”를 물어라

아이에게 직업의 명칭(의사, 변호사, 교수)을 장래 희망으로 강요하지 마라. 직업은 삶을 살아가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너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니?”

“네가 가진 재능과 언어로 세상의 어떤 어두운 구석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밝히고 싶니?”

‘어떤 어른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북극성을 품은 아이는, 그 어떤 진로의 파도 앞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스스로 항로를 개척해 나간다.

3. 부모 자신이 먼저 ‘살아있는 배움’을 보여주어라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백 번 하는 것보다, 부모 자신이 삶의 본질을 고민하며 책장을 넘기는 뒷모습을 한 번 보여주는 것이 천 배는 강력하다.

부모가 세상의 얄팍한 유행과 비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단단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목격한 아이는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인생의 진짜 품격이 어디에서 오는지 온몸으로 배운다.

마침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순간

아이의 손에 쥐여주어야 할 것은 100점짜리 시험지가 아니다.

어떤 고난과 실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축’, 그리고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오를 수 있는 ‘드넓은 사유의 날개’다.

시험지의 점수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어린 시절 고전 원서의 행간에서 길어 올린 삶의 철학과 도덕적 질문들은 아이의 영혼에 남아 평생 동안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의 아이가 마침내 성인이 되어 세상이라는 거친 광야로 걸어 나갈 때,

누군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낙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당당히 포효하는 사자처럼,

그리고 매 순간을 새로운 놀이로 창조해 내는 눈부신 어린아이처럼 살아가기를.

그 위대한 여정의 시작은 지금,

식탁 위에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건네는 부모의 이 따뜻한 한마디에 달려 있다.

“점수는 중요하지 않아. 오늘 네 마음에 어떤 따뜻한 생각이 자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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